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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9.11. 전쟁이 종식되는 그날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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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9.11. 전쟁이 종식되는 그날을 위하여

[특집]9.11은 영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2001년 9월 11일 오전 8시 45분. 이 날 이 순간은 세상 모든 것의 시작이자 끝이었다. 테러리스트에 의해 납치된 비행기가 뉴욕의 세계무역센터에 충돌, 두 건물이 붕괴하는 모습은 세계영화 역사상 그 어느 블록버스터보다 스펙터클한 장면이었다. 9.11 이후 혼돈의 파동이 전세계에 물결쳤다. 세계 정치와 경제는 新냉전체제에 돌입했다. 선과 악의 가치관도 재편되고 변형됐다. 그날의 공포에 감염되지 않은 곳은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9.11 이후 5년. 대격변의 시대를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인 곳 중 하나가 바로 할리우드다.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지는 영화 가운데 9.11의 상흔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다만 그것이 눈에 띄지 않았을 뿐이다. <플라이트93>이나 <월드 트레이드 센터>처럼 지금에서야 9.11을 정면에서 다루고 있는 듯 하지만 할리우드는 보다 훨씬 이전부터 9.11에 대한 기억을 불러오고 있었다. . 9.11을 외면하거나 기억하거나 9.11 직후 할리우드는 여러 편의 영화 개봉을 취소하거나 제작을 중단했다. 그 영화들은 테러를 소재로 하거나 무너진 세계무역센터가 등장하는 영화들이었다. 세계무역센터가 무너지는 모습을 목격한 사람들에게 그 빌딩을 다시 보여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폭력과 테러를 소재로 한 숱한 상업영화들도 흥행에서 역풍을 맞기 일쑤였다. 그래서 택한 우회로가 바로 전쟁영화들. 리들리 스콧의 <블랙 호크 다운>은 미국의 대외 군사정책이 궁극적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영화를 통해 예시하려 했다. <블랙 호크 다운>은 아프리카 소말리아 내전에 개입한 미군의 고립과 좌절을 그린 영화.
25시 ⓒ프레시안무비
보다 직접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영화는 스파이크 리의 2002년작 <25시>다. <25시>는 9.11 이후의 그라운드 제로의 모습을 등장시킨 첫 영화다. 그것만이 아니다. 영화의 내용이 9.11을 겨냥하고 환기시킨다. <25시>는 마약 밀매상 몬티(에드워드 노튼)가 법정에 출두하기 전 하루 동안의 일을 다룬다. 스파이크 리는 몬티의 돌이킬 수 없는 인생과 「무역센터 빌딩의 붕괴=미국의 붕괴」가 연결돼 있음을 암시한다. 고등학교 때부터 마약을 판 몬티를 비롯해 그의 친구들 곧, 펀드매니저 프랭크와 도덕 강박증에 사로잡힌 듯한 교사 제이콥은 「전형적인 미국 중산층 = 미국 그 자체」다. 영화는 그들의 자각없는 부정과 비리가 인생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 넣었듯이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한 순간 무너져 내린 것 또한 내부에서 시작된 자멸의 필연적인 결과임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 9.11의 징후를 담기 시작한 할리우드
랜드 오브 플렌티 ⓒ프레시안무비

