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서울시의회 의원 연구실 복도에는 사람들이 무리지어 오가는 광경을 자주 볼 수 있다. '선진지역 의회'라고 소문난 서울시의회에 '견학' 온 사람들이다. 얼마 전에도 전국시도의회 의장단이 서울시의회 의원 연구실을 둘러보기 위해 다녀갔다. 으리으리하게 지어진 의원연구실을 본 사람들은 감탄을 아끼지 않는다. 지난 7월13일 개원한 의원연구실은 총면적 1381평, 공사금액 총 40억4900만 원을 들였으니 그럴 만도 하다.
92개의 연구실에는 각각 책상 2개, 컴퓨터, 프린터기, 팩스, 책장, 옷장, TV, 냉장고, 소파, 탁자 등이 갖추어져 있으며 출입자 카드가 있어야 드나들 수 있다. 개별 냉난방에 무선인터넷 서비스도 제공된다. 또한 편의시설로는 저렴한 가격(100원)의 커피 자판기와 7종의 신문이 구비된 휴게실, 비데가 설치된 화장실까지 두루두루 갖추었다.
게다가 서울시의원들의 연봉은 전국 최고인 6804만 원이다. 이 뿐인가. 서울시의회에는 인턴제도를 통해 행정사무감사를 지원하는 사무인력도 배정된다. 의원별로 1명 씩의 인턴 사원을 둘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처럼 전국 최고의 연봉을 받으며 거금을 들여 지은 연구실에서 인력 지원까지 받고 있으니 서울시의원들에게는 곱지 않은 눈총도 떨어진다. 아니나 다를까, 가끔 기자들이 전화를 해서 "연구실엔 매일 나가십니까? 하루에 다른 의원들은 몇 명이나 나오십니까?" 등 감시성 질문을 해대곤 한다.
꼭 외부의 이런 시선 때문이 아니라도 너무 호화스러운 게 아닌가 하는 부담을 갖고 있던 터였다. 한편으로는 서울시민들의 세금으로 뒷받침되는 풍족한 여건에 걸맞게 부지런히 일하는 의원이 돼야겠다는 책임감과 의무감도 들었다. 물론 다른 의원들도 그럴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지난 7월 임시회에서 보인 일부 의원들의 모습은 여간 실망스러운 게 아니었다. 첫 임시회인 만큼 의장 및 부의장을 선출하고 의원들 및 집행부들과 상견례를 하는 의미가 크다고 한다. 하지만 열흘 간의 회기 동안 열린 회의는 대부분 2시간을 넘지 않았다. 시간의 길고 짧음이 중요한 것은 아니겠지만, '우리들끼리'를 위한 것 외에 시정(市政)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상임위원회에서 보였던 의원들의 모습이었다. 사흘 동안 3개 부서의 업무보고가 있었다. 업무보고는 상임위원회 소관부서의 활동 보고를 듣고, 이에 대해 의원들이 질의를 하거나 자료를 요청하며 요모조모를 지적해 시정개선을 요구하는 시간들이다.
업무보고서는 미리 의원 개개인에게 전달됐고, 업무보고 당일엔 부서의 공무원들이 20여 명 정도 자리를 함께했다. 소관부서가 이 정도 준비를 했다면 의원들도 진지한 자세로 임해야 하는 게 아닐까? 첫 업무보고임을 감안해 완벽한 준비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고 해도 말이다.
그런데 정족수만 채우고 나가는 의원, 자기 질문만 하고 자리를 뜨는 의원, 업무와는 상관없이 "공무원들이 명찰을 패용하지 않았다"고 언성을 높이는 의원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이렇게 하나 둘씩 자리를 비우다 보니 13명의 의원 중 6명만 앉아서 회의를 진행한 적도 있다. 서울시민을 위해 열심히 일해보리라 다짐하고 긴장된 마음으로 첫 상임위원회에 들어선 이 '초짜의원'의 실망감이 어떠했겠는가?
지난달 20일엔 의원 첫 급여를 받았다. 의정활동비 150만 원과 월정수당 417만 원으로 총 567만 원이 지급됐다. 민주노동당의 규정에 따라 의원급여 중 노동자 평균임금 230만 원만 지급받고 나머지는 특별당비로 납부한다고 해도 적은 액수가 아니다. 급여명세서를 받아들고 잠시 불특정 다수의 서울시민들의 모습과 임시회에서 보여준 일부 의원들의 모습이 이리저리 겹쳤다. 우리는 과연 전국 최고의 환경에 떳떳하도록 일 하는 의회, 연구하는 의회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인지….
몸 둘 바 모르게 부끄럽지만, 지난 임시회에서 보았던 일부 의원들의 모습만으로 모든 것을 속단하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믿고 싶다. 7대 서울시의회가 무르익어 가면 노력하는 의원들, 서울시민들을 위해 진심으로 봉사하는 의원들이 발견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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