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 정책위원회에 소속된 정책 연구원들이 18일 기구의 수장인 이용대 정책위원장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연판장을 돌리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비판의 요지는 이 의장의 최근 북핵 관련 발언이 당의 강령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는 것.
'이용대 정책위의장의 북핵 관련 발언에 대한 정책연구원들의 입장'이라는 제목의 연판장에는 27명의 정책연구원들이 가담했다. 정무직을 제외한 정책연구원은 30여 명. 정책연구원들 대다수가 '선상 반란'에 동참한 셈이다.
"자위적이면 핵이 용인되나"
이들은 "이 의장의 발언이 당 강령의 정신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는 상황을 더 이상 묵인할 수 없다"며 이 의장의 최근 북한 핵실험 관련 발언을 조목조목 열거해 비판했다.
이에 따르면 이 의장은 지난 15일 중앙위원회의에서 "북한 핵무장을 자위적 측면에서 인정하는 것을 넘어 노무현 정부의 핵무장도 자위적으로 볼 수 있느냐"는 중앙위원의 질문에 "그렇다"고 답변했다가 논란이 되자 그 이후 취소했다.
이 의장은 또한 "민노당은 원천적으로 핵은 반대하는데 대치국면에서 핵이 자위적 측면을 갖고 있는 것으로 인정하고 있다"(민중의 소리 인터뷰)고 밝혔다. 또한 레디앙과의 인터뷰에선 "자위적 측면에서 북핵의 인정이 당론이냐"는 질문에 이 의장은 "당론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원들은 "이 의장이 자위적 측면을 이유로 북한 핵을 용인하고 나아가 당론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당 강령을 심각하게 훼손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북한의 핵무장이 미국의 적대적 대북정책에 기인하는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지만 "북한이 이에 대항하고자 자위력으로 핵무장을 주장하고 시도하는 북한의 입장에 대해서도 명백히 반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연구원들은 "민주노동당의 강령은 어떤 국가이든, 비록 자위력으로 핵무장을 하더라도 반대할 뿐만 아니라 소위 핵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원자력 발전까지도 명확하게 반대하고 있다"면서 "이 의장의 발언은 당 강령의 정신을 정면으로 위배한 심각한 사태"라고 규정했다.
연구원들은 △이 의장이 자신의 발언을 공개적으로 철회할 것 △정책위의장으로서 북한의 핵무장까지도 반대한다는 점을 명확히 천명할 것 △추후 당 강령 훼손 발언을 삼갈 것 등을 요구했다.
이용대 "내 입장은 불변"
이에 대해 이 의장은 "표현을 기술하는 데 있어 오해도 있고 논란도 있는 상황인 것 같다"면서 "하지만 내 입장은 기존과 다를 게 없다. 당 강령에도 문제 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이 의장은 "북핵 문제는 미국과의 전반적 대결의 성격이고 북한이 최후의 생존 수단으로서 핵무장을 했는데, 그런 점을 부정하면 북한에 체제를 포기하라는 얘기밖에 안된다. 그 점은 인정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의장은 또한 "6자회담 재개와 북한에 대한 체제 보장, 그리고 핵 폐기로 가는 것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현실적인 경로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면서 "단순논리로 북한 핵을 인정하느냐 아니냐의 문제로 말하면 이런 논리가 설명이 안 된다"고 부연했다.
당내 북핵 갈등의 결정판
이번 사태는 '북핵' 문제를 둘러싼 평등계(PD)와 자주계(NL) 사이의 오래된 갈등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북한의 핵실험이 현실화된 이후 더욱 고조된 정파대립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수습이 쉽지 않아 보인다. 평등계는 자주계로 분류되는 이용대 위원장 등을 최근 민노당의 북핵 접근법을 이끈 수장으로 지목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번 갈등은 정책위만의 문제가 아니라 당 전반으로 이미 확산된 논란의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민노당 중앙위원회는 지난 15일 '한반도 평화 실현을 위한 특별 결의문' 채택 여부를 놓고 극심한 진통을 겪었다.
이 자리에선 당초 최고위원회가 작성한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유감을 표명한다"는 내용이 담긴 원안이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과 북미 사이의 긴장과 대결이 북의 핵실험으로 이어진 것에 대한 유감"이라는 표현으로 정정된 수정동의안으로 뒤바뀌는 등 혼란을 겪은 끝에 결국 채택이 무산됐다.
지난해 3월에도 평등계가 북한 핵보유에 대해 비판적 내용을 담은 '북핵 결의문'을 중앙위원회에 제안했지만 참석한 중앙위원 다수의 반대로 반려된 바 있다.
또한 최근 조선사회민주당의 방북 초청에 응할 것인지 여부를 놓고 민노당 지도부에서도 분열상이 노출되기도 했다. 김기수 최고위원 등 평등계 지도부는 북한 핵에 대한 분명한 반대의지를 표명해야 하는 상황에서 당 지도부가 방북하는 것은 북한 핵을 용인하는 듯한 태도로 비쳐질 수 있다는 취지로 반대했다.
이와 관련해 자주계의 김은진 최고위원은 이번 사태가 "당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라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방북과 관련해선 "북한을 방문해 핵실험에 대한 우려의 뜻을 표할 것"이라고 평등계의 우려를 불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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