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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좋던 신문이 조선일보 뒤만 따르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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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좋던 신문이 조선일보 뒤만 따르더니..."

동아투위 선배들이 말하는 '동아일보 사랑'

"병관씨(동아일보 대표)가 밥 먹으러 나오다가 딱 서더니 우리를 한참 처다 보더니 몸에 걸고 있는 팻말을 꼼꼼히 다 읽더니 그냥 가……. 무슨 생각을 한 걸까."

"노조위원장은 나와서 '선배님들 수고 하십니다'하고 깍듯이 인사를 하더라고."

"손 기자, 우리가 싸울 때가 딱 손 기자 나이 때야. 벌써 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됐는데 아직 동아는 사과 한마디가 없어."

"그 좋던 신문이 우리 내쫒고 조선일보 뒤만 따라가더니 3류가 되고 있어. 사실 그게 제일 가슴이 아파!"

"아까 OOO이 사옥에서 나오더니 인사를 하더군. 취재 온 사진기자한테 부탁해서 같이 기념사진이나 찍자고 하니 손 사레를 치며 도망가면서 그래 '난 그때 용기가 없어서 못 싸웠잖아. 내가 어떻게 여러분들 하고 사진을 찍어!' 그러는 거야."

"지금이라도 마음은 옛날에 격려광고 실어준 독자들하고 힘 합치면 신문하나 새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이젠 다들 너무 늙었어."

"우리 중에 장관도 나오고 (임)채정이나 (이)부영이 같은 국회의원도 나와서 다 잘 나가는 줄 아는데 화병으로 여럿이 죽었고 아직도 고생하는 사람이 더 많아. 그걸 꼭 써 줘요."

"김상만씨가 왜 그리 우리한테 인간적으로까지 그리 모질게 했는지……. 박OO가 젊은 혈기에 주필하고 싸우다가 자기한테 욕한 걸 갖고 그랬나?"

"인터넷 하는 젊은이들이 잘 모르니 내가 쉽게 설명을 하지. 옛날에는 아예 신문편집을 중앙정보부랑 종로서 같은 곳에서 나와서 하다시피 했어. 데모한 거 한 줄이나 나올까? 그렇게 상주하고 간섭하는 기관만 4곳이 있었어. 그래서 우리가 '동아가, 언론이 이러면 안 된다!' 하고 일어섰고 잠깐 동안이지만 동아일보가 권력의 탄압속에도 꿋꿋이 공정보도를 했어. 그러다가 박정희가 광고해약 등 압박을 강하게 하기 시작하자 사주인 김상만씨가 겁을 집어먹고 박정희가 지시한 것보다 더 심하게 탄압을 했어. 그때 용기가 있고 기백이 있던 좋은 기자들을 내보낸 후유증으로 아직도 동아일보가 흔들리는 거야."

동아투위 출신 언론계 대선배들이 17일 동아투위 28주년을 기념해 동아일보 사옥 앞에서 1인 시위와 세미나를 마친 뒤 이날 저녁 주위 식당에서 한 말들이다. 동아일보 오너들이 반드시 들어야 할 '역사의 소리'였다.

***"29주년 행사는 없기를 바란다"**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위원장 조성숙)는 17일 저녁 프레스센터에서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28주년기념식'을 갖고 동아일보가 동아투위에 대한 공개사과를 하고 동아투위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해 줄 것을 촉구했다.

조성숙 위원장은 "지난 28년간 우리의 투쟁은 한번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적이 없지만 오늘 우리 투쟁의 결실인 한겨레신문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기자들이 아침부터 찾아와 사옥 앞에서 벌인 1인 시위와 이 자리까지 취재를 하고 있다"며 "앞으로 우리의 노력과 희생의 결실인 언론자유가 계속 지켜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사진1>

조 위원장은 또 "동아일보측이 이제라도 우리에게 저지른 만행에 대해 사과와 명예회복을 해서 내년 29주년 행사는 없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1975년 당시 농성 중이던 광화문사옥에서 청진동까지 끌려 나갔던 이부영 한나라당 의원은 "유신의 독재에 맞서고 사주의 언론자유가 아니라 기자의 언론자유, 즉 독자들과 국민들의 언론자유를 위해 싸운 노력이 바로 '동아투위'였다"며 "역사 없는 나라가 없고 역사 없는 신문과 언론이 없듯이 이제 후배 기자들이 선배들의 희생과 노력을 기억하고 그 정신을 이어가길 빈다"고 당부했다.

당시 7년차 편집기자로 있다가 끌려나왔다는 성유보 민언련 이사장은 "동아투위는 총칼에서 말이 지배하는 사회로 돌려놓으려는 투쟁이었고 그 길을 선택한 후 받은 박해는 독재권력 하에서 용기 있는 지식인들이 겪어야 할 숙명이었다. 지금 제도권언론의 일부 신문은 언론자유를 멋대로 알고 '거짓말과 왜곡도 할 수 있는 자유'로 착각하고 있다"며 "이제 올바른 언론자유 운동이 필요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정연주 한겨레신문 주간은 "그때 단식하다가 병원으로 끌려 나갈 때 만29살의 청년이었는데 5일후에 태어났던 아들이 그때 내 나이쯤 됐다. 젊고 순수한 기자와 방송인들이 언론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독재 권력과 사주가 이를 힘으로 몰아낸 것"이라며 "동아일보는 자신의 범죄를 지금이라도 고백하고 사죄하길 빈다"고 말했다.

<사진2>

당시 광고국장 이었던 김언호씨는 "동아일보 독자들의 격려광고에 감사표시로 메달과 감사장을 주기로 하고 대표인 김상만 사장 이름을 넣어서 한 이틀 줬는데 바로 나를 부르더니 잔뜩 겁먹어 가지고 '제발 당신이름으로 내고 문안도 약하게 고치라'며 벌벌 떨었다"며 "그래서 광고국장인 내 이름으로 나가게 했는데 지금 동아일보 신문박물관에 가보면 처음 이틀 나간 김 사장 명의의 감사장을 어디서 구해다가 그 문안까지 고쳐서 너무나 자랑스럽게 전시하고 있다. 동아는 나를 끌어 낸 것도 모자라 역사마저 왜곡하고 있다"고 섭섭한 마음을 밝혔다.

김언호씨는 덧붙여 "당시 해직을 할 때 김상만씨가 각 국장에게 '짜를 놈을 올려라'라는 지시를 내렸다. 고민 끝에 명단을 올리지 않은 국장은 같이 짤리는 식으로 처리를 해서 나도 잘렸다"며 "당시 국장들이 이제라도 꼭 양심선언을 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사진3>

<사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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