<25시> 이후 9.11을 다룬 영화들이 서서히 등장하기 시작했다. 느린 행보나마 할리우드가 9.11의 충격으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마이클 무어의 2004년작 <화씨 911>이 공개된 것이 바로 이때. <화씨 911>이 다큐멘터리로 사건의 시작과 원인, 그 경과를 추적하는 내용이었다면 <랜드 오브 플렌티>와 <크래쉬> 등은 일련의 영화들은 그날의 공포와 불안이 스며든 개인의 일상에 치중하는 작품들이다. <브이 포 벤데타>와 <시리아나>처럼 정치성을 강하게 내세운 작품들도 나왔다. 9.11 테러 이후 2~3년이 지난 시점에서 제작된 이들 영화들은 사건 직후 미국내에 몰아쳤던 애국주의의 광풍 대신 자성의 목소리를 모은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9.11 이후 미국내에 거리낌없이 등장했던 인종차별과 극단적 전체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언제나 길위에서의 성찰을 담아왔던 빔 벤더스는 <랜드 오브 플렌티>를 통해 아랍인과 미국인의 인간적인 화해를 시도한다. 맹목적인 애국주의와 아랍인에 대한 증오심으로 가득찬 폴을 통해 빔 벤더스는 9.11 이후 미국내 혼돈과 사회에 만연해 있는 인종적, 종교적 편견을 보여준다. <크래쉬>는 빔 벤더스가 상징적으로 제시한 선과 악의 모순을 일상에 풀어놓는다. 영화는 불신과 혼돈에 가득찬 LA도시를 훑으며 일상속에서 수없이 행해지는 인종차별을 이야기 한다. 차강도를 당한 뒤 흑인에 대해 증오심을 품은 백인여자, 흑인이라는 이유로 부당한 몸수색을 당하는 흑인부부, 아랍인과 멕시코인의 피해의식에서 비롯된 비극적인 사건 등등. 인종차별은 사람들의 무의식속에 깊숙히 잠입해 의도하지 않은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다고 영화는 조용히 설파한다. 평온해 보이지만 어딘가 불안해보이는 사람들의 히스테리는 '그날' 이후 미국인들이 갖게된 정신적 공황상태를 보여준다.
시리아나 ⓒ프레시안무비

<브이 포 벤데타>와 <시리아나>는 각기 다른 방식이지만 9.11을 더욱 강렬하게 표현한다. 런던 폭탄 테러로 개봉이 연기됐던 <브이 포 벤데타>는 영화내외적 요소들로 테러와 그로 인한 공포와 불안을 극단적으로 전달한 작품이다. <브이 포 벤데타>가 비주얼과 묵은 역사로 강렬한 테러리즘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면, <시리아나>는 9.11의 원인을 파고든다. 석유, 곧 오일 폴리틱스가 결국 9.11과 이라크 전쟁의 본질적인 원인이었다는 사실은 이제 공공연한 사실이다. <시리아나>는 9.11과 관련, 아랍권에서 벌어지는 미국의 각종 음모들을 고발한다. . 미국에 보내는 스필버그의 인간적인 충고 죄책감에서든 반성하는 마음에서든 9.11을 그려낸 영화들 중 가장 의미심장한 영화를 만들어낸 감독은 스티븐 스필버그다. 그가 유대인이고 할리우드의 메이저 감독임을 감안할 때 그의 행보는 더욱 뜻밖으로 다가온다. 스티븐 스필버그 영화에서 9.11의 징후는 9.11 직후인 2002년에 제작된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처음으로 드러났다. 미래의 범죄자를 미리 판별하여 통제하는 영화속 정책은 테러방지 명분으로 수천만 미국인들의 통화내용을 도청하고 타인종에 대해 지난친 통제를 가하던 미국정부의 현 정책과 정확히 오버랩된다. 이후 스필버그가 만들어낸 <우주전쟁>은 외부의 침공으로 인한 미국인들의 공포와 미국정부의 무능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영화는 블록버스터를 표방하지만 할리우드 상업영화의 스펙터클이 아니라 미국인들의 공포에 초점을 맞춘다. 외계인과 사투를 벌이던 레이(톰 크루즈)가 마침내 전 부인이 있는 평온한 마을에 도착하는 모습은 마치 테러로 초토화된 뉴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우주전쟁>은 예측할 수 없는 일에 대한 공포를 그린 내용이다.
