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드라마 <소문난 칠공주>로 인기절정인 중견 탤런트 박인환이 스크린 인기에도 도전하고 있다. 화제를 모으고 있는 영화 <무도리>에서 동료 연기자 최주봉 등과 주연을 맡은 것. <무도리>는 주책스러운 할아버지들과 젊은 자살희망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엉뚱한 사건사고 이야기. 그 가운데서 박인환은 중심 역할을 맡았다. 등장인물들을 통솔하는 가부장적이고 융통성 없는 아버지의 모습은 박인환이 그 동안 여러 작품에서 보여준 얄미운 아버지 그대로다. 그가 표현해 낸 애틋한 부성애는 영화 마지막에 잊을 수 없는 잔상을 남긴다. 박인환이 보여주는 아버지의 표상은 통속적이지만 동시에 다양한 인생의 결을 함께 지니고 있다. 1980년대와 1990년대를 경유했던 TV드라마 <왕룽일가>와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를 비롯해서 지난 해의 <굳세어라 금순아>까지 박인환은 각 작품마다 올곧지만 깐깐한 아버지의 이미지로 이 시대 아버지가 지녔던 삶의 희로애락을 정교하게 풀어 놓았다. 대중들은 박인환하면 손쉽게 근엄하고 고집스러운, 그러면서도 속정 깊은 아버지를 떠올린다. 무뚝뚝하고 그래서 야속하면서도 동시에 애틋한 마음을 늘 지니고 사는 우리 시대 아버지의 모습 그대로가 박인환이란 배우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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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환 ⓒ프레시안무비 김정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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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박인환의 이미지는 종종 스크린으로 넘나들며 좀더 폭넓게 활용돼 왔다. 김지운 감독의 1998년작 <조용한 가족>이 대표적인 작품. 이후에 출연한 장진의 <간첩 리철진>에서도 그가 아버지 캐릭터를 대표하는 배우임을 여실히 입증해 냈다. TV드라마에서의 인기와 더불어 이번 스크린 도전으로 그는 또 다른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는 셈이다. 박인환을 만났다.
- 화제의 드라마에다 영화 주연까지 제2의 전성기인 것 같다. "그런 말 체감을 못하겠다. 누가 21세기 여배우 트로이카로 이영애, 김태희, 김수미를 언급했다고 하는데, 나는 그 정도 신드롬을 낳은 것도 아니지 않은가.(웃음) 사실 영화 <무도리>도 영화에 출연한 모든 배우들이 공동 주연한 영환데, 누구 한사람만 영화의 주연이라고 하면 안될 것 같다. 물론 요즘 드라마와 영화 덕에 새로운 대중들의 반응을 실감하고 있기는 하다. 얼마 전 <무도리>의 기자시사회 때 무대인사와 기자간담회를 가졌었는데, 영화 때문에 그런 무대에 서게 된 것은 처음이었다. 항상 젊은 사람들만 하는 걸로만 알았다.(웃음) 그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 선 것도 처음이었다. 어색하고 당황되기도 하고 떨리기도 했는데 갑자기 책임감이 밀려들더라. 공동주연이어도 내 이름을 건 영화가 아닌가."
- 주위의 반응은 어떤가? "단독 주연이 아니라고 거듭 강조하고 다닌다. 주위에서는 빈말인지 아닌지 좋은 소리만 해주는데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어리둥절하다. 영화 흥행문제는 나하고 관계없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부담 반, 기대 반인 마음으로 얼마 전에는 처음으로 네티즌 반응을 보라고 아이에게 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몇 개 읽다 말았다. 사람들의 평가에 얽매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특히 10대들의 반응은 무섭다."
