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할리우드로 간 <시월애>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시월애>의 할리우드 판인 <레이크 하우스>가 오는 8월 31일 국내에서 개봉하는 것. 개봉을 앞둔 <레이크 하우스>가 화제를 모으고 있는 건 비단 이 영화가 한국영화 최초의 할리우드 리메이크 작품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조폭마누라>에서부터 <엽기적인 그녀>와 <올드보이><장화, 홍련><달마야 놀자> 등 그간 할리우드에 리메이크 판권이 팔린 한국영화는 20여 편을 훌쩍 넘어선다. 하지만 지금까지 제작이 완료돼 재탄생한 영화로는 <레이크 하우스>가 유일하다. 이현승 감독이 연출하고 이정재, 전지현이 주연을 맡아 가슴 아픈 사랑을 그려나간 <시월애>는 할리우드로 옮겨 가 알레한드로 아그레스티 감독에 의해 <레이크 하우스>로 만들어졌다. 이정재, 전지현의 자리는 영화 <스피드>의 커플, 키아누 리브스와 산드라 블록이 맡았다.
. 서로 닮은 듯 다른 영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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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크 하우스 ⓒ프레시안무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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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한 남녀가 시간을 뛰어넘어 사랑을 나눈다는 영화의 기본 설정은 물론이고 <레이크 하우스>는 원작인 <시월애>와 거의 비슷한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다. 아름다운 호숫가에 자리 잡은 '레이크 하우스'로 이사 온 알렉스(키아누 리브스)는 이전 집주인이었던 케이트(산드라 블록)의 메모를 발견한다. 이때부터 집 앞 우체통을 사이에 둔 두 사람의 편지 교환이 시작되고 '편지'가 점점 '러브 레터'가 되어 가는 순간, 둘은 다른 시간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알렉스는 2004년에 살고 있지만, 케이트는 2006년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시월애>에서 만화영화 성우였던 은주(전지현)가 <레이크 하우스>에선 의사로 변했다는 게 변화라면 변화. '죽음'과 얽힌 영화의 결말을 생각하면 사람의 병을 치료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케이트의 직업적 성격은 의미를 새겨볼 만하다. <시월애>에서 건축가였던 성현(이정재)은 그대로 건축가 알렉스로 옮아왔고 아버지와의 갈등 구도도 고스란히 다시 그려진다. 시간을 뛰어넘어 둘을 이어주는 '매개물'들은 털장갑에서 목도리로, 금붕어에서 나무로, 녹음기에서 소설책으로 바뀌었지만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나 드라마 구조는 <시월애>를 쏙 빼닮았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흡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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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애 ⓒ프레시안무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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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크 하우스>를 <시월애>와 구분 짓는 것은 '분위기'다. 밀물과 썰물이 교차하는 갯벌 위에 지어진 <시월애>의 '일 마레'가 애잔한 향수를 더한다면 탁 트인 호수 위에 자리 잡은 '레이크 하우스'는 보다 밝은 분위기를 선사한다. <시월애>에 비해 <레이크 하우스>는 두 주인공의 만남에 더욱 적극적이다. 아슬아슬하게 서로 스쳐 지나기만 하던 <시월애>의 주인공들과 달리, <레이크 하우스>의 주인공들은 잠깐이지만 서로 만나 '사랑의 설렘'을 경험한다. <시월애>와 <레이크 하우스>의 분위기 차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엔딩 장면. <시월애>가 서로 닿을 수 없는 남녀의 애잔함에 포인트를 두고 비극성을 강조했다면, 두 사람이 만나 키스를 나누며 마무리되는 <레이크 하우스>는 할리우드의 해피엔딩 공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 마냥 좋아할 일만은 아니다 영화 내적인 내용을 떠나 <레이크 하우스>가 관심을 모으는 또 하나의 이유는 이 영화가 국내에 역수입돼 한국 영화시장을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2년 4월, 워너브러더스는 전 세계 배급 수익의 2.5%를 한국 쪽이 갖는 조건으로 <시월애>의 판권을 50만 달러에 사들였다. 한화 약 5억 원에 해당하는 '싼' 값에 판권을 구입한 워너브러더스가 <레이크 하우스>로 미국에서 벌어들인 흥행 수입은 현재까지만 4천 7백만 달러를 넘어선다. 영국과 독일 등을 비롯해 유럽과 아시아 전역 등 전 세계에서 얻은 수익까지 계산에 넣는다면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수익을 낳고 있는 셈이다. 한국 쪽이 수익의 일부를 나눠 가진다고 하지만 전체 수익 규모에 비한다면 2.5% 비율은 '새 발의 피' 수준이다. <레이크 하우스>의 국내 흥행 수익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50만 달러를 주고 판권을 사 가 다시 만들어진 <레이크 하우스>가 국내에서 관객 15만 명 정도만 모아도, 판권 가격인 50만 달러를 한국 시장에서 고스란히 다시 회수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4, 5년 전부터 한국영화 판권들이 할리우드로 활발히 팔려나간 것을 마냥 즐겁게 여길 수만은 없는 것은 이런 까닭이다. 때문에 할리우드의 거대 자본과 전 세계적으로 얽혀 있는 배급망 앞에서 한국영화의 콘텐츠들이 자칫 할리우드의 '이야기 소스'로 전락하지 않을까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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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인 면과 문화적인 면 모두를 통틀어 한국영화 발전을 위해서 가장 좋은 것은 판권이 아닌 작품 자체를 해외 시장에 판매하는 일이다. 하지만 세계 배급망이 없는 한국 영화계의 현실을 생각한다면 작품 자체를 수출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게 해외 마케팅을 담당하는 이들의 설명이다. 거기다 작품 수출보다 판권 계약이 더 활발할 수밖에 없는 것은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스타'가 없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시월애>의 이정재, 전지현은 아시아 시장을 겨냥하기엔 적합할지 모르나 전 세계 영화 시장을 생각하면 키아누 리브스와 산드라 블록의 '스타 파워'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할리우드 리메이크 작 1호인 <레이크 하우스>의 국내 개봉을 앞두고 한국영화의 세계시장 진출을 위해서는 단순한 판권 판매를 넘어 보다 적극적인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지적들이 나오고 있는 건 그 때문이다. '판권 판매'라는 단기적인 해외 진출 비전 이외에도 해외 배급과 판로 개척을 위한 장기적인 노력들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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