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의 영화'를 표방하는 전주국제영화제(JIFF.4월25일~5월4일)가 올해 영화제 상영작들을 20일 오후 남산 애니메이션센터에서 공개했다.
***개막작 '6인의 시선', 폐막작 '천국에서 멀리'**
영화제 측은 이번 영화제 개막작으로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작한 인권영화 '6인의 시선'(감독 박찬욱 외 5인)을 선정했고 폐막작으로는 토드 헤인즈 감독의 '천국에서 멀리'(Far From Heaven)를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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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작인 '6인의 시선'의 총감독을 맡은 이현승 감독은 "6명이 어떤 제약이나 요구 없이 자유롭게 만든 작품들"이라며 "아직도 인권이 거창한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주위의 작은 인권문제를 주로 다뤘다"고 영화를 소개 했다. 이 작품의 한 단락인 장애자 인권문제를 다룬 '대륙횡단'을 연출한 여균동 감독은 "장애인 청년이 우리나라 경제·정치·문화의 상징이자 중심인 광화문 네거리를 건너가는 장면을 주목해 달라"고 감상 포인트를 제시했다.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라는 단편을 통해 행려병자로 몰려 6년간 감금당한 네팔출신 외국인노동자의 실화를 다룬 박찬욱 감독은 "관심 있는 분야라 맨 먼저 소재를 정했다"며 "외국인에 여성이라는 이중의 고통을 겪은 노동자의 모습을 그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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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을 지닌 작품들이 많아**
30개국에서 출품된 1백70편의 영화가 상영되는 이번 영화제의 출품작들은 최근의 국제정세 때문인지 미국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지닌 작품들이 많다는 게 큰 특징이다.
맨 먼저 눈에 들어오는 작품은 핀란드의 알렉시스 쿠로스 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 '내 딸 없이는'(Without My Daughter)이다.
미국인 여성 베티 마흐무디는 이란에서 회교혁명이 일어난 후 어린 딸과 함께 강압적인 이란인 남편으로부터 탈출한 후 가까스로 미국으로 귀환했다. 그녀는 자신의 탈출기를 책으로 출판했고 그 내용은 '솔로몬의 딸'이라는 제목으로 90년에 영화화까지 됐다.
그러나 이 작품은 16년간 딸을 아내에게 '납치'당한 아버지 마흐무디 박사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다시 들려준다. 미국의 시각이 아닌 이란의 관점에서 미국의 우월주의와 이미지 조작을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덴마크의 외르겐 레스 감독이 만든 '66개의 미국 풍경'은(66 Scenes From America)은 광활한 미국의 풍경을 비추는 사이로 팝아트의 대가인 앤디워홀에서 도로공사를 하고 있는 흑인노동자까지 여러 계층의 미국인을 등장시켜, 자신의 직업과 삶을 고백하는 내용이다.
레스 감독은 미국이라는 거대한 국가이미지에 가려졌던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통해 담담하면서 신랄하게 미국을 비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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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상영 섹션에 선정된 '블랙무비'(흑인주연의 B급 영화)들은 미국의 인종차별이 낳은 기형적 하위 장르인 '블랙스플로테이션'(Blaxploitation)의 주요 작품을 선보인다.
이 장르의 영화들은 과도한 폭력과 선정성, 상투적인 이야기구조까지 할리우드의 B급 오락영화와 똑같은 모습을 보이지만, 영화 속에 주인공이 흑인이고 악당이 백인이라는 뒤바뀐 위치를 통해 우리가 흔히 보던 기존의 할리우드 영화가 얼마나 백인남성의 가치관을 중심으로 만들어 졌는지를 알게 해 준다.
영화제의 성격을 대변하는 폐막작인 '천국에서 멀리'도 할리우드 스튜디오에서 제작된 영화지만 50년대 미국의 중산층 백인가족을 배경으로 도덕적 혼란 속에 붕괴하는 한 여성을 통해 9.11 이후 황폐화 한 미국인의 심리를 은유적으로 그리고 있는 수작이다.
이번 영화제에는 이들 작품 외에도 혁명적인 이념으로 반(反)할리우드적인 영화세계를 창조한 브라질의 전설적인 영화운동 시네마노보(CINEMA NOVO)의 기수 글라우버 로샤(1931~1981)에 대한 오마쥬(헌정상영)도 눈길을 끈다.
이번에 상영될 예정인 그의 대표작 '죽음의 안토니오'는 서부극이라는 대중 장르를 차용하여 만든 작품으로 지주·자본가 계급에 고용된 살인청부업자 총잡이 '죽음의 안토니오'가 의식화를 거친 후 자신의 진짜 적인 성직자와 유산계급을 향해 총을 든다는 줄거리를 갖고 있다.
***"지금 독립·다큐멘터리영화의 세계적인 추세가 그런(반미) 방향"**
이번 영화제 상영작들을 직접 고른 김은희 프로그래머는 "굳이 전쟁이나 미국을 의식하고 프로그램을 짜진 않았다"며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나 자신이 속한 사회에 대한 관심을 표출하는 감독들의 영화를 중심으로 뽑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런 작품들이 모인 것 같다"고 말했다.
김 프로그래머는 "이번 영화제에 사정상 초대하지 못한 마이클 무어 감독의 '보울링 포 컬럼바인'(Bowling For Columbine)의 경우를 보더라도 미국인 감독이 만든 '반미'영화 인데도 미국 내에서도 이례적으로 흥행에 성공한 작품"이라고 소개하고 "지금 독립·다큐멘터리영화의 세계적인 추세가 그런(반미)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프로그래머는 "관객들도 영화제는 기본적으로 평소에 볼 수 없던 영화를 보는 기회 인 만큼 지금껏 봐 왔던 할리우드 영화와는 다른 호기심을 갖고 보면 더욱 재미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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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영화제는 메인 상영관인 전북대문화관에서 개·폐막식을 갖고 전주시내 '영화의 거리'에 있는 5개 극장 등 7개 실내상영관과 1개 야외상영장에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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