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건설노조 파업의 올바른 해결과 건설노동자의 노동권 보장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5일 "유족들의 어려움을 받아들여 건설노동자장으로 장례를 치르기로 결정한 포항건설노동자들의 마음을 이해하며 그 결정을 존중한다"면서도 "장례가 치러졌다고 해서 사인규명과 책임자 처벌, 그리고 대통령의 사과가 끝난 것은 아님을 더욱 분명하게 천명하는 바"라고 강조했다.
독재정권에 의해 아들 잃은 한 아버지의 1인시위
하 씨가 쓰러진 지 두 달이 돼가도록 정확한 사인과 책임소재 여부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나오지 않고 있다. 경찰이 조사중이라는 것이 전부다. 이 가운데 과거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직간접적인 국가폭력에 의해 가족을 잃은 전국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 회원들과 양심수 가족을 둔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회원들이 5일부터 청와대 앞에서 1인시위를 시작했다.
오는 15일까지 계속되는 이 1인시위는 자식 등 가족 중 누군가를 감옥에 보내거나 먼저 저승으로 보낸 사람들이 '민주화를 이룬' 오늘날 또 다시 시위 도중 거리에서 목숨을 잃은 한 노동자를 위해 벌이는 것이다.
릴레이 1인시위의 첫 번째 참가자는 강민조 유가협 회장이다. 그는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91년 시위에 참가했다 목숨을 잃은 故강경대 씨의 아버지다.
이 아버지가 경찰 폭력에 의해 아들을 잃은 것은 벌써 15년 전의 일이다. 그런데 그는 왜 15년이 지난 오늘 청와대 앞을 찾은 것일까?
"한 사람이 죽었는데 청와대는 아무 말이 없다"
<프레시안>은 5일 청와대 앞에서 강민조 회장을 만났다.
"경찰 폭력에 의해 아들을 잃었다. 그런데 15년 후인 2006년 건설노조 조합원 하중근 씨가 아무 죄도 없이 또 죽었다. 손에 쇠파이프를 들지도 않았다. 오직 맨 몸으로 자기 주장을 알리려고 거리에 나섰을 뿐이었다. 민주사회라면 누구나 자신의 주장을 얘기할 권리가 있다.
그런데 포항의 건설노조 조합원들의 얘기는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 아무도 자신의 얘기를 들어주지 않으니 맨 몸으로 거리에서 몸부림을 친 거다. 그런데 그 사람에게 경찰이 방패와 곤봉으로 사정 없이 아무 곳이나 찍고 때렸다. 하중근 씨의 시신이 그걸 보여주고 있다. 결국 하중근 씨는 귀한 목숨을 잃었다. 한 사람이 죽었는데 정부는 아무 말도 없다. 그래서 청와대 앞까지 왔다."
"내 자식이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의 자식의 생명도 귀한 것"
강민조 씨는 아들을 잃었던 또 한 사람의 유족으로 하 씨 유족들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자식을 잃은 것은 사람 하나가 죽고 사는 문제를 넘어서는 것"이라고 했다.
"자식을 잃으면 그 가정은 완전히 파괴된다. 한 사람이 죽는 것이 아니라 가족 전체가 죽는 것이다. 자식을 잃어버림으로서 그 가족은 모든 희망과 꿈을 잃는다. 아마 하중근 씨 유족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노 대통령이 그 유족들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 그리고 유족들 앞에 정식으로 사과해야 한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는 "하 씨의 사인에 대해 경찰이 조사 중"이라는 이유로 입을 다물고 있다. 하 씨의 사인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뤄지기 전까지는 장례를 치를 수 없다던 유족들도 "기다리기에 지쳤다"고 한다. 강민조 씨는 "누구에게나 가족의 아픔은 엄청나게 큰 것 아니냐"고 말했다.
"자기 자식에게 작은 상처 하나만 나더라도 그것 때문에 마음이 아프고 차마 잊지 못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그 사람들도 그럴 것 아니냐. 그렇다면 다른 사람의 자식에 대해서도 같은 생각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강 씨는 "자기 자식은 조그만 상처만 나도 걱정하면서 남의 자식은 생명을 뺏어 놓고도 천연덕스럽게 해명도 없이 잠자코 있는 것이 현 정부의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현 정부 이대로 가다간 비참한 최후 맞을 것"
그는 아들을 잃은 뒤 권력의 속성에 대해 되돌아보게 됐다고 털어놨다.
