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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동 장관 최선을 다하지 말았으면ㆍㆍㆍ

<데스크칼럼> 세계적 거목 잃지 않을까 걱정

세계적인 명작 영화 한편을 만드는 것과 문화행정을 개혁하는 것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비중 있는 일일까?

이창동 감독이 장관이 됐다. 그가 영화를 만드는 일과 장관을 하는 일 가운데 우리사회를 위해 더욱 중요하고 값어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여론조사를 해 보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우리사회의 판단 척도는 어느 쪽에 더 가치를 둘까?

독자들은 어떤 생각이신가?

***한국에 단 둘 뿐인 세계적 거목 이창동 감독**

기자는 이창동 감독의 열렬한 팬이다.

초록물고기. 공중전화 박스 안에서 ‘막둥이’로 분한 한석규가 ‘바보’ 형에게 울부짖으며 전화통화를 하는 장면의 감동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초록물고기는 이 감독의 데뷔작이다. 이 영화 한편으로 백상예술대상 작품상, 신인감독상, 각본상과 영화평론가상, 대종상 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청룡영화제 최우수작품상 등 국내 주요 영화제를 휩쓸었다.

오아시스. 마지막 클라이맥스에서 설경구와 문소리가 사랑을 나누다 가족들에게 들킨다. 경찰이 들이닥쳐 설경구를 연행하고, 경찰서에서 조사받는 내내 문소리는 온몸으로 저항한다. 하지만 그녀의 몸부림은 강간당한 1급 장애인의 처절한 슬픔과 분노로만 오해된다.

폭풍우처럼 연속해서 쏟아지던 이 장면들을 손에 땀을 쥐고 지켜보면서 기자는 망치로 머리를 두들겨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이창동 감독은 정말 잔인한 사람”이란 생각 뿐이었다.

장애인의 성과 사랑, 평소 관심조차 갖지 못했던 주제다. 그런데 이 감독은 단 한편의 영화로 관객의 무지와 무관심과 편견을 송두리째 날려버렸다. 아니 “너의 같은 놈들이 진짜 장애인이야”라며 마구 몽둥이질을 해댄다.

오아시스로 이 감독은 세계 3대 영화제인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

이창동 감독은 명실공히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거장이다. 허리우드 영화를 수입하는 나라 가운데 자국 영화가 시장점유율 50% 근처를 오르내리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인도 뿐이다. 그만큼 한국영화는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고, 계속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 3대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감독은 임권택과 이창동 둘 뿐이다. 사실 부끄러운 일이다. 특히 최근 우리영화가 날로 가벼워지고 천해진다는 평가와 함께 생각해 보면 심각한 문제다.

***이 장관의 형식파괴, 진정한 그의 몫인가?**

그런데 이처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감독 이창동이 장관이 됐다.

임명 당일부터 화제만발이다. 검은색 와이셔츠에 손수 레저용 자동차를 몰고 나타난 장관. 회의중 넥타이를 풀어헤친 장관. 취임식도 하지 않은 장관. 매일 출근길에 스스로 운전하거나 전철을 타고 다니겠다고 공언했다.

이 장관은 “문화부 공무원들은 권위주의보다 일상적 감각과 형식을 통해 문화예술인들과 소통해야 한다”며 향후 문화정책뿐 아니라 일상적 행정에서 직원들에게 '형식파괴'를 권유하겠
다고 밝혔다.

형식파괴다. 신선한 시도다. 취임 일성대로 “관습을 버리고 국민들의 생각에 가까이 다가서려는 모습”이다. 박수를 보낼만한 일이다.

하지만 한국영화에 우뚝선 거목 이창동 감독이 해야 할 일이 고작 이 정도인가 아쉬움이 크다.

문화행정의 개혁도 중요하고, 이를 위해 이 장관이 해야 할 몫도 분명 인정된다. 그러나 그에겐 이보다 훨씬 더 크고 중요한 몫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장관일 최선 다하다 예술혼 잃지 않을까 걱정**

한 1-2년 열심히 문화행정을 바꾸어내고 다시 돌아가 훨씬 더 좋은 영화를 만들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하지만 초록물고기, 박하사탕, 오아시스에서 보여줬던 그의 치열한 예술혼이 장관 퇴임 후에도 여전히 살아 있을지, 그것이 두렵다.

장관자리는 어쩔 수 없이 잡다한 행정업무를 처리해야 한다. 온갖 정치적 고려도 피할 수 없다. 문화계 전반에 걸쳐 복잡한 인간관계를 맺어야 하고, 그 사이에서 조정과 중재의 역할을 맡아야만 한다.

그러면서 머릿속이 한번 엉크러지면 과연 그의 예술혼이 살아 있을 수 있을까? 폭풍우처럼 휘몰아치던 그 격정적 장면들을 다시 만들어낼 수 있을까?

이 장관은 말했다. “군대영장 받고 공익근무 한다 생각하고 열심히 하겠다. 부끄럽지 않게 현장 동료들에게 돌아가기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 하겠다.”

솔직히 이 장관이 최선을 다해주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가 최선을 다해 장관자리를 훌륭히 수행할수록 그의 예술혼이 사라져 버리지 않을까 걱정이다. 그가 다시는 최고의 영화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 아닌가 너무 마음이 아프다.

***‘문화 중심’의 가치판단 척도를 만들어 달라**

다시 첫 번째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세계적인 명작 영화 한편을 만드는 것과 문화행정을 개혁하는 것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비중 있는 일일까?

단언컨대 세계적 명작 영화 한편 만드는 것이 훨씬 더 비중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진짜 문화 중심의 가치판단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반대 생각을 하는 분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이 장관을 임명한 대통령도, 고사 끝에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던 이 장관 자신도, 그리고 이 장관 취임을 환영한다는 소위 문화예술계 인사들도 모두 그렇고 그런 것 같다.

어차피 장관이 된 이상 열심히 일해주기 바란다. 하지만 그가 가장 먼저 뜯어고쳐야 할 대목은 우리사회 가치판단의 척도를 바로잡는 일이 되어야 할 것이다.

불과 한두 명에 불과한 영화계 거목을 아무렇지도 않게 장관자리에 뽑아다 쓰는 풍토, 그런 작태를 환영한다며 성명을 내는 문화예술계 풍토, 이 장관이 취임 후 하루 이틀 동안 보여준 ‘별 것 아닌’ (이 장관 입장에선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동들을 ‘파격’이라며 법석을 떨어대는 언론, 이 모든 어처구니 없는 현상들을 개탄하지 못하고 오히려 참신한 인사라며 즐겁게 쳐다보는 우리 모두의 가치판단 척도를 바로잡아 주기 바란다.

그래서 앞으로는 그 어떤 대통령이 욕심을 부려도 “이 사람만은 안 된다”면서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지는 그런 문화계, 그런 언론, 그런 사회가 되었으면 싶다.

이 일만 제대로 해 낸다면 이 장관은 후대에 길이길이 남을 명장관이 될 것이다. 진정한 문화행정개혁을 이뤄낸 장관으로 기록될 수 있을 것이다.

이창동 장관, 아니 이창동 감독. 그가 장관일 잘 해내면서 예술혼을 잃어버릴지 모른다는 기자의 걱정이 기우(杞憂)가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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