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르완다 내전을 그린 내용으로 지난 2004년 제작된 <호텔 르완다>가 상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국내 개봉이 미루어지다가 마침내 오는 9월 개봉된다. <호텔 르완다>는 1994년 아프리카 르완다 땅에서 실제로 일어난 종족 학살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개봉 전부터 화제를 모으고 있다. 르완다 내전은 현대사 최고의 비극으로 꼽히는 사건 중의 하나다. 르완다 사회의 종족 갈등이 워낙 뿌리 깊기도 하지만 당시 미국과 같은 서구 강대국을 비롯, 전세계가 르완다의 현실을 철저히 외면했다는 점 때문에 '전세계적인 치욕의 역사'로 기억되고 있다. 르완다 내전은 1994년 4월에 발발해 내전이 진행된 100여 일 동안 학살 당한 사람만 총 100만 명에 이르는 대학살의 사건이었다. <호텔 르완다>를 보기에 앞서 알아둬야 할 역사적 지식 몇가지를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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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르완다 ⓒ프레시안무비 |
. 뿌리 깊은 종족 갈등, 르완다 내전의 역사 르완다 내전은 15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얘기다. 당시 호적전인 유목민 투치(Tutsi)족이 나일강 유역으로부터 아프리카 중앙에 위치한 르완다 지역으로 남하하면서 비롯됐다. 이때부터 투치족은 수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이전부터 르완다에 살고 있던 온순한 성향의 후투(Hutu)족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후투족과 투치족의 부족 갈등이 본격적으로 심화된 계기는 1919년 르완다가 벨기에의 식민통치를 받기 시작하면서부터. 벨기에는 1916년부터 1962년까지 약 40년 동안 르완다를 식민 지배하면서 종족 분리정책을 실시했다. '투치족이 후투족보다 키가 더 크고 코가 오뚝하다'는 말을 퍼트려 두 부족 간의 이질성을 강조하고, 부족을 표시하는 신분증을 발급했으며 소수부족인 투치족에게 정치, 경제, 교육 방면에 특혜를 베푸는 등 차별대우를 했던 것. 이로써 투치족은 벨기에 지배 기간 동안 후치족에게 철저한 지배권을 행사했다. 이러한 방침 뒤에는 후투족과 투치족간의 반목을 확대함으로써 르완다 식민 지배의 명분을 합리화하려는 벨기에 정부의 의도가 깔려 있었다는 게 오늘날 역사학자들의 일반적인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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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르완다 ⓒ프레시안무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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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7월 독립 이후에도 투치족은 후투족에 대한 강압통치를 계속해나갔다. 하지만 1963년 12월, 마침내 이에 반감을 품은 후투족이 2만 명의 투치족을 학살하는 사건이 발생, 두 부족 간의 갈등은 점차 심화되어 갔다. 이로부터 10년 뒤인 1973년에는 후투족이 쿠테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는다. 후투족 정권이 투치족을 억압하자, 투치족은 1990년 10월 '르완다 애국전선'(RPF)를 조직, 정부군에 대한 공격을 개시한다. 르완다에서 본격적으로 내전이 발발하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다. 이 내전이 2년간 계속되자 UN과 아프리카단결기구(OAU)는 1993년 8월 중재에 나서 두 부족 간의 '아루샤 평화협정'을 이끌어낸다. 이를 계기로 두 부족 간의 잠정 임시정부가 조직되고 UN은 2,500명의 평화유지군을 파견했으나 후투족 출신의 하비야리마나 대통령이 약속대로 총리직에 투치족 인사를 임명하지 않자 RPF 측은 내각 참여를 거부하는 등 두 부족 간 긴장이 극에 달하게 된다. 그 와중에 1994년 4월, 하비아리마나 대통령이 암살되자 르완다 내전의 불씨가 급속도로 번져나갔다. 