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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적 사상으로 간디를 뛰어넘은 그의 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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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적 사상으로 간디를 뛰어넘은 그의 제자"

[화제의 책] 비노바 바베의 '포토 명상집' 출간

"당신의 사랑과 믿음을 보며 나의 눈에는 기쁨의 눈물이 흘러넘치고 있습니다. 나는 그런 사랑과 믿음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향한 당신의 사랑과 믿음이 당신에게 무한한 유익이 되리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당신은 위대한 섬김의 도구가 될 것입니다."

이 말은 누군가 간디를 칭송한 말이 아니라 간디(1869~1948)가 다른 이에게 했던 말이다. 간디와 가장 가까운 동료이자 그의 제자였던 비노바 바베(Vinoba Bhave, 1895∼1982). 간디와 함께 인도의 비폭력 평화운동을 이끌었던 비노바 바베는 현재 인도의 진정한 성자 중 한 사람으로 존경받고 있다.

비노바 바베의 탄생 111주년을 맞아 그의 글과 수행 여정을 담은 사진을 함께 묶은 '포토 명상집' <홀로 걸으라, 그대 가장 행복한 이여>(비노바 바베 글, 구탐 바자이 사진, 김진 편역)가 번역돼 출간됐다. 또 그의 삶과 사상을 조명해보는 심포지움이 12일 서울 동대문구 장충동에 위치한 만해 NGO 교육원에서 열려 그간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비노바 바베의 사상을 접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토지 헌납' 호소하며 20년간 맨발로 걸었던 수행자
▲ <홀로 걸으라, 그대 가장 행복한 이여> (비노바 바베 글, 구탐 바자이 사진, 김진 편역, 예담 펴냄) ⓒ프레시안

비노바 바베는 1895년 9월 11일 인도 마하라수트라 주에서 브라만 계급으로 태어났다. 1905년 10살의 나이로 힌두교의 영성 수련자로서 평생을 독신으로 살겠다는 '브라마차리야(진정한 금욕 수련)' 서약을 한 그는 1916년 출가했다. 영적인 진리와 실천적인 행동을 구체적으로 담아낼 수 있는 삶의 길을 찾던 비노바는 간디를 만나 그와 함께 아메드바드 아쉬람(수행 공동체)을 건설하며 구체적인 활동에 나선다.

1940년대 중반까지 비노바는 간디와 함께 다양한 공동체사업을 조직했고, 인도의 독립을 위한 사티아그라하(비폭력 저항운동)'을 이끌며 세상에 알려졌다. 1948년 간디가 죽은 뒤 비노바는 간디의 진정한 정치적 후계자로서 공동체 운동과 '부단 운동(토지 헌납 운동)'을 주도했다.

비노바를 유명하게 만든 '부단 운동'은 그가 20여 년 동안 인도 전역을 맨발로 걸어다니며 지주들에게 땅이 없는 가난한 이들을 위해 6분의 1의 토지를 공유하자고 호소한 운동이다.
▲ 비노바 바베

그는 "도둑질은 범죄이지만 많은 돈을 쌓아놓는 것은 도둑을 만들어내는 더 큰 도둑질입니다. 돈이 많다는 사실만으로 존경받는 자리를 내주면 안됩니다. 만약 당신이 다섯 명의 자녀를 두었다면 땅 없는 가난한 이들을 여섯째 아들로 생각하고 그를 위해 소유한 땅의 6분의 1을 바치십시오"라고 호소했다.

이 운동을 통해 기부받은 약 400만 에이커의 땅에 그는 아쉬람을 건설했으며, 사회가 천시하고 경멸하는 온갖 노동을 실천하는 육체노동자가 되어 가난한 이웃들과 함께 평생을 살았다.

비노바는 말년에 사회적 활동을 중단하고 기도와 명상 수행을 하다 죽음이 임박했음을 깨닫고 치료도 거부한 채 단식을 하다가 1982년 생을 마쳤다.

비노바를 사진으로 남긴 그의 제자

3부로 구성된 명상집의 1부는 그가 진리를 추구하기 위해 출가하기까지 가족들의 사진과 이야기가 담겨 있고, 2부는 인도를 걸어서 순례하며 전개한 '부단 운동'에 대한 사진과 글을 모았다. 3부는 그가 세운 여성 공동체인 '브라마비디야-만디르'에서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명상집에 담긴 사진들은 30여 년간 비노바의 수행을 함께 했던 제자 구탐 바자이가 촬영한 것이다. 그는 12살이 되던 해인 1951년, '비노바의 여정을 사진으로 기록하라'며 어머니가 건네준 작은 카메라로 비노바의 모습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 비노바 바베가 걸으면서 강연하는 모습

바자이는 포토 명상집을 출간하게 된 계기에 대해 "자비의 메시지가 퍼져 나가는 것을 즐겁게 받아들이고 마음을 일치시키고자 했던 비노바의 종교적 소망을 모든 이들이 볼 수 있도록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비노바가 '소유'에 대해 몸소 보여주었던 길을 따라, 나는 비노바의 사진에 대한 저작권을 주장할 뜻이 없다"며 "누구나 이 사진들을 적절하게 사용해도 좋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 책의 수익금 중 일부는 비노바가 세운 여성 공동체 '브라마비디야-만디르'에 지급될 예정이다.
▲ "육체노동은 영적인 깨달음을 위해 필수 불가결하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단지 물질적인 성취를 얻는 행위에 불과하다." (비노바 바베)

실천을 통해 결합된 '마음의 평화'와 '사회적 평화'

12일 열린 심포지움은 평화운동단체 '씨알평화'의 창립을 기념하는 자리이자 비노바의 삶과 사상을 총체적으로 조명하는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는 비노바 바베의 '부단 운동'을 비롯해 공동체 운동, 비폭력과 평화 사상, 교육 이론 등이 논의됐다.

명상집의 편역을 맡은 김진 목사는 "비노바의 삶은 철저한 영성가로서의 삶이었다. 이 '영성가'란 사회적 실천과 유리된 내면적 삶으로서 영성가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에게 있어 '영성'은 철저히 실천적 삶과 결합된 힘이었다"고 지적했다.

이진권 목사 또한 "비노바 바베의 사상과 운동의 핵심적 특징은 '마음과 영혼의 평화를 추구한다'는 목표와 '사회구조적 변화 및 사회적 평화'라는 목표를 추구하는 과정이 분리되지 않고 하나로 통합되어 이루어졌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안성의료생활협동조합의 홍수연 씨는 비노바 바베의 글을 인용해 그가 '부단 운동'을 이끌었던 논리를 설명했다.

"토지를 헌납받아 재분배하는 부단 운동은 부자와 빈자, 모두를 위한 혁명이다. 왜냐면 땅을 가진 자들이 그 땅을 스스로 경작하지 않고, 땅을 경작하는 자들이 그 땅을 소유하지 못한다는 것은 대단히 큰 모순이기 때문이다. 도둑과 부자 개개인을 단죄하거나 동정하는 것보다는 이를 부추기는 사회체제의 철폐를 위해 노력하는 것, 이것이 부단 운동의 의미다."

한편 이화여대의 최영란 강사는 "생태적 민주주의, 생태적 교육 공동체, 자기 주도적 학습 원리, 자유교육의 이상을 풍부하게 간직하고 있는 비노바의 교육에 대한 개혁적 사고는 오늘날의 현실에서도 여전히 도전적인 과제"라고 설명했다.
▲ 그에게 인생이란 최고의 즐거움 그 자체였다. (구탐 바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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