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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예루살렘 개의 운전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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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예루살렘 개의 운전사입니다"

[화제의 책] <팔레스타인의 눈물>

유럽에서 아라비아 반도에 이르는 관문으로 열강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되는 땅, 팔레스타인. 이 곳은 이스라엘과의 분쟁이 60년 이상 지속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의 눈물>(수아드 아미리 외 지음, 도서출판 아시아 펴냄)의 엮은이인 소설가 오수연은 "그 본질은 사실 분쟁이 아니라 학살"이라고 말한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막강 이스라엘 군대의 꾸준한 군사작전 대상은 고작해야 구식 총을 쏘는 민병대나 돌 던지는 소년들이며, 그보다는 그저 재수 없는 민간인들이다. 대부분의 희생자들은 자기 집에 앉아 있다가, 또는 길바닥에서 난데없이 폭탄이나 총알을 맞는 보통 사람들이다. 거기서 날마다 벌어지고 있는 일은 싸움이 아니라 학살이다."

9명의 팔레스타인 작가들이 생생하게 전하는 11편의 글들을 묶어 펴낸 <팔레스타인의 눈물>은 우리에게 팔레스타인 사태의 본질과 그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삶과 고통, 그리고 희망을 전하고 있다.

"오늘이 없는데 어떻게 내일을 꿈꿀까"

▲ <팔레스타인의 눈물> ⓒ프레시안

이 책의 엮은이 오수연은 팔레스타인들의 진정한 고통은 육신의 위협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부정당하는, 정신에 대한 위협에 있다고 전하고 있다.

"그들은 아무 때나, 어디서나 '정지'를 명령받는다. 그리고 조롱당하고 모욕당한다. 그들의 하루는 점령군들의 하루이며, 팔레스타인 사람들 자신에게는 비참하고 원통한 기억이 더해질 뿐이다. 오늘이 없는데 어떻게 내일을 꿈꿀까."

이스라엘의 위협은 팔레스타인의 일상 곳곳에 침투해 일상을 왜곡시킨다. 지난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으로 동예루살렘, 서안지구, 가자지구를 점령한 이스라엘은 서안지구 곳곳에 검문소를 설치하고 분리장벽 건설을 통해 팔레스타인인의 이동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다.

이 때문에 아다뉘아 쉬블리는 친구 집에 가기 위해 먼지를 옴팡지게 뒤집어쓴 채로 검문소 앞에서 몇 시간이고 서 있어야 하는 고통을 줄이기 위해 일주일에 한 차례씩 하루에 몰아서 한꺼번에 순찰돌 듯 친지들을 방문한다.

"나는 되도록 검문소를 지나지 않으려고 일주일에 한 번씩 그들을 한꺼번에 방문한다. 그래서 연달아 세 집을 방문하는 일이 시간과의 경주가 되어버렸다. 나는 친구들의 말을 중간에서 끊기 시작했다. 더 이상 참고 끝까지 듣지 않았다. 어떤 화제도 결말이 나지 않았다. 앞머리만, 그마저도 대충 이야기하다 말았다. 나는 한 시간 반마다 움직여야 했다." -아다뉘아 쉬블리 '먼지'

이스라엘 여권을 갖고 있는 개보다 못한 존재로 스스로를 풍자하는 것은 팔레스타인들이 경험하는 일상적 억압과 차별의 정도를 보여준다. 건축학자이자 작가인 수아드 아미리는 '개 같은 인생'이라는 글에서 이스라엘 개의 운전수로 검문소를 통과했던 일화를 전했다. 그는 통행허가증을 보여 달라는 이스라엘 군인에게 "나는 없지만 이 개가 있답니다. 나는 이 예루살램 개의 운전사예요"라고 말해 검문소를 통과할 수 있었다.



"손바닥으로도 바늘에 맞설 수 있다"

자카리아 무함마드는 그의 글 '취한 새'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의 처지를 이스라엘군에 의해 꼬리가 잘린 사자상으로 비유한다.

