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다. 지난 여름의 더운 열기가 물러난 지는 오래지만, 영화계에서는 지금이 본격적인 가을의 시작이다. 통상 부산영화제가 끝나고 연말을 한달여 앞둔 11월은 영화계에서 숨을 고르는 시간이다. 곧 비수기다. 부산의 뜨거운 기억을 마지막으로 대형영화들의 숨가쁜 발걸음 대신 작고 다채로운 영화들이 스크린을 물들일 예정이다. 하지만 편수로만 보면 결코 한가한 나날이 되지 않을 듯 싶다. 현재 11월에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영화는 줄잡아 40여 편. 국적도 다양하고 장르도 다양하다. <가을로>, <그 해 여름>과 같이 멜로적 감성으로 무장한 한국영화부터 전미 박스오피스를 석권한 <디파티드>, <프레스티지>와 같은 할리우드 화제작까지. 여기에 <러브러브 프라하>와 <창문을 마주보며>와 같은 유럽영화들이 가을의 정취를 더할 예정이다. 11월에 만나는 주목할만한 영화 몇 편을 모았다.
<가을로> 감독 김대승 |
출연 유지태, 김지수, 엄지원 | 한국 | 2006년 |
개봉 10월 26일
<가을로>의 풍경은 아름답다 못해 몽환적이다. <번지점프를 하다>, <혈의 누>를 연출한 김대승 감독의 신작 <가을로>는 인물들이 겪는 상실과 치유의 과정을 로드무비 형식을 빌어 풀어낸 작품이다. 10년 전 백화점 붕괴로 연인 민주(김지수)를 잃은 현우(유지태)는 어느 날 생전에 민주가 적어놓은 다이어리를 받고 여행을 떠난다. 민주가 적어놓은 길을 따라 걷던 현우는 여행지마다 세진(엄지원)이라는 여자를 만나게 된다. 자신들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직감한 현우와 세진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화가 담아낸 대한민국 곳곳의 아름다움은 스크린을 곱게 물들이고 관객들을 매혹시킨다. 소쇄원, 동강, 7번 국도의 맑은 기운은 보는 이의 메마른 감성을 채우고도 남음이다.
<사랑따윈 필요없어> 감독 이철하 |
출연 문근영, 김주혁 | 한국 | 2006년 |
개봉 11월 9일
국민여동생 문근영의 첫 성인신고식이 될 영화 <사랑 따윈 필요 없어>는 동명의 일본 드라마를원작으로 했다. 문근영이 히로스에 료코가 연기한 거액의 상속녀를 김주혁이 그녀의 돈을 노리고 접근한 호스트를 연기한다. 아도니스 클럽의 잘 나가는 호스트 줄리앙(김주혁)은 자신에게 빠진 한 여자의 자살 때문에 거액의 빚을 안고 궁지에 몰리게 된다. 돈을 갚지 못하면 목숨까지 내놔야 할 지경에 이른 줄리앙은 우연히 알게 된 스무살 상속녀 류민(문근영)에게 접근한다. 잘하면 목숨을 건질 뿐 아니라 인생역전까지 노릴 수 있게 된 줄리앙은 민의 하나뿐인 혈육인 친오빠 행세를 하게 된다. 그러나 뜻밖의 상황들은 예상치 못한 감정들을 낳는다. 사랑을 믿지 않는 두 남녀의 만남은 운명적인 사랑을 시작한다. 귀엽고 발랄한 소녀로만 인식됐던 문근영의 이번 작품을 통해 우울한 이미지로 변모하고 언제나 젠틀하고 선량한 배역을 주로 맡았던 김주혁은 야비한 바람둥이로 이미지 변신을 시도한다.
