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두는 답답한 마음에 절규한다. "제발 말 좀 할 수 있게 해 줘, 내 말 좀 끝까지 들어봐."
사건 발생 8년이 지난 지금도 '경찰이 믿지 않는 딸의 사망 사건에 관한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정현조 씨는 그런 면에서 <괴물>의 강두와 꼭 닮았다. (관련기사)
'98년 대구 여대생 사망 사건'으로 알려진 고 정은희 씨의 사망사건을 규명하기 위한 홈페이지(www.ibuksori.com)가 아버지 정현조 씨 및 유가족들의 노력으로 지난 7일 새롭게 문을 열었다.
성폭력 가능성 '닫아둔 채' 수사 종결한 경찰
1998년 당시 대학생이던 정은희 씨는 10월 16일 밤 10시경 남자친구인 박 모 씨와 함께 친구들과의 술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다음날인 17일 새벽 5시 10분경 정 씨는 대구고속도로 중앙분리대 쪽에서 화물트럭에 치였고, 정 씨는 그자리에서 숨졌다.
대구 달서경찰서는 이 사건을 처음부터 '너무나 명백한' 단순 교통사고로 규정하고 트럭운전자 최 모 씨에게 '혐의없음' 의견을 낸 뒤 수사를 종결했다.
그러나 1999년 경북대 의과대학이 발표한 정은희 씨의 부검감정서에는 "고속도로를 횡단했다는 점, 집의 반대방향으로 가려 했다는 점, 혈중 알콜 농도가 0.13%로서 운동에 크게 지장을 받지 않을 정도라는 점 등은 흔히 보는 보행자의 교통사고와는 다르며 본시는 사고 전 신변에 중대한 위협을 받아 매우 긴박한 상황임을 암시해 준다"고 적혀 있다.
또한 사체에 속옷이 벗겨져 있었던 점, 사고 현장에서 발견된 속옷에서 정액이 검출된 점, 밤 10시부터 사고시각까지의 행적이 밝혀지지 않는 점 등을 종합해 보았을 때 피해 여성은 성폭행을 당했을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경찰은 부검감정서가 나오기 한 달 전에 이 사건을 단순교통사고로 단정짓고 수사를 종결해 버렸다.
애초 발견된 속옷이 피해자의 것이 아니라며 유가족들의 주장을 부인하던 경찰은 사건 발생 1년9개월이 지나서야 이를 피해자의 것이라고 인정했다. 그러나 수사는 더 이상 진행되지 않는 가운데 이 사건은 2000년 언론의 조명을 잠시 받은 뒤 곧 잊혀졌다.
재수사 가능성 아직 남아 있어
정현조 씨는 그동안 담당 형사를 직무유기로 고소하고, 검찰의 불기소처분에 대해 헌법소원도 제기해 보았다. 또 지방검찰청, 고등검찰청, 대검찰청에 수차례 진정서와 수사 재개 청원서도 냈지만 해당 기관에서는 이제 이전 진정과 동일하다며 그대로 기각될 뿐이다.
사건이 발생한 지 8년이 지났지만 검·경의 의지가 있다면 재수사는 충분히 가능하다. 헌법소원을 대리했던 박연철 변호사는 "지금이라도 사건의 성격을 살인이나 강간치사로 변경하고 속옷에서 나온 DNA가 누구의 것인지 조사범위를 확대해서 수사를 재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현조 씨는 "돈도 없고 법도 모르고 권력도 없는 사람 같으면 (사건이) 해결이 안 됩디다"라며 탄식했다.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노력에 '인색'한 경찰의 태도는 '괴물'처럼 영화 속에서만 존재하는 허구는 아닌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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