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각 상임위원회에서 통과되어 올라온 예산안을 최종 심의하는 자리다. 예결특위는 33명의 위원으로 구성되어 있고, 예결위 내에는 11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계수조정소위원회가 있다. 계수조정소위는 예결위 심의가 끝난 뒤 실제 예산의 증액과 삭감을 조정하는 마지막 역할을 담당한다.
그러니 예결특위와 계수조정소위의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 없을 것이다. 그런데 국회나 시의회나 늘 예결특위와 계수조정소위가 말썽이다. 특위는 몰아치기 식의 예결산 심의로 얼렁뚱땅 넘어가기 일쑤고, 계수조정소위는 별다른 이유도 없이 비공개로 이루어지고 회의록도 남지 않는다. 밀실에서 진행되는 '예산 나눠먹기'나 마찬가지란 얘기다.
지난 9월 11일 2006 하반기 추가경정예산안 심의를 위한 예결특위에 참석했다. 오전 10시에 시작한 예결특위는 오후 6시가 넘어서야 끝이 났다. 특위가 끝날 무렵 전체 의원들에게 "예산을 증액하거나 삭감할 내용이 있으면 그 항목과 비용을 적어내라"는 내용의 문서가 돌았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그걸 써내지 않으면 원하는 항목의 예산이 반영되지 않는다"는 얘길 들었다. 화들짝 놀라서 내가 속해 있는 보건사회위원회에서 제기했던 '노숙인 의료구호비 3억 원 증액'을 황급히 적어냈다.
저녁식사를 하며 계수조정소위가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소위는 결국 밤 10시30분이 지나서야 시작이 됐다. 예결특위가 끝난 뒤 의원들이 적어낸 의견을 수렴하는 시간이었다고 한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일단 필자가 적어낸 '노숙인 의료구호비 3억 증액' 요구가 그대로 예산에 반영됐다. 노숙인 의료구호 사업은 국공립병원, 보건소, 지정약국 등이 노숙인들을 무료로 진료하고 그 진료비를 서울시에 청구하면 전액 서울시비로 보전하는 사업이다.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서울시가 26억8300만 원의 비용을 보전해주지 않아 해당기관이 노숙인 진료를 제한하는 사태까지 불거진 상태여서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담당부서는 올해 말까지의 부족액을 9억6600만 원으로 정리해 올렸으나 필자가 거기에서 최소한 3억이 증액돼야 한다고 지적한 것이 결국 추경에 반영된 것이다. 필자는 감히 이를 '쾌거'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최하층 서울시민들에게 부족하나마 재정지원을 늘린 뿌듯함에서다.
하지만 필자는 솔직히 감격의 의미로 '쾌거'라는 말을 사용하고 싶지는 않다. 아마도 서울시의회 사상 처음으로 예결특위에 들어간 민주노동당 의원으로서의 회한 섞인 감정인 듯 하다. 지난 6대 서울시의회는 한나라당, 열린우리당, 민주당 등 교섭단체(의원 10인 이상)를 구성한 정당 중심으로 특위 위원이 배정된 탓에 심재옥 민주노동당 전 의원은 4년 내내 한번도 특위에 들어가지 못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필자가 이번에 예결특위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소수당 의원들을 모두 합쳐도 교섭단체를 꾸릴 수 없을 지경으로 한나라당이 의회를 독식했기 때문이었다. 한나라당이 예결특위를 독점하는 초유의 사태를 의식해 소수당이 각 1명씩 특위에 참여할 수 있도록 배려(?)를 받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것이 근본적인 예산결산 과정의 투명성 제고 방안은 될 수 없는 일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선 예결특위를 다른 상임위처럼 상설화 하고, 계수조정소위를 반드시 공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특정 의원의 '끼워넣기 사업'이나 각 당의 '예산 나눠먹기'가 다반사로 벌어지는 예결특위와 계수조정 소위의 관행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예결특위에 들어가지 못한 의원들은 아무리 의미 있는 사업이라도 예산을 따내지 못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특위 안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예산이 결정됐는지조차 전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 추경예산안을 통과한 사업은 30건이나 되지만 어느 의원이 어느 항목을 제안했고, 어떠한 타당성이 있어서 그 예산이 반영되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유일한 단서인 '2006 추경예산 예결위 심의안' 문서도 사업명-감액내역-증액내역-비고만 나열되어 있을 뿐이다. 예결특위에 들어가지 못한 의원들은 본회의 당일에서야 앙상하게 제목만 열거된 문서를 보고 통과시킬지 말지를 판단해야 하는 상황이다.
추가경정예산안 심의에서도 지역 민원이나 자신의 공약사항을 반영시키기가 바쁜데, 연말에 있을 본예산 심의는 어떨지 걱정이다. 서울시 집행부는 5월부터 일찌감치 다음해 예산편성 작업에 들어가지만, 특위가 상설화되지 않은 탓에 의회는 연말에 겨우 며칠 동안 그 내용을 다 심의해야 한다. 밤을 새운다고 해도 제대로 된 심의는 역부족이고 집행부의 안대로 통과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예결특위 상설화-계수조정 소위 공개 원칙과 함께 소수당 의원들이 예결특위에 계속 들어갈 수 있도록 보장받는 일도 시급하다. 예결특위 위원의 임기는 1년이다. 1년 후 다시 예결특위 위원을 선출할 때도 공정성과 여러 목소리를 조율하기 위해 소수당 의원들이 예결특위에 들어가야 한다.
예산결산, 즉 시민들의 혈세로 꾸려가는 살림살이의 투명성이 투명한 시정의 기본임은 백번을 강조해도 과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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