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처리의 해법을 두고 여야 간 설전이 계속되고 있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10일에도 기존입장 고수를 강조하며 책임 떠넘기기 공방을 벌였다.
이에 따라 오는 14일로 예정된 본회의에서 전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이 처리될 수 있을지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이 캐스팅보트로 주목받고 있는 가운데 이들을 설득하기 위한 여당의 물밑 접촉이 분주하다.
우리-한나라 타협 어려울 듯
'전효숙 사태'의 해법과 관련해 정치권에서 거론되는 방안은 크게 3가지다.
첫 번째는 전 후보자가 자진 사퇴하고 청와대가 새 헌재소장을 적법한 절차를 거쳐 지명하는 방안이다. 한나라당의 주장이 이것이다. 유기준 대변인은 10일 "여야 합의가 있더라도 법률적 절차를 어긴 것으로 나타나면 뒤늦게라도 바로잡아야 하는 것이 입법기관인 국회의 당연한 도리"라며 "사태를 일으킨 노무현 대통령과 청와대의 편법과 꼼수에 부화뇌동한 전 후보자는 자진사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법적 흠결을 깔끔하게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이지만, 청와대와 여당이 인사정책의 실패를 자인하고 백기항복을 하라는 요구와 다름없어 여권이 수용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헌재소장 공석이라는 초유의 사태도 불가피하다.
두 번째는 여야 간의 원만한 협상을 전제로 인사청문특위가 전 후보자에 대한 심의보고서를 채택하고 14일 본회의에서 표결처리하는 방안이다. 열린우리당 노웅래 공보부대표는 "한나라당의 인사청문회 원천무효 주장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라며 "우리당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헌재소장의 인준안을 처리하겠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 방법 역시 '전 후보자에 관한 모든 표결 불참' 방침이 확고한 한나라당의 굴복을 요구하는 것이어서 실현 가능성이 크지 않다. 또한 근본적인 위법성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닌 이상 법리공방이 지속될 가능성이 농후하고, 그렇게 임명된 헌재소장도 권위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게 된다.
우리당 '우회로' 기웃, 민주-민노가 관건
세 번째 방안은 민주당 조순형 의원을 설득해 청문특위의 보고서를 채택하거나, 이것이 무산될 경우 임채정 국회의장이 임명동의안을 직권으로 상정해 처리하는 방안이다. 14일 본회의 전까지 우리당과 한나라당의 극적인 타협이 도출되지 않는 한 여권은 이같은 우회로를 통해 처리를 강행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조순형 의원의 심의보고서 채택에 대한 동의 여부와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이 본회의에 참석해 의결정족수를 채워줄지 여부, 임채정 국회의장이 직권상정이라는 무리수를 둘 것인지 여부 등이 관건이다.
김한길 우리당 원내대표가 9일 밤 한나라당이 불참한 가운데 4당 원내대표 회동을 주선해 향후 원만한 처리를 당부한 것은 이런 수순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노웅래 부대표도 "한나라당 외의 야당의 협조를 얻어서라도 헌법재판소가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적법절차를 밟겠다"고 국회의장 직권상정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그러나 민주당 김효석 원내대표는 "직권상정은 안된다. 여야 협조 하에 원만하게 처리돼야 한다"고 제동을 걸었고,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단 대표도 "절차상 흠결이 드러난 만큼 그 부분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정진석 국민중심당 원내대표도 "사태를 일으킨 책임이 있는 청와대의 입장을 우선 지켜보겠다"며 청와대의 유감 표명을 선결조건으로 달았다.
다만 청문특위의 캐스팅보트인 조순형 의원은 "이제까지 여야 합의로 진행된 청문회를 무시할 수는 없다"며 "이 문제는 국회에서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고 본다"고 유연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원칙은 철저하되 청문회를 두 번 하는 상식에 맞지 않는 일을 피하기 위해선 정치권 합의에 의해 (헌법재판관) 인사청문회를 갈음한다고 결의하면 해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과 민주노동당도 14일 본회의마저 파국으로 끝날 경우의 후폭풍을 우려하는 내부기류가 강해 여권의 가시적인 보완조치가 나오면 표결에 참여하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와 관련해 우리당은 10일 헌재소장으로 지명된 후보자를 대상으로 헌재소장과 헌법재판관 인사청문회를 동시에 실시하는 방향으로 관련법을 개정하기로 했다. 이번 논란에서 드러난 인사청문회법의 미비점을 서둘러 보정하겠다는 의지를 밝힘으로써 야당의 협조를 이끌어내자는 취지에서다.
결국 우리당과 한나라당의 극단적 대립 속에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등이 캐스팅보트 지위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가 전 후보자 임명의 최대 고비인 14일 본회의의 향방을 가를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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