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방송(MBC)의 대표적 공익프로그램의 하나인 ‘미디어 비평’이 봄철개편을 앞두고 존폐기로에 놓였다. 보도에 의하면 미디어 비평을 새로운 프로그램의 한 코너로 흡수시킨다는 것이다. 아직 확정된 안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언론계의 ‘핫이슈’를 다루며 매체 간 견제역할을 해 온 미디어 비평 프로가 사실상 축소, 와해되는 과정에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MBC 경영자의 입장에서는 신문 등 동업자들과 대립각을 세우며 비판, 견제역할을 해야 하는 프로그램을 없앤다는 것은 홀가분한 일이다. 그러나 시청자들의 입장에서는 언론의 일방적 불공정 보도나 오보 등에 대한 진상을 알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는 셈이며 권력화한 언론의 구조적 문제점 등에 대해서는 논의조차 거부당하는 셈이다.
더구나 국내언론은 스스로 오보에 대한 해명도 정정도 사과도 거의 하지 않는 편이며 자체 문제점에 대한 제기조차 인색한 편이라 이런 비평프로그램의 필요성은 절실했다. 그래서 MBC 미디어 비평이 태어났고, 이는 KBS는 물론 교육방송(EBS) 조차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의 신설을 가져왔다. 신문사들도 뒤를 이어 ‘미디어 비평’ 고정란을 할애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디어 비평의 지평을 연 MBC가 사장이 바뀌면서 돌연 이 프로를 ‘손보겠다’고 하는 것이다.
상황에 따라 어떤 프로든 신설할 수도 축소할 수도 혹은 없앨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합당한 상황변화가 있었는지에 대한 내부적 합의라도 있어야 한다. 그런데 MBC 내부는 물론 미디어 비평팀들 조차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MBC 내부의 반발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오늘날 객관적 언론환경이 미디어 비평 프로의 축소가 아니라 확대해야 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첫 번째 이유가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고 난 뒤 쏟아내고 있는 각종 언론개혁 시안들이다. 언론환경과 언론관계 변화를 예고하는 이런 시책들에 대한 공론의 장이 필요한 마당에 방송사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프로그램마저 없애는 방향으로 간다는 것은 상황변화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거나 다른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노무현 대통령은 4월7일 ‘신문의 날’ 행사에서 언론개혁은 ‘언론과 시민에 맡긴다’ ‘정부가 할 일은 없다’고 말했다. 이 말은 언론의 감시 견제 역할은 언론사들 자율과 언론사들 간의 견제에 맡기겠다는 것이다. MBC가 노대통령의 이런 당부를 정면으로 거부하겠다는 의지라면 이런 프로그램을 축소한다는 구상에 납득이 간다. 그런 것이 아니라면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두 번째 한국 언론은 사실상 ‘통제받지 않는 권력’으로 군림해 왔다는 비판에 자유롭지 못하다. 이런 현실적 문제가 해소되지 않았으며 언론사 내외적 규제장치가 여전히 없거나 미미한 편이다. 그나마 언론사들 간에 ‘침묵의 카르텔’을 깨고 서로 비판에 나선 것이 불과 얼마 되지도 않는다. 민주주의의 기본이 견제와 감시체제라면 언론에 대한 감시견제에 대해 언론이외에 할 수 있는 기관은 사실상 전무하다. 미미한 법 제도가 언론의 감시역할을 해오지 못했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세 번째 인터넷 언론의 급격한 부상과 신생 언론사의 등장으로 언론계의 현안은 더욱 늘어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시청자들의 수요도 높아가고 있다. 외국에서는 미디어 관련 전문기자들이 활약하고 있을 정도지만 국내는 미디어 내외적 비판에 대해서는 금기시해 왔다. 공개와 투명사회로 나아가는 현실에서 비평의 성역을 깬 미디어 비평 프로는 높이 평가해야 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바로 대부분 주요언론사들이 앞 다퉈 미디어 지면을 할애하고 있으며 인터넷 언론은 더욱 많은 부분을 언론비평에 할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본말이 뒤집힌 개편구상이라는 점이다. MBC의 공영성을 높여주는 한밤의 미디어 비평 프로가 그렇게 시급하게 손질이 필요한 부분이 아니라 거의 매일 프라임타임 대를 장악하고 있는 저급한 드라마, 연예 오락프로그램에 대한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는 사실이다.
노 대통령는 언론개혁에서 정부가 할 일이 없다며 손을 빼면서 언론이 언론을 개혁하도록 당부했다. 그러나 MBC는 언론개혁 프로그램 자체를 축소시키며 사실상 폐지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 ‘시청자 주권’을 부르짖던 MBC는 이 과정에서 시청자들에게 의견 한번 묻지 않고 언론개혁에 역행하는 편성권을 휘두르고 있는 것이다. 과연 누구를 위한 비평 프로그램의 축소, 통합인지 MBC 경영진은 해명하고 동의를 구하는 성의를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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