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 깁슨은 과연 미친 천재인가, 아니면 진짜 미치광이인가. 베르너 헤어조그가 아마존 열대우림 한가운데에서 악전고투 끝에 걸작 <아귀레, 신의 분노>를 창조해냈던 것처럼, 깁슨 역시 또 한편의 광기로 똘똘 뭉친 문제작을 탄생시킬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그는 <지옥의 묵시록>에서처럼 메콩강 정글 깊숙한 곳에 은둔한 채 자신만의 광기 속에 빠져들었던 쿠르츠 대령의 운명을 따르게 될 것인가. 무엇보다 깁슨은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의 놀라운 흥행기록을 또다시 작성할 수 있을까. 멜 깁슨의 문제작 <아포칼립토>가 12월초 개봉을 약 두달이나 앞둔 벌써부터 미 영화계 안팎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최근 보도했다. 워낙 미국 영화계의 '상식'을 벗어나는 발상의 작품인데다가, 최근 깁슨의 만취난동과 反유대발언 파문이 컸던 터라 흥행성공 여부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아포칼립토>에 대해 '도박에 가까운 영화' 란 지적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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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토 ⓒ프레시안무비 |
그리스어로 '새출발'이란 의미의 <아포칼립토>는 15세기 몰락의 위기에 처해있던 마야문명을 배경으로, 제물이 될뻔했던 '재규어의 발'이란 이름의 한 남자가 극적으로 탈출해 겪는 모험을 그린 작품.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의 배우들이 이제는 사어(死語)가 된 고대유대어인 아람어로 말했던 것처럼 <아포칼립토>의 모든 대사는 마야어인 유카텍 방언으로만 이뤄져 있다. 출연진 중 유명 배우는 한명도 없을 뿐만 아니라 2/3는 실제 마야 족의 후손들을 캐스팅해 사실감을 강조하고 있다. 멜 깁슨의 영화사 '아이콘'이 일부 공개한 비디오 클립에 따르면'재규어의 발'이 아마존 정글 속에서 횃불을 든 전사들에게 쫓기는 장면 등 깁슨감독은 특유의 긴박감 넘치는 액션연출을 유감없이 발휘한 것으로 알려졌다. 깁슨 감독은 지난 5월 시사주간지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아포칼립토>가 단지 옛날 마야 족의 생활상을 이해하는 차원을 넘어 21세기를 사는 현대인들에게도 중요한 메시지를 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영화 속에서 묘사되는 폭력과 파괴에 대한 공포는 21세기 부시 행정부와 네오콘주의자들이 테러와의 전쟁을 통해 불러일으키는 공포와 일맥상통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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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토 ⓒ프레시안무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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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 깁슨이 주변의 우려를 뿌리치고 '영화적 도박'을 감행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93년 감독 데뷔작 <얼굴없는 남자>는 1968년 동부 메인주의 한 도소시를 무대로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진 남자가 한 십대소년과 맺는 '스승-제자 관계'를 다룬 특이한 소재의 작품이었다. 2년뒤 발표한 <브레이브하트>는 결과적으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그에게 안겼지만 제작 과정에서는 "갑옷과 칼이 등장하는 한물간 시대극"이란 악평에 시달렸었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역시 "종교영화는 더 이상 흥행에 성공할 수없다"는 업계의 불문률을 깨는 등 영화계 고수들을 머쓱하게 만들었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 아무도 투자하지 않는 바람에 자기 돈 2500만달러를 쏟아부었던 깁슨은 개봉후 무려 6억달러를 벌어들였다. 깁슨의 영화들은 특이한 소재와 흥행면에서 뿐만 아니라, 철학적인 면에서도 늘 논쟁의 한 가운데 놓이곤 했다. <얼굴없는 남자>는 동성애적 관계를 암시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의 눈길을 불러일으켰고, <브레이브 하트>는 영국 국왕이 동성애자인 왕자에 대한 분노에 휩싸여 그의 동성애인을 탑위에서 밀어 떨어뜨려 죽게하는 장면 때문에 전작(前作)과는 정반대로 '호모포비아(동성애공포증)'란 비난의 화살을 맞았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유대인 병사들이 예수를 채찍질하고 고문하는 장면을 지나치게 리얼하게 묘사했다는 이유로 반유대주의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지난번 깁슨의 만취난동을 통해 그가 실제 반유대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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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토 ⓒ프레시안무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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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는 스타배우들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데다가 영어대사조차 한마디없는 <아포칼립토>에게 멜 깁슨이란 이름은 최대 무기이자, 곧 최대 걸림돌이 될 수있다고 분석했다. 그의 탁월한 연출력에 대한 영화팬들의 기대와 신뢰가 이미 탄탄한 만큼 흥행 성공의 가능성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최근 악화된 깁슨의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에 영화자체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 관객들이 많은 것 또한 사실이란 의미로 풀이된다. '할리우드 최대 도박꾼' 멜 깁슨은 이번에도 과연 <아포칼립토>로 자신에 대한 비판자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 수있을까. 올 연말쯤 미국 등 전세계 극장가에서 <아포칼립토>를 둘러싸고 벌어질 영화만큼이나 흥미진진한 스크린 뒤의 이 드라마를 전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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