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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부함과 혁명적인 것의 사이에 서서

[뉴스메이커] <다세포 소녀> 만든 이재용 감독

<정사>와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의 이재용 감독이, 이재용 감독답지 않은, 독특한 작품 한 편을 내놓았다. 그래서 이번엔 크레딧도 이재용이란 이름 대신, '이감독'이란 이름을 내걸었을 정도다. 이건 자기의 작품이 아니라는 얘기일까. 아니면 자기는 자기이되, 스스로 자기답지 않은 작품이라는 것을 미리 선수치고 들어가는 얘기일까. 어쨌든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는 바로 <다세포 소녀>다. 발칙하고 파격적인 학원물로 인터넷에선 'B급 달궁'이란 필명의 작가가 그려 매니아 독자들을 거느리고 있는 작품이다. 전작들을 통해 현대 중산층에서부터 조선 사대부의 욕망을 정갈하고 우아하게 그려냈던 이재용 감독은 <다세포 소녀>에서는 막 나가는 쾌락의 황홀경을 보여준다. 음풍신공, 양풍신공, 에로틱 랠름교라는 야릇한 용어들이 난무하고 아이들은 각자의 성적취향에 맞춰 SM과 동성애, 그룹섹스를 즐긴다. 쾌락의 무법천지인 '무쓸모 고등학교'에서 '외눈박이'라는 별칭의 왕따 학생 역시 오로지 외모 때문에 숫총각 딱지를 떼지 못하고 또 바로 그것만이 가장 큰 콤플렉스가 될 정도다.
이재용 감독 ⓒ프레시안무비 김정민 기자
<다세포 소녀>는 장르와 형식의 경계 또한 훌쩍 뛰어넘는다. 기본적으로 교복 시네마를 내세운 이 영화는 뮤지컬과 코미디, 판타지의 장르를 맘대로 넘나들고, 배우들의 1인 다역과 느닷없는 등장 인물들의 독백들로 영화의 관습을 깡그리 무시한다. 반전이 이루어지는 마지막 대목에서도 영화는 황당하기 그지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 영화를 조금만 더 꼼꼼히 들여다보면 <다세포 소녀>야말로 이재용의 '유전자'를 가진 또 다른 그의 '자식'임을 알아 볼 수 있다. 만화적 상상력으로 채색돼 있는 무쓸고의 원색적인 욕망 뒤엔 사회적 정치적 메시지들이 여러 겹으로 깔려 있다. 공들여 세공한 영상의 화사함도 전작들 못지않다. '이감독'에서 다시 '이재용'으로 돌아온 이재용 감독과 이야기를 나눠봤다. - 고생보다는...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는 색다른 재미가 더 컸을 것 같다. "사실 고생도 많이 했다. 프로덕션 과정은 해피했다. 제작사와의 관계도 원만했고. 다만 작품 안으로 고민이 많았다. 전혀 새로운 스타일의 영화니까. 평소 내 스타일의 영화도 아니거니와 이런 소재나 형식을 다룬 영화가 없었다. 내가 생각하는 영화적 이상과 영화가 만들어지는 현실적 문제, 그 경계점을 찾는 것이 힘들었다. 생각한 것과 정작 만들어서 보여지는 것은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 당신이 이 인터넷 만화를 영화로 만든다고 했을 때 다들 놀랐다. "원래는 다른 작품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걸 못하고 있던 차에 이 작품에 대한 제안이 들어왔다. 영화세상의 안동규 대표는 개인적으로 20년정도 알고 지내던 사인데 이 만화를 보고 '딱 이재용 스타일이네'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내가 진짜 수락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다. - 처음 원작을 접했을 때의 느낌은 어땠나? "재밌었고, 제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같다. 한국에도 이런 이야기가 만들어지다니. 신선한 충격이었다. 무엇보다 정치적으로 올바르려고 하는 강박관념이 없어서 좋았다. 가난 소녀는 가난해서 원조교제를 하지만 불쌍하게 그려지지는 않는다. 또한 입양아는 불쌍해야한다는 고정관념이라든가, 괴물은 악인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없었다. 해방감같은 게 느껴졌다고나 할까?"
