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가 왜 이리 더디게 타나.'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6월 서울 미아리의 어느 집, 한 소년이 종이 더미를 아궁이에 쑤셔넣고 있었다. 조바심에 사로잡힌 소년의 얼굴은 금세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됐다.
당시 소년이 태우던 종이 뭉치는 〈경향잡지〉과월호. 천주교 서울대교구에서 발행하던 월간지였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포성을 피해 피난길에 나섰다 폭파된 한강다리를 보고 집으로 되돌아 온 소년의 가족들은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하기 전에 종교에 관한 물건이나 책을 모두 숨기거나 없애야 한다는 생각으로 종일 분주했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그 소년은 훗날 종교 문화를 연구하는 학자가 됐다. 고려대 사회학과 노길명 교수의 이야기다.
현존 최고(最古) 잡지, 〈경향잡지〉창간 100주년
행여 인민군의 눈에 띌까 두려워 아궁이에 넣어 태우던 〈경향잡지〉가 오는 19일 창간 100주년을 맞는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고도성장과 군사독재를 아우르는 〈경향잡지〉 백년사는 한국 천주교가 박해를 뚫고 이 땅에 뿌리내린 역사와도 겹친다.
하지만 천주교 내부에서만〈경향잡지〉창간 100주년을 기념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 기네스북 언론·출판 부문은 이 잡지를 현존하는 현존하는 한국 최고(最古)의 잡지로 꼽았다. 한국 언론·출판의 역사를 기록할 때 빠뜨릴 수 없는 매체인 셈이다.
〈경향잡지〉는 1906년 10월19일 천주교가 애국계몽운동의 일환으로 창간한 〈경향신문〉의 부록 〈보감(寶鑑)〉이 그 전신이다. 〈경향신문〉이 일제의 탄압으로 1910년 12월30일 폐간되자 이듬해 1월15일 〈보감〉은 종교잡지 〈경향잡지〉로 제호가 바뀌어 지금에 이른다.
한국전쟁 때 잠시 휴간하기도 했던 〈경향잡지〉는 전쟁 후 〈경향신문〉에서 분리돼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이 발행인을, 천주교중앙협의회 사무총장이 편집인을 맡아 순수한 종교잡지로서의 성격을 줄곧 유지해 왔다.
1906년 창간 때부터 한글 전용 원칙…천주교 문인들의 등용문
〈경향잡지〉가 한국 언론·출판사(言論·出版史)에서 의미를 갖는 것은 단지 오래된 잡지여서만은 아니다. 〈경향잡지〉는 창간 당시부터 한글 전용을 원칙으로 삼았고 한글보급에 선도적 역할을 했다. 한글 사용이 억압당하던 일제 강점기에도 이런 원칙은 유지돼 왔다.
또 근대 사법제도와 법률지식에 대한 무지로 피해를 입는 이들이 많았던 당시 상황을 고려해 '법률문답'이라는 고정란을 마련하기도 했다. '법률문답'은 천주교 신자가 아닌 일반인들에게도 큰 호응을 얻었으며 일제강점기 애국계몽운동에도 영향을 끼쳤다.
〈경향잡지〉는 천주교 문인들이 활발하게 글을 발표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1980년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던 시인 이해인 수녀도 〈경향잡지〉에 글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동화작가로 널리 알려진 고 정채봉 씨도 단골 필자 중 한 사람이었다. 1970년대에는 박완서, 유안진, 박경리 등 쟁쟁한 문인들이 번갈아가며 〈경향잡지〉지면을 수놓았다.
정 추기경 "지난 세월 영광에 안주 말기를"…19일 창간 100돌 기념식
김수환 추기경은 지난 1일 발행된 〈경향잡지〉100주년 기념호에서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빛으로 언제나 밝게 빛나기를 빈다"고 축하했다.
이어 정진석 추기경은 "일본강점기, 6·25전쟁, 민주화운동 등 지난 100년간 급속한 변화 속에 〈경향잡지〉가 올바른 교회의 가르침을 전하는 데 자신의 역할을 다해 주어서 고맙게 생각한다"면서 "지난 세월의 영광과 업적에만 안주하지 말고, 민족의 복음화와 이 땅의 복음화를 위해 매진하여 줄 것"을 당부했다.
19일 창간 100돌 기념식에는 정 추기경을 비롯해 〈경향잡지〉 최고령 정기구독자 이우락(81) 옹 등이 참석할 예정이다. 기념식은 기념미사에 이어 장기 구독자들에 대한 시상식, 100주년 기념 수필공모 시상식 등으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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