<그 해 여름> 감독 조근식 |
출연 이병헌, 수애 | 한국 | 2006년 |
개봉 11월 30일
한없이 멜로적인 두 배우가 만났다. <번지점프를 하다>, <중독>을 통해 진한 사랑의 감정을 연기한 이병헌과 <가족>, <나의 결혼원정기>의 수애가 애틋한 첫사랑을 연기한다. <그 해 여름>은 평생 가슴속에 묻어둔 첫사랑을 찾아 나서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여름을 배경으로 했지만 영화의 아련한 정서는 가을이라는 계절과 더없이 어울린다. 윤석영(이병헌)은 모두에게 존경받는 60대 교수. TV교양프로그램의 작가 수진(이세은)과 김PD(유해진)은 윤교수의 부탁을 받고 그의 첫사랑 정인(수애)을 찾아 나선다. 정인과 석영이 처음으로 만났다는 시골마을 수내리에서 정인의 흔적을 쫓던 그들은 젊은 시절 정인과 석영의 사연을 듣게 된다. <그 해 여름>은 시간이 갈수록 더 진해지는 사랑과 그리움을 담은 영화다. <품행제로>의 조근식 감독은 1960년대의 풍경을 재현하며 지나간 사랑에 세월의 무게를 얹혀 놓는다. '뵨사마' 이병헌이 출연한다는 것 만으로 촬영도 시작하기 전 일본 배급사인 SPO사와 400만 달러에 수입계약한 것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애정결핍이 두 남자에게 미치는 영향> 감독 김성훈 |
출연 백윤식, 봉태규, 이혜영 | 한국 | 2006년 |
개봉 11월 16일
가을이라고 멜로영화만 있으란 법은 없다. <애정결핍이 두 남자에게 미치는 영향>은 두 부자지간의 요절복통 에피소드로 무장한 코미디 영화다. 중년의 카리스마를 선보여온 백윤식이 5년차 홀아비로, 그리고 그 밑에서 자란 철부지 고등학생 봉태규가 못 말리는 부자를 연기한다. 누구의 보살핌도 받지 못해 애정결핍에 시달리는 동철동(백윤식)과 동현(봉태규)부자는 별다른 대책 없이 오로지 아끼고 뻔뻔하게 들이대는 것만이 살길이라 생각하고 살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막 나가는 부자의 집에 죽은 어머니를 꼭 닮은 오미미(이혜영)이 이사 오고 두 부자의 치졸한 갈등이 시작된다.
<열혈남아> 감독 이정범 |
출연 설경구, 조한선, 나문희 | 한국 | 2006년 |
개봉 11월 9일
충동적이고 물불 안가리는 성격 탓에 조직에서도 소외된 재문(설경구), 그리고 이제 막 폭력조직에 가담하게 된 효심 깊은 청년 치국(조한선)의 파멸을 그린 영화. 남성 누아르의 비장함뿐 아니라 모성을 중심으로 한 감성이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영화다.
. . . .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The devils wear Prada> 감독 데이비드 프랑켈 |
출연 메릴 스트립, 앤 해서웨이 | 미국 | 2006년 |
개봉 10월 26일
지독한 상사를 만났던 일, 그리고 그 혹은 그녀 때문에 밤새도록 분을 삭였던 기억,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겪었을 법한 일이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트렌디한 도시 뉴욕에서도 마찬가지다. 실제 보그 편집장의 어시스턴트를 지낸 작가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이런 직장인들의 애환을 담고 있는 소설이다. 소설을 영화화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그러한 소설의 포맷을 그대로 담고 왔다. 하지만 영화는 소설보다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소설에서 글로만 상상할 수 있던 지미 추, 샤넬, 프라다, 마놀로 블라닉, 마크 제이콥스와 같은 브랜드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 명품 브랜드로 휘감은 인물들의 모습이 매 장면마다 패션 화보처럼 주르륵 펼쳐진다. 매력적인 주인공들의 모습에 현실감각까지 갖췄으니 이 영화를 마다할 이유는 없다. 메릴 스트립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가 압권인 영화다.
