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낮의 클럽 분위기는 어떤가 궁금했다. 지난 밤의 끈적이는 열기가 사라진 클럽은 한 낮의 햇빛에 얼굴을 숨긴 창백한 비밀의 방이 돼 있는 게 아닐까. 하지만 18일 오후 4시 홍대 클럽 캐치라이트에는 한 밤의 열기가 그대로 남아있었다. 다만, 흥겨운 비트 대신 스탭들의 고성이 홀 전체를 가득 메웠을 뿐이다. 바로 영화 <미녀는 괴로워>가 막바지 촬영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날 촬영장면은 극중 제니(김아중)의 앨범 발매 기념 파티가 열리는 장면. 마치 비밀스러운 성에 입성하듯이 어두운 계단을 타고 들어간 클럽에는 음악도 없이 사이키 조명이 번쩍이며 돌아가고 있었다. 현란한 조명아래 놓여진 것은 제니 역을 맡은 김아중의 사진들. 김아중의 매혹적인 자태가 담긴 사진들이 홀의 정면과 측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클럽의 바와 계단에는 세련된 옷차림의 늘씬한 남녀들이 무리 서있다. 이들의 임무는 파티의 분위기를 띄우는 것. 그리고 이들을 통제할 임무를 띤 십 여명의 스탭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웅성웅성하다가도 연출부 스탭의 목소리가 울리자 홀은 금새 조용해진다. 보조출연자들에게 더 리얼한 환성을 요구하는 김용화 감독의 지시가 계속해서 이어진다. 좁은 홀이 수십 명의 보조출연자들과 영화 스탭, 취재진들로 북새통인데도 촬영준비는 착착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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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의 첫 앨범 발매 기념 파티는 제니와 상준의 로맨스에 새로운 도화선이 될 예정이다. ⓒ프레시안무비 김정민 기자 |
몇 차례 테스트 촬영을 거친 후 오늘의 스타 제니와 상준(주진모)이 모습을 드러냈다. 반짝이는 보라색 드레스와 은색 스틸레토 힐로 화려하게 차려입은 김아중과 단정한 회색 양복의 주진모가 리허설 촬영에 들어갔다. 주인공들의 등장으로 소란스러워진 것은 영화 속 장면뿐만이 아니다. 두 배우에게 몰려든 취재진들 때문에 감독은 연신 협조의 부탁을 전해야 했다. 그리고 들어간 감독의 슛사인. 얼꽝, 몸꽝에서 세기의 미녀로 환골탈태한 제니는 막 신데렐라의 황금마차에서 내릴 참이다. 제니는 자신을 환호하는 팬들과 연이어 터지는 샴페인 소리에 얼떨떨할 따름이다. 상준의 에스코트를 받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한발한발 계단을 내려오는 제니. 김아중은 세련된 옷차림과는 달리 설레임과 당혹감을 가진 제니의 진짜 속 마음을 큰 눈에 담아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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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인물이지만 극과 극을 달리는 외모변신 때문에 실상 1인 2역을 해야했던 김아중과 능력이면 능력, 외모면 외모, 성격이면 성격 모두가 완벽한 남자 한상준 역의 주진모 ⓒ프레시안무비 김정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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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파티장면을 위해 동원된 수십 명의 보조출연자들. 촬영이 반복될수록 이들의 환호성도 점차 리얼해졌다. ⓒ프레시안무비 김정민 기자 |
영화 <미녀는 괴로워>는 일본의 동명만화를 영화화한 작품. 원작은 과장됐지만 그래서 지독히 현실적이고, 때로 엽기적인 코드의 발랄한 유머를 선사해 한국에서도 꽤 큰 인기를 모은 바 있다. 169cm의 키에 95kg 몸무게. 어느 노래 가사처럼 낭만적으로 들리지 않는 한나의 체형이다. 뚱뚱한 외모 때문에 어딜 가도 고개 한번 쳐들고 살아보지 못한 한나에게 신이 유일하게 허락하신 것은 목소리. 한나는 인기 가수의 노래를 대신 불러주는 '얼굴없는 가수'다. 언제나 주눅들어 우울한 인생을 살아왔던 그녀. 그러나 늘 그렇듯이 변화는 사랑과 함께 찾아온다. 음악 프로듀서 한상준을 짝사랑하던 한나는 그의 생일날 어떤 일이 있었는지 바람과 함께 사라지고 만다. 바로 그 동안 현대 의학의 힘을 빌어 '페이스 오프'를 시도한 것이다. 169cm의 키에 48kg 몸무게, 그리고 황홀한 외모로 다시 태어난 한나는 이름도 제니로 바꾸고 자기 이름으로 가수로까지 데뷔한다. 그래도 변하지 않는 것은 그녀의 착한 심성이다. 하지만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추녀였을 때의 고상하지 못한 습관들이 그녀에게 남아 있게 되면서 온갖 해프닝이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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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과거는 떨치고 화려한 미래를 향해 걸어 내려오는 제니. 이 모든 일이 꿈만 같다. ⓒ프레시안무비 김정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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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만화는 추녀가 미녀로 거듭난다는 설정으로 독자들에게 대리만족의 쾌감을 안겨주며 화제를 모았다. 영화의 성공요인도 바로 그 지점에 있다. 뚱뚱하고 못생긴 그녀를 얼마나 아름답게 표현해 내느냐 하는 것. 결국 특수분장을 얼마나 리얼하게 하냐가 관건일 수 밖에 없다. 이를 위해 <미녀 삼총사2>와 <데어데블>를 작업했던 할리우드의 특수분장팀 Kris Kobziana & Christopher Burgoyne가 <미녀는 괴로워>의 특수 분장 작업에 참여했다. 실상 1인 2역을 한 김아중은 "매일 4시간의 특수 분장과정과 1시간의 분장 제거 과정을 거쳐야 했다"고 말한다. 또한 "특수 분장을 하니 육체적 제약이 많아서 연기에 몰입이 잘 안돼 총명탕을 먹기도 했었다"며 특수 분장의 고충을 털어놓기도 한다. 영화는 본래의 김아중과 특수분장을 한 김아중을 대조시킨 티저 포스터를 이미 공개한 바 있다. 만화 특유의 과장된 이미지를 할리우드 특수분장팀의 도움을 받아 해결했다 해도 유명 만화를 영화화하는 작업에는 또 다른 문제가 있었을 것이다. 영화는 보다 현실적인 느낌이 뒷받침 돼야 하기 때문이다. <오! 부라더스> 이후, 3년 만에 메가폰을 잡은 김용화 감독은 원작의 주제에서 한발 더 나아간다. "굵직한 설정들은 원작을 따랐으나 연인에게 '성형고백을 할까 말까'하는 원작의 갈등을 '내가 누구인지 밝힐까 말까'라는 자기 정체성에 대한 고민으로 확장했다"라는 것. 그러나 만화보다 더 진지한 주제를 택했음에도 영화는 원작의 기운때문인지 발랄한 로맨틱 코미디가 될 예정이라고 한다. 촬영 종반부에 이른 <미녀는 괴로워>는 2달간의 후반작업을 거친 뒤, 오는 12월 김아중의 엽기적인 변신과 말랑한 로맨스를 관객에게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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