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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자폐가 '가족 탓'이라고 생각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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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자폐가 '가족 탓'이라고 생각하나요?"

발달장애인 위한 '돋움음악회' 여는 이상만 씨

"9년 전이었습니다. 자폐증을 가진 아들을 고치기 위해 병원과 기도원 등을 전전하던 때였죠. 하루는 기도원에서 치료를 한다며 아이 가슴에 피멍이 들 정도로 때리는 데, 전 '아이가 나을 수 있다면'이란 생각으로 지켜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데 눈물이 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죠. '이것이 아이를 위한 일이었나?' 결론은, 제가 발달장애아를 가진 아버지라는 상황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것이었어요."

과거를 회상하던 이상만(50) 씨는 결국 눈시울을 적셨다. 그 일에 대해 여전히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는 듯했다. '자폐증'으로 대표되는 발달장애인과 그 가정을 위해 뭔가를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것도 그때였다.

"물론 장애를 치료하는 일도 중요하죠. 그러나 무엇보다 장애를 편견 없이 바라보는 사회를 만들고 싶었어요. 정작 치료해야 할 대상은 장애인이 아니라 사회라고 봤거든요. 제가 작곡이 본업인데, 주변에 있는 음악하는 사람들이 돕겠다고 많이 나섰어요."

발달장애인과 그 가정을 돕기 위한 콘서트인 '돋움음악회'는 이렇게 1997년에 탄생했다. 음악회에 처음 가본 사람이라면 '발달장애인을 위한다'는 음악회의 객석에 정작 장애인들이 보이지 않는다며 의아해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씨는 "장애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함께 소통하는 장을 여는 것이 이 콘서트의 취지"라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이 씨의 음악회에 선뜻 아무런 대가 없이 참여한 예술인들 덕분에 재즈 연주, 가야금 산조, 전통춤, 성악앙상블, 마임과 같은 수준 높은 공연이 매월 '무료'로 개최될 수 있었다. 이 씨의 생각에 공감하는 이들과 함께 역시 9년 전에 꾸린 자원활동단체 '돋움공동체' 또한 음악회의 든든한 받침목이었다.

"음악 통해 장애에 대한 편견 허물고 싶어"
▲ 지난 15일 열린 '돋움음악회- 성기문, 이검의 재즈듀오 콘서트' ⓒ 프레시안

대구에서 처음 시작한 '돋움음악회'는 작년부터 서울로 자리를 옮겨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1997년에 시작된 이 음악회는 운영 상의 어려움으로 한때 중단된 적도 있다. 그러나 2003년 이후 지금까지 총 40차례의 공연을 가진 '돋움음악회'는 이제 약 300명 규모의 후원자들과 함께 제법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상만 씨는 자원봉사 형태로 운영되는 '자선 음악회'를 매월 개최하는 일이 쉽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사람들의 관심도 처음 음악회를 시작할 때보다 줄어들었다고 한다. 실제로 지난 15일 서울 마포문화센터에서 열린 돋움음악회 '성기문·이검의 재즈 듀오 콘서트'는 50명 가량의 관객과 함께 소박하게 진행됐다.

"세상이 바뀔수록 무관심의 벽은 점점 더 높아지는 것 같아요. 음악회를 진행하면서 우리 사회가 이 문제에 얼마나 냉담하고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지 생각하게 됐죠. 전 여전히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정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정상으로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음악회에 오는 분들에게 '다음에 올 때 이웃에 있는 한 분씩만 모시고 오라'고 부탁합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어렵더라고요. 그렇지만 실망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을 끌어안고도 불편해하지 않으며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계속 노력할 겁니다."

"'장애인이 있는 가정'이란 구분이 없는 세상을"
▲ '돋움음악회' 대표 이상만 씨. ⓒ 프레시안

그렇다면 이상만 씨가 바라는 사회는 어떤 것일까?

"영화 '말아톤' 아시죠? 그 영화 덕분에 자폐증으로 대표되는 발달장애에 대한 인식이 많이 긍정적으로 바뀌었어요. 그런데 발달장애아를 둔 부모들이 그 영화를 보는 마음을 생각해 보셨어요? 속이 타죠. 사실 '말아톤'과 같은 경우는 10년에 한 번 정도 일어나는 '기적'과 같거든요. 자폐는 '장애'이지 '병'이 아니에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발달장애를 앓는 원인을 '애정결핍'이라고 생각하죠. 또 '말아톤'처럼 '기적'이 일어나지 않으면 부모들에게 비난이 돌아가고…. 안그래도 죄의식을 갖고 있는 부모의 마음은 정말 타들어가는 거에요."

전문가들은 적게는 1000명 당 1명, 심지어 어떤 학자는 400명 당 1명 꼴로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가 태어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씨는 "우리나라에 적어도 5만 명에서 7만 명까지 발달장애인이 있는 셈이니 상당히 많은 숫자"라고 말했다.

"사실 발달장애는 아직도 원인을 모릅니다. 유전이라고도 하고, 후천성이라고도 하고, 뇌 속에 있는 전달물질이 잘못돼 그렇다는 학설도 있어요. 어쨌든 그런 분위기 속에서 발달장애아가 태어난 가정의 부모는 인간도 아닌 거죠. 10년 전까지만 해도 그것이 공공연하게 상식처럼 통했죠."


또 그는 사회적 편견도 문제이지만 장애인을 두고 있는 가정을 궁지로 몰고 가는 한국의 실패한 정책도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발달장애인들은 그 자신도 힘들지만 무엇보다도 힘든 이들은 장애인을 둔 가족이에요. 언제 돌출행동을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24시간 긴장한 상태로 발달장애인을 지켜볼 사람이 필요하거든요. 그러다보니 정신적, 물리적으로 생활이 망가질 수밖에 없죠.

보호자 입장에서는 잠시 장애인을 맡기고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어요? 그런데 우리나라의 국가보조금을 받는 복지시설들은 부모가 있을 경우 장애인을 받아주지 말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어요. 결국 '내 자식이 아니다'라며 맡길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오게 되죠. 그렇다고 사립시설에 맡기자니 엄청난 돈이 들고…."


"공동육아로 함께 자녀 키우는 꿈 꿉니다"

그는 앞으로 돋움공동체를 통해 음악회 외에도 하고 싶은 것이 많다고 했다. 지금은 들어오는 후원금으로 음악회를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수준이지만 장차 '돋움공동체'를 통해 발달장애인을 둔 가정을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해보고 싶다고 했다.

"발달장애인이 있는 가정들과 '공동육아'를 조직해보고 싶어요. 동네마다 공동육아를 위한 집을 짓고 부모들이 돌아가면서 장애인들을 돌보는 거죠. 부모들이 돌아가면서 휴식도 취하고. 남에게 맡기는 것보다 훨씬 안심할 수 있겠죠."

다소 우울한 듯 이야기를 시작했던 그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감돌았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꾸준히 음악회를 진행해 왔듯이, 얼마 안 되는 관객들 앞에서 '다음에 꼭 한 분씩만 더 데리고 공연 보러 오라'며 미소를 지었듯이,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없는 세상'과 '공동육아'에 대한 그의 말이 언젠가는 꼭 현실에서 실현될 것처럼 든든하고 믿음직하게 들렸다.

매달 열리는 '돋움음악회'는 10월에는 20일 저녁 8시 서울 YWCA 마루 소극장에서 열릴 예정이다. 아직 연주자는 확정되지 않았지만 국악과 서양악을 혼합한 '퓨전 앙상블' 콘서트로 준비할 계획이라고 한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돋움공동체 카페(http://cafe.daum.net/Dodum)'에 찾아가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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