<디파티드 The Departed> 감독 마틴 스코세즈 |
출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맷 데이먼, 잭 니콜슨 | 미국 | 2006년 |
개봉 11월 23일
10월 첫째 주 전미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던 마틴 스코세즈의 <디파티드>는 홍콩영화의 부활을 알린 <무간도>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영화의 기본적인 골격은 <무간도>와 같다. 신참 경찰 빌리 코스티건(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프랭크 코스텔로(잭 니콜슨)가 이끄는 보스턴 최대 범죄 조직망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갱으로 위장해 조직에 잠입한다. 한편 또 다른 신참 경찰 콜린 설리반(맷 데이먼)은 코스텔러를 제거하는 특별수사반에 배치된다. 그러나 그는 경찰로 위장한 코스텔로의 스파이다. 그러나 경찰청과 조직에서는 스파이의 존재를 눈치채고 두 사람은 어느 쪽으로도 보호받지 못한다. 누가 적이고 아군인지를 모르는 혼란 속에서 두 사람의 운명은 엇갈린다. 갱스터 무비에서 탁월한 연출력을 선보였던 마틴 스코세즈는 이 작품을 통해 자신의 기량을 다시 한번 발휘한다. 배우들의 호연과 스코세즈의 힘 있는 연출력이 돋보이는 <디파티드>는 현재 내년 아카데미의 유력한 수상작으로 떠오르고 있다.
<프레스티지 The Prestige>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
출연 휴 잭맨, 크리스챤 베일, 스칼렛 요한슨 | 미국 | 2006년 |
개봉 11월 2일
기억을 소재로 한 스릴러 영화 <메멘토>에서 출중한 연출력을 선보였던 크리스토퍼 놀란의 신작. 이번에도 진실을 찾는 그의 숨바꼭질은 계속된다. 상류층 출신의 마술사 앤지어(휴 잭맨)와 고아로 자란 천재 마술사 보든(크리스챤 베일)은 라이벌이다. 그러나 마술경기 도중 보든의 실수로 앤지어의 아내가 죽게 되면서 그들은 등을 돌린다. 서로를 짓밟기 위해 벌이는 그들의 마술 경쟁은 주변 사람들의 생명마저 위협하고 급기야 앤지어는 보든의 마술 비밀을 캐내기 위해 자신의 조수 올리비아(스칼렛 요한슨)을 보든에게 스파이로 보낸다. 마지막에 반전을 매설한 <프레스티지>는 결말을 절대 말하지 않을 것을 서약하는 일명 '침묵 시사회'까지 개최했다.
<마리 앙투아네트 Marie-Antoinette> 감독 소피아 코폴라 |
출연 키얼스틴 던스트, 아시아 아르젠토 | 미국 | 2006년 |
개봉 11월 30일
올해 칸 영화제에서 비판과 지지를 동시에 받았던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신작 <마리 앙투아네트>는 사치가 극에 달한 프랑스 혁명 직전 궁정을 조망한다. 전쟁과 가난으로 민심은 극에 달하지만 베르사이유 궁전의 뜰에서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그 중앙에 선 인물은 마리 앙투아네트(키얼스틴 던스트). 현세에까지 가난에 대한 무지한 어록을 남겼던 그녀는 사치와 허영의 현신이었다. 그러나 영화는 그녀를 비판도 옹호도 하지 않는다. 그저 호화롭기 그지없는 마리 앙투아네트를 통해 당시 궁정의 텅빈 삶을 비춘다. 하지만 바로 그 중립적인 태도가 많은 비평가들로부터 혹평을 사게 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
<러브러브 프라하 Román pro ženy> 감독 필립 렌치 |
출연 주자나 까노츠, 마렉 바슈트, 시모나 스따쇼바 | 미국 | 2006년 |
개봉 11월 2일
<프라하의 봄> 이후, 오랜만에 체코 영화 한 편이 개봉한다. <러브러브 프라하>는 체코에서 자국영화가 오랜만에 할리우드 영화 <해리포터와 불의 잔>, <스타워즈 에피소드Ш>를 따돌리고 자국내 박스 오피스 1위를 차지한 작품이다. 타고난 미모로 쇼핑하듯이 남자를 바꿔치우는 라우라(주자나 까노츠)는 그녀보다 한참 연상인 올리베라(마렉 슈바트)를 보고 한눈에 반한다. 그러나 문제는 라우라의 새 남자친구가 20년 전 그녀의 어머니(시모나 스따쇼바)가 찼던 남자와 동일인물이라는 사실. 여기서부터 그녀들의 진실된 사랑 찾기가 시작된다. 유쾌하고 발랄한 그녀들의 사랑 이야기는 엉뚱한 에피소드와 버무려져 웃음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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