이재용 감독 ⓒ프레시안무비 김정민 기자
- 하지만 문제는 그런 원작의 느낌을 영화적으로 어떻게 살리느냐였을 것이다. "만화의 느낌을 영화처럼 보이게 하기 위한 강박관념, 바로 그 것으로부터 먼저 벗어나길 바랬다. 만화를 영화화하는 절차와 과정 등이 중요치 않은 영화로 만들려고 했다. 그래서 시나리오 쓸 때는 오히려 매우 즐거웠다. 무의식적으로 생각나는 것들을 막 적어 나갔으니까. 처음에는 영화 형식을 아예 틀어버리려고 생각했다. 갑자기 배우들이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다 말고 감독에게 말을 건다든지, 붐 마이크가 카메라에 잡힌다든지 하는 설정도 있었다." - 어린 배우들에게 연기지도를 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영화가 워낙 다층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서.. "나는 '보여주는' 연기를 선호하는 스타일이다. 배우들에게 느낌정도를 전달하고 연기를 맡기기보다 내가 생각한 연기를 정확하게 제시한다. 이를테면, 이 장면은 이런 동작과 이런 표정으로 연기해달라라는 식으로. 하지만 이번엔 숨겨진 의미까지 연기로 보여달라고 일일이 요구하지는 않았다. 이번 영화에서는 캐릭터가 너무 많아서 세세하게 연기를 지시하든가 할만큼의 정신이 없었다." - 원작에 비해 파격과 도발의 쾌감이 오히려 약하다는 얘기도 있다. "그건 이 영화에서 무엇을 기대하느냐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한다. 난 원작의 매니아적 성향을 다수와 함께 하고 싶었다. 진부하고 평범한 영화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그렇다고 혁명적 영화를 만들려고 했던 것도 아니었다. 파격과 도발에도 단계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정사>와 <스캔들> 또한 이 영화를 위한 전 단계라고 생각한다. 일종의 예방주사와 같은 영화가 아닌가 싶다. 다음에 더 강한 것을 봐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영화 말이다. 지나친 파격과 도발, 화장실 유머는 내 취향이 아니다." - 그래도 나올 얘기는 다 나온다. SM이 오가는 사제지간, 복장도착, 트랜스 젠더 등등. "물론 그렇긴 하지만, 표현의 차이가 분명히 존재한다. 나는 민망한 소재들을 민망하지 않고 또 즐겁게 보기를 원했다. 만화자체도 '19금'을 내세우고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작가의 농담이다. 공식적인 심의를 받고 인증받은 것이 아니다. 아마도 은밀한 쾌락을 증폭시키기 위한 작가의 의도였을 것이다. 통념상 금기시 된 코드들을 즐기는 사람들은 분명 존재한다. 이 영화는 음지의 문화를 양지로 옮기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 무쓸모 고등학교로 한정됐던 이야기의 공간은 사회적으로 확장된다. 영화 곳곳에 그렇게 다층적 의미를 심어놓았다. "영화가 다층적, 다의적 의미를 갖는 것은 내 영화 스타일 중 하나다. 농담 같은 진담들을 매설해 영화가 풍성한 의미를 내포하기를 바랬다. 그런 면에서는 <다세포 소녀>는 사회부적응자를 통해 전체주의를 은유했던 <순애보>와 같은 연장선에 있기도 하다."
이재용 감독 ⓒ프레시안무비 김정민 기자
- 처음엔 '이감독'으로 나오더니 나중엔 '이재용' 실명을 밝히더라. "<정사>와 <스캔들>에서 보여진 나의 정형화된 이미지를 탈피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만드는 영화인데 관객들도 고정관념에 사로잡히면 안되지 않을까 싶었다. 또 인터넷 ID와 같은 익명성을 부여한다는 의미도 있었다. 그럼 이 도발적인 소재에 다가가는 나도 좀더 자유롭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 의도로 '이감독'이라는 명칭을 사용했었는데 결국 그냥 내 이름을 내세웠다. 결국 누군지 다 알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 원작 만화에서 가져오려 했던 것은 무엇이고, 버리려고 했던 것은 무엇인가? "뻔뻔한 농담? 허를 찌르는 유머? 관습으로부터의 해방감? 그런 것들을 가져오고 싶었다. 반면에 지나친 화장실 유머, 자극적인 표현은 삭제했다." - 얼굴이 많이 상했다. "매 촬영마다 힘들었다. 사실 나는 모든 걸 완벽히 준비하고 찍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이번 영화는 찍으면서 준비하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그래야 생동감있는 영화가 될 테니까. 그래서 정말 힘들었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세심한 손길이 필요한 곳이 한 두군데가 아니다. 특히 미술에서. 그걸 매 촬영때마다 만들어 가며 해야 했으니 정말 죽을 맛이었다. 영화가 발랄하고 도발적이라고? 그걸 보여주기 위해 나는 정말 죽고싶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웃음)" 인터뷰 진행 오동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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