<뮌헨>에서 스필버그의 메시지는 더욱 뚜렷해진다. <뮌헨>은 '테러'라는 현대전쟁의 서막을 울린 1972년 뮌헨 올림픽 테러사건을 다루고 있다. 뮌헨 올림픽 테러는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들이 이스라엘의 올림픽 선수팀 11명을 살해한 사건. 이스라엘은 잔인한 보복을 감행하고 뒤이어 팔레스타인의 더 큰 복수가 시작된다. 그러면서 폭력의 고리는 점점 단단해진다. 영화는 스릴러 형식을 내세워 비극적인 사건을 다루지만 서스펜스의 쾌감에 집중하지 않는다. 국가와 이념을 떼어놓고 봤을 때 너무나 인간적인 그들은 한순간 교감하기도 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순간을 맞기도 한다.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았을 뿐 아니라 죄의식을 함께 가져왔음을 스필버그의 카메라는 포착해 낸다. <뮌헨>에서 결정적인 장면은 마지막 장면이다. 보복의 정당성에 대한 회의로 임무를 포기한 애브너(에릭 바나)와 그를 설득하는 모사드 장교(제프리 러시)의 뒤편에는 쌍둥이 빌딩의 모습이 보인다. 9.11 테러 이후 타민족과 이념에 대항해 강경 대응만을 부르짖었던 미국에 대한 스필버그의 충고이다. . 영화속에서 진화한 9.11의 이미지 5년은 짧지 않은 시간이다. <플라이트 93>과 <월드 트레이드 센터>와 같이 9.11을 직접적으로 다룰만큼 적당히 상처가 아문 시간이었을 뿐 아니라 9.11에 대한 새로운 형식과 시각도 가능케했던 세월이었다. 9.11의 이미지는 좀더 폭넓은 장르와 시각으로 다뤄졌다. 그 대표작이 모두 2006작인 <인 사이드맨>과 <빅리버> 두편. <25시>에서 이미 9.11을 다룬 스파이크 리 감독은 9.11에 대한 가벼우면서도 진지한 우화 한 편을 내놓는다. 바로 농담같기도 하고 진담같기도 한 <인 사이드맨>이 그 영화다. 백주대낮 뉴욕의 은행에 잠입한 은행털이범은 선글라스와 복면으로 전형적인 테러리스트의 복장을 보여준다. <인 사이드맨>은 영화 전편에 9.11의 이미지를 가득 채운다. 복면을 쓴 강도들이 인질을 처단하는 모습, 강도들의 정체를 밝히겠다며 중동인을 심문하는 모습과 그에 얽히는 웃지도 울지도 못할 이야기는 9.11 이후의 미국사회를 조롱한다.
미일합작영화 <빅 리버>는 일본 감독, 즉 이방인이 바라본 9.11 이후의 미국이다. 9.11의 상처는 도심과 떨어진 아리조나의 사막에도 배어나온다. 일본인과 파키스탄인과 미국인의 이상한 여정. 점차 친숙해지는 그들과 달리 이들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이 곱지 만은 않다. 인종과 국적이 다른 사람들의 동행은 주위의 의심어린 눈초리를 끊임없이 받는다. 아리조나 주의 사막은 9.11 이후 인종편견으로 가득찬 미국사회의 황량한 심상을 반영한다. 하지만 연출을 맡은 후나하시 아츠시 감독은 이 특별한 여정을 통해 9.11 이전 삶의 가치를 제시한다. 이 영화들은 9.11 당시의 상황을 직∙간접적으로 재현해냄은 물론 이후 엄청난 진동에 흔들리고 있는 미국사회를 조망한다. 9.11의 상처와 그 잔영이 알게 모르게 스며든 영화는 무수히 많다. 사건의 시점과 어느 정도 멀어진 현재, 9.11이 미국인들, 더 나아가 세계 사람들에게 끼친 영향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이 영화들이 담아내고 있는 것은 9.11에 대한 자성이다. 사건 이후 공포와 불안을 이유로 이데올로기적으로, 군사적으로 편협해지고 극단적이 된 미국에 대한 걱정과 우려다. 9.11 영화들은 이를 극복하기 위한 미국인들의 양심의 일기장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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