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備忘錄, 영국 어학연수 여대생 피살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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備忘錄, 영국 어학연수 여대생 피살사건

<김창룡의 미디어비평> 파렴치한 한국언론의 불법오보를 고발한다

미국이 이라크에 대해 포격의 강도를 더욱 높여가던 2003년 3월말 저 멀리 영국의 법정으로부터 ‘런던의 민박집 주인 김씨에 대해 1급살인혐의를 인정하여 법정최고형벌인 무기징역 선고’라는 판결소식이 희미하게 들려왔다. 국민이 온통 전쟁뉴스에 넋을 잃고 있던 사이 한국 언론이 집단으로 ‘사자(死者)에 대해 명예를 훼손하고 유가족의 인권을 유린한 사건’은 그렇게 이제는 잊혀진 이야기가 됐다.

그렇게 넘어가기에는 반성을 모르는 한국언론의 불법적이고 반인권적 보도의 내용과 형식, 그 오보 이후 반저널리즘적 행태가 ‘해도 너무 했다'는 진단에 따라 사실상 법원의 최종판결이 나온 이 시점에서 하나씩 짚어보자는 것이다. 이것은 명백한 불법 오보를 하고도 침묵과 무시로 일관하는 대다수 한국언론의 반윤리성을 고발하고 각성을 촉구하는 보고서다.

해외 어학연수 차 영국에서 숨진 진효정, 송인혜 두 한국여대생 살인사건은 지난해 1월10일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진씨가 영국 요크시 근처 마을 골목에서 버려진 가방 속에 토막 시신으로 발견된 것은 2001년 11월18일이었지만 당시는 신원이 밝혀지지 않아 국내언론에서 보도하지 않았다. 40여일만에 조씨의 신원이 확인되고 문제의 같은 민박집을 거쳐간 송씨 역시 실종된 것이 확인되자 국내언론은 앞다퉈 보도하고 시작했다. 어학연수를 위해 방학때가 되면 많은 한국대학생들이 해외로 나간다는 점에서 또한 외국에서 끔찍한 여대생 살인사건이 발생했다는 점에서 언론에서 크게 보도하는 것은 나무랄 일이 아니다.

문제는 각 언론사의 보도경쟁이 치열해지던 2002년 1월15일과 16일 무렵에 터졌다. 이번 판결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유력한 살인용의자 민박집 주인 김규수씨가 이메일을 통해 ‘자신의 결백과 함께 살해된 두 여대생의 마약복용설’을 제기하면서부터다.

KBS와 MBC 방송은 이 무렵 “사망한 진씨가 실종된 송씨(몇달후 시신으로 발견됨)에게 마약을 알선, 복용하도록 했다”는 김씨의 주장을 여과 없이 그대로 보도했다. MBC는 한술 더 떠 1월16일자 뉴스데스크 시간에 ‘영국 약물문제 서유럽에서 최악’이라는 제하의 보도에서 ‘마약과의 관련성을 추측하는 내용’을 내보냈다.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 한겨레신문, 한국일보 등 대다수 국내 중앙일간지들도 연합뉴스 런던 특파원발 기사를 그대로 전제했다. 게다가 동아일보는 이 과정에서 연합뉴스 기사를 자사 특파원의 이름으로 크레딧을 바꿔서 내보내는 비윤리적 보도행태를 보이기까지 했다. 보도의 내용은 한결같이 살해된 두 여대생의 ‘마약복용설’ ‘마약범죄단과 연루설’ 등에 대해서였다. 이런 잘못된 보도내용은 각 언론사 인터넷을 확인해보면 금방 확인된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불법이며 반인권적이며 반저널리즘이라는 말인가.

우선 우리 언론이 너무 안이하게 유력한 용의자의 일방적 주장을 대서특필했다는 사실이다. 형사사건에서 어느 쪽의 주장을 크게 취급하게 될 경우 오보나 불공정보도를 하게 되는 것은 필연이다. 기본적 기자훈련을 받았다면 이런 어처구니없는 오보는 하지 않는다. 문제는 시청률이나 상업주의에 함몰될 경우 눈에 보이는 것이 없어지고 평상심마저 잃게 돼 과장 추측보도를 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문제의 기사를 데스크에서라도 면밀히 검토했다면 영국 경찰이 아닌 익명의 취재원이 동원돼 ‘가능성’ ‘시사한다’ 등의 추측성 서술형이 한 꼭지 기사에서 8번이나 등장하는 허점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더구나 그런 용의자의 주장이 직접 기자회견을 한 것도 아니고 ‘인터넷상에 떠도는 내용’을 한국특파원이 확인작업 없이 바로 기사화했다는 것은 특파원 자질미달이다. 그런 수준미달의 기사를 국내방송과 신문은 일제히 더욱 과장되게 살을 붙여 오보를 퍼뜨리는 식의 반저널리즘적 행태를 보인 것이다.

오보로 확인됐을 경우 법적책임은 인터넷상의 내용을 인용한 언론사에 있음은 판결로 증명되고 있다. 유력한 용의자의 일방적 주장을 여과 없이 보도한 위법사실, 인터넷 자료를 인용한 불법보도. 한국의 신문과 방송은 이를 무엇으로 설명하고 이해를 구할 것인가.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런 오보가 법원의 판결로 확인되고 난 뒤 사실을 정정하고 사과하는 언론사를 찾을 수 없다는 현실이다. 이 사건이 영국법정에서 진행되는 과정에서 필자는 한 방송사 소속 변호사에게 ‘자발적으로 오보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이 시청자 방송 주권을 보호하고 스스로 책임 있는 방송사가 되는 길이 아닌가’라고 말했으나 그는 ‘굳이 방송사가 나서서 오보를 밝힐 필요가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한 방송사 피디는 ‘우리 방송사 런던 특파원에게 물어보니 아직 법원의 판결이 나오지도 않았는데 벌써 오보라고 단정하는 것은 무리’라는 주장이라며 역시 필자의 뜻을 거부했다. 이런 식이다. 세월의 망각 속에 반인권적 불법보도를 묻어버리려 한다.

외국에서 불우하게 죽어간 사자(死者)의 명예를 훼손하고 그 유가족들의 가슴에 두 번 세 번 못질을 한 국내 대다수 신문사, 방송사들은 해명도 정정도 반성도 하지 않고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이 인권의 보루는커녕 오히려 인권을 유린하는 가해자가 되다니.

더욱 나쁜 것은 이런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려는 대안도 마련하지 않고 있는 경영진의 무지와 게으름이다. 그 다음 대상은 바로 여러분 자신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언론개혁의 핵심에 이런 윤리성 회복을 위한 법, 제도 보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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