"이스라엘 탱크가 이 도시에 들이닥쳤을 때, 군인들은 곧바로 도심을 장악하고 두 달 동안이나 라말라 시 전체에 통금령을 내렸다. 텅 빈 도시에서 그들은 장밋빛 사자들 말고는 심심풀이할 대상을 찾지 못했다. 그들은 사자의 꼬리를 겨누고 총을 쏘았다. 그들은 명사수들이었다. 한 마리 사자를 빼고는 나머지 모든 사자들이 꼬리를 잃었다. 그 사자는 꼬리가 몸 안으로 말려들어간 덕분에 꼬리를 보전했다. 두 마리 새끼 사자들조차 지금 꼬리가 없다. 나는 깊은 동정심을 느끼며 사자들을 만져보았다. 지금 그것들은 우리와, 나와 똑같다. 나 또한 꼬리가 없다. 우리 모두는 꼬리가 잘린 존재들이다." - 자카리아 무함마드 '취한 새'

이스라엘 군인들의 심심풀이 대상이 돼 꼬리를 잘려 버린 라말라 시내의 사자상과 같이 이스라엘에 의해 모든 것을 하루 아침에 잃어버린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에 맞서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들은 '손바닥으로 바늘을 맞설 수 있다'고 얘기한다.

그녀가 손에 빗자루를 들고 내게 물었다.
"손바닥으로 바늘에 맞설 수 있어?"
"예." 내가 말했다. 그녀는 같은 어조로 또 물었다.
"어떻게?"
"우리는 손바닥에 철을 입혔거든요." - 아이샤 오디 '심문'


"총선 결과는 하마스의 승리가 아니라 이스라엘과 미국의 패배"

사실 이들의 손바닥에 철을 입히고 이스라엘에 '감히' 맞서도록 만든 것은 위험한 테러리스트 조직도 아니고 무장조직 하마스도 아니다. 바로 이스라엘 자신이라고 팔레스타인들은 말한다.

"그러나 그들은 내게 그렇게 하도록 시킨 자들이 바로 '자기들'이라는 사실을 결코 깨닫지 못했다. 내가 싸울 수밖에 없도록 강요한 자들이 다른 사람 아닌 자기들, 이스라엘인들이라는 것을. 기억할 수 있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데리야씬에서 쫓겨난 우리 아주머니네 식구들과 주민들을 보았을 때부터, 나는 그들이 자기 마을로 돌아갈 수 있도록 내가 싸워주겠다고 마음먹었다. 모든 난민들이 자기 집과, 도시와 마을로 돌아갈 수 있도록!" - 아이샤 오디 '심문'

미국과 이스라엘을 경악케 한 팔레스타인의 총선 결과도 마찬가지다. 지난 1월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이슬람 강경단체인 하마스는 파타당에 이은 2인자가 될 것이라는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압승을 거뒀다.

이스라엘을 인정하지 않는 하마스를 집권당으로 만든 팔레스타인인들의 '선택'에 대해 알리 제인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미국과 유럽의 감수성 부족이 하마스가 더 많은 표를 얻도록 도왔다"고 설명했다.

팔레스타인들은 "하마스가 이기면 유럽의 경제 원조가 끊길 거라고 위협한 유럽공사 하피에 솔라나가 싫어서" "팔레스타인인들의 자의식 자체를 불태워버리겠다고 선포한 이스라엘 국방장관 모파즈에게 멍청하다고 말하기 위해서" 등 "팔레스타인에 대한 적대정책을 펼치는 그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하마스를 선택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나를 진정 화나게 하는 건, 전 세계가 팔레스타인인들의 선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우리 동포들을 벌주려고 열을 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무도 이스라엘의 점령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아무도 40년이나 우리의 등덜미에 올라타고 있는 이스라엘에게 그만 내려오라고, 그리고 우리의 권리를 인정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전 세계가 부시의 '하마스는 이스라엘을 인정해야만 한다!'라는 어리석은 말만 따라 하고 있다.

고상한 아라파트는 이스라엘을 인정했다. 압바스 역시 이스라엘을 인정했다. PLO도 이스라엘을 인정해 왔다. 그래서 무슨 진전이 있었나? 전혀 아무 것도, 이스라엘은 우리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한시도 쉬지 않고 점령과 억압을 늘려오기만 했다." - 알리 제인, '나를 너무 밀지 마'


"콧구멍을 틀어막고 부패한 파타당을 찍었던" 자신의 친구와 같이 "나도 너무 떠밀린다면, 다음 선거에서 하마스가 안고 있는 심각한 문제점들을 눈 딱 같아버리고 그 당을 찍을 것"이라고 얘기하는 제인. 그의 말 속에서 우리는 오늘날 '중동의 위기'라고 말하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분쟁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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