"우리 경대 이전에도 한열이와 종철이가 경찰의 폭력에 의해 이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1991년 우리 경대도 목숨을 잃었다.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권력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새삼 생각하게 됐다. 나는 권력과 인간의 생명 중 무엇이 더 중요하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인간의 생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경대를 잃고 나서 보니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인간의 생명보다는 그 권력을 잡고 유지시키는 것이 최상의 목적으로 여긴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오직 자신들의 권력만을 위해 사는 사람은 결국 언젠가는 그 죄 값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현 정부도 이런 태도로 나가다가는 박정희 대통령과 같은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될 것"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이날 낮 청와대 앞에는 갑자기 찾아 온 선선한 가을 바람이 불고 있었지만 햇볕은 여전히 뜨거웠다. 그는 1인시위를 시작하기 전 근처의 경찰에게 "노 대통령이 안에 안 계시죠? 대통령 좀 데려 오세요"라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현재 외국 순방길에 있다. 만약 그가 노무현 대통령을 만날 수 있다면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지 물어봤다.
노 대통령 선거운동원이던 강 씨 "군사정권도 이렇지 않았다"
"권력이라는 것은 결코 영원하지 않다. 한시적인 것이다. 대통령의 임기도 길어야 5년 아니냐. 5년 동안 천하를 갖고 있었다 하더라도 임기가 지나면 내려와야 한다. 그런데 자신이 천하를 쥐고 있다고 해서 사람의 목숨을 빼앗으면서까지 모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 휘두르려는 것은 인간으로서 할 도리가 아니다. 사람이라면 그런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 그 얘기를 노 대통령에게 해주고 싶다."
그는 "지금 권력자들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행위에 대한 죄의식이 없는 것 같다"고 강하게 비판했지만, 노 대통령이 후보이던 시절 그는 노 대통령의 당선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던 선거운동원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후보이던 시절 나는 민주당에서 조국통일위원장을 맡아 노 대통령의 당선을 위해 애를 썼다. 나뿐 아니라 민족민주운동 진영에서 노 대통령을 위해 참 많이 나섰다."
그만큼 그의 노 대통령에 대한 기대는 컸다. 더욱이 현 정부에는 과거 독재정권에 맞서 싸웠던 사람들이 많이 들어가 있다.
그러나 아직 사인에 대해 논란이 있는 하 씨를 제외하고도 노무현 정권에서 지난해 2명의 농민이 경찰의 직접 폭력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그래서다. 그는 "이제 보니 '아는 사람이 더 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군사정권에서도 이렇게까지 내려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 권력의 맛 보더니 장님이 됐다"
"현 정부는 협상도 하지 않고 강력히 밀어붙이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옛말에 중이 고기 맛을 보면 빈대도 안 남는다고 하더니 권력의 맛을 모르던 사람이 그 맛을 알게 되니 이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눈이 멀어 버렸다. 지금이라도 안과에 가서 치료하고 눈을 뜨셔서 세상을 좀 바로 봐줬으면 좋겠다."
한 노동자의 죽음. 아무 말이 없는 정부도 문제지만 그는 "포스코도 당연히 책임이 있다"고 했다.
"지난해 포스코는 '한-일 우정의 잔치' 사업에 무려 15억을 내놓았다고 하더라. 그런 포스코가 3000명의 노동자가 일하는 현장에는 화장실을 6개밖에 만들지 않았다. 포스코 관리들의 집에도 화장실이 최소 2~3개는 있을 거다. 그런데 어떻게 3000명이 6개의 화장실을 쓰라고 하느냐. 또 포스코의 건설현장에는 제대로 된 식당 하나 없다. 식당도 없이 맨 땅 위에서 밥을 먹게 하는 것은 건설 노동자들을 인간 대우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런 현실 때문에 포항 건설노조는 오랜 싸움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한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으니 포스코 책임도 분명하다"는 강민조 씨. 그는 "늦었지만 이제라도 노 대통령이 직접 유족들 앞에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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