- 요즘엔 이른바 '대박 영화'는 중 장년층의 힘에서 나온다고들 한다. "그렇다고 하더라. 그 중 장년층의 힘은 악극을 하면서 이미 체감했었다. 악극을 10년간 했는데 중 장년층이 좌석을 꽉 메웠었다. 그들에게도 문화소비 욕망이 있다는 증거다. 그러나 요즘 영화들은 중 장년층들이 볼만한 영화가 없다. 솔직히 실험영화니, 작가영화니 하는 것보다 대다수의 중년들은 재밌고 감동을 주는 작품을 좋아한다. 그렇다고 실험영화나 어려운 예술영화를 모든 중 장년층이 멀리한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다만, 각기 다른 취향을 가진 관객들을 위해 다양한 영화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이를 위해서는 어느 한 편만이 잘 되는 것이 아니라 영화가 골고루 잘돼야 한다. 이번 추석만해도 7편의 한국영화가 개봉하는데 단 한 편의 대박영화 탄생이 아니라 골고루 다 잘됐으면 좋겠다. 학교도 D학점이면 졸업하지 않나.(웃음) 친구는 낙제하는데 나만 졸업하면 뭐가 좋겠나. 적게 나눠가지더라도 모두 잘돼야 투자자들과 제작자들이 다음에도 다양한 형식의 영화를 시도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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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환 ⓒ프레시안무비 김정민 기자 |
-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이 무엇인가? "다양한 소재와 형식, 그리고 배우가 보여지는 영화여야 한다. 그것은 곧 삶이 보이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무도리>도 소재와 형식이 독특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대중성도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나로 인해 피해를 받지 않을까 걱정했다."
- <무도리>에서 맡은 역할 얘기 좀 해달라. "굳이 비교하자면, 예전 <왕룽일가>의 캐릭터와 비슷하다. 비타협적이고 폐쇄적이면서 고집스러운 인물. 그 동안 연기했던 자주 맡아왔던 인물이어서 크게 어려운 역할은 아니었지만, 아쉬운 점은 좀 남는다. 내가 맡은 봉기란 인물은 방연(서희승)과 달리 가정이 없고 아이를 잃은 사람이 아닌가. 그 심정을 잘 표현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가정을 갖지 못한 봉기의 심정과 일상을 좀더 극성스럽게 부딪히면서 연기를 할 걸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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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도리 ⓒ프레시안무비 |
- <무도리>는 <마파도>의 속편 아닌 속편이란 소리를 듣는다. "전혀 그렇지 않다. <마파도>와 비슷한 면은 있다. 오히려 설정으로는 <시실리 2km>와 비슷한 면이 있다. 폐쇄된 공간에 외부인이 들어온다는 설정 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내용은 전혀 다르다."
- 비슷한 연배의 배우들과 함께 작업해서 재밌는 일이 많았을 것 같다. "추워서 엄청 고생했다. 내복만 3벌을 껴입었다. 한국에서 가장 추운곳에서 가장 추울 때 촬영을 했다. 강원도 평창, 설악산, 백담사 등 핫 팩을 온종일 온몸에 붙이고 있다가 데인 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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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환 ⓒ프레시안무비 김정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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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인이 연기하는 아버지상과 실제 모습이 같은가? "그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 대부분의 아버지가 그렇듯이 나도 집에서는 악역을 맡는다. 아이들에게 엄하게 대하는 편이다. 성격자체도 그리 자상한 편은 못 된다.(웃음)"
- 오랜 경력이어서 안해 본 역할이 없을 것 같다. "맞다.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연기를 시작했다. 30여 년이 됐는데 많은 역할을 맡아봤다. 웬만한 인물은 다 연기해봤으니까. 푼수연기도 했었다. 하지만 곧 매너리즘에 빠졌다. 개그맨이 반, 가수가 반인 시트콤은 곧 지겨웠고 배우로서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었다. 특별히 연기하고 싶은 인물은 없다. 다만 앞으로도 쭉 진솔한 연기를 하고 싶다. 삶의 진정성과 감동이 묻어나는, 그런 모습을 선보이고 싶다."
- 영화 출연이 계속 예정돼 있다고 들었다. "허진호 감독의 <행복>에 출연한다. 남주인공을 맡은 황정민이 요양원에서 만나는 인물이다. 허진호 감독과는 <봄날은 간다>에 이어 두번 째 작업이다. 세상을 보는 시선이 따뜻한 감독이라 그의 작품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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