극우 후투군 조직(인터함웨)은 대통령 암살에 투치족이 개입했다며 투치족을 무차별 학살했다. 이에 RPF가 맞대응에 나서면서 인터함웨와 RPF의 갈등이 민간인에 대한 보복 행위로까지 확산되기에 이른다. 민간인 학살이 계속되는 가운데 RPF가 르완다의 수도 키칼리에 진입하자 UN은 더 이상 평화유지활동이 불가능하다고 판단, 270명을 제외한 평화유지군 전 병력의 철수를 명령한다. 94년 7월 투치족 반군이 정권을 장악, 신정부를 출범시키자 구 후투족 정부는 자이르(현 콩고민주공화국)의 고마지역으로 피신, 94년 10월에 망명정부를 수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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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르완다 ⓒ프레시안무비 |
투치족 신정부가 후투족 반군에게 국가 재건에 참여할 것을 요구했으나 투치족의 보복을 우려한 후투족이 귀국을 거부하면서 난민 사태는 장기화되기에 이른다. 더욱이 구 후투족 정부군이 자이르 내전에 개입하여 사태를 격화시키면서 르완다 내전의 파장은 아프리카 전체로 확대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현재까지도 여전히 후투족 반군이 르완다 국경 바깥에서 진입을 노리고 있으며 르완다 내에는 1994년 내전 때의 학살과 관련해 후투족 8만 명 가량이 투옥돼 있는 실정이다.
. 너무나 복잡한 내전, 그 해법을 찾아주는 영화 영화 <호텔 르완다>는 르완다 내전이 발발한 1994년 4월의 실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하비아리마나 대통령이 투치족과의 평화협정에 동의하자 전 세계의 외신기자들은 이를 취재하기 위해 르완다의 수도 키갈리로 몰려든다. 키갈리의 최고급 호텔 '밀 콜린스'의 지배인 폴 루세사바기나(돈 치들)은 외국 손님들을 맞느라 바쁘다. 그러나 평화로운 분위기도 잠시, 대통령 암살 소식이 전해지면서 후투족과 투치족 간의 피비린내 나는 살육 경쟁이 계속된다. <호텔 르완다>는 르완다 내전의 현장에서 후투족과 투치족을 가리지 않고 1268명의 르완다인을 호텔에 수용, 보호한 폴 루세사바기나의 인간적인 영웅담을 다루고 있다. 온건파 후투족인 폴과 투치족인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호텔에 숨어든 난민들과 함께 르완다를 벗어나기까지의 과정이 아슬아슬하게 펼쳐진다. UN과 미국, 프랑스 등 서방세계 강대국들이 르완다 사태에는 철저히 등을 돌린 채 자국민들의 안전을 챙기기만 급급한 모습을 보이는 대목에 가서는 울분이 느껴질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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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르완다 ⓒ프레시안무비 |
이 영화의 실제 주인공인 폴 루세사바기나는 르완다에서 탈출한 뒤, 아내와 네 아이들, 그리고 조카 한 명과 함께 현재 벨기에에서 살고 있다. 2005년 미국은 그에게 '자유의 메달'을 수여하며 난민 1268명의 목숨을 구한 그의 공로를 기렸다. 얼마 전 폴 루세사바기나는 '월 스트리트'에 기고한 글에서 현재 진행 중에 있는 다르푸르 사태에 대해 '르완다 내전과 같은 사태가 반복돼서는 안된다'면서 국제사회가 적극적으로 개입할 것을 주장했다. 현재 수단의 다르푸르 지역에서는 여러 반군단체가 패권을 다투는 가운데 다르푸르 지역 주민들을 무차별 학살하는 등 인권유린을 자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르완다 내전의 영향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학살의 공포는 여전하고 르완다는 여전히 가난과 질병에 허덕이고 있다. 이는 비단 르완다만의 문제가 아니다. 아프리카 전체, 더 나아가 제3세계 전체의 문제다. <호텔 르완다>는 단순한 영화가 아니다. 지구촌의 현실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게' 하는 영화다. 2004년 미국 개봉 보다 2년이나 늦은 셈이지만 그 '생각'의 파장은 전혀 녹슬지 않았다는 느낌을 주는 건 그때문이다. 9월 7일 국내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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