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은 여자 스포츠에 있어 혁명이 일어났던 해다. US 오픈 테니스 대회 우승 상금에 있어 남녀 차별이 있다는 이유로 반발했던 세계 여자 테니스 최고 스타 빌리 진 킹이 그 혁명의 주인공.
1972년 US 오픈 대회 여자 단식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킹은 "남녀 간의 상금 차별이 고쳐지지 않을 경우 대회에 불참하겠다"고 선언했다. 결국 US 오픈 주최측은 킹의 제안을 받아들여 남자와 여자의 상금을 똑같이 책정했다. 테니스 메이저 토너먼트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킹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킹은 뿌리깊은 남녀 차별을 없애기 위해 테니스 '성(性) 대결'을 추진했다. 당시 55세의 보비 릭스가 킹의 상대였다. 1930~40년대 테니스계를 주름잡았던 릭스는 킹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하지만 3만 명의 관중과 5000만 명이 넘는 전 세계 TV 시청자들이 지켜봤던 이 경기에서 킹은 릭스에 완승을 거뒀다. 킹은 경기 뒤 "만약 이 경기에서 내가 졌다면 50년 뒤로 역사는 후퇴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운동가들로부터 킹은 진짜 영웅이 됐다.
2003년에는 골프계에서 '성 대결'이 펼쳐졌다. 스웨덴 출신의 골프 여제 아니카 소렌스탐은 PGA(미국남자프로골프협회) 투어에 초청을 받고, 남성 골퍼들과 경쟁하게 됐다. 전설적인 여자 골프 스타 베이브 자하리스 이후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소렌스탐은 5 오버파를 기록하며 111명의 참가자 중 96위에 그치는 저조한 성적을 냈다. 2라운드 뒤 소렌스탐은 '컷 오프(타수에 의해 순위를 정한 뒤 일정 수의 상위 선수만 남기고 하위권 선수를 탈락시키는 것)'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
소렌스탐은 이 일이 있은 뒤 단 한 번도 PGA 투어에 도전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PGA 투어에 나가 힘겨운 '컷 오프' 통과 전쟁을 치르는 대신 역사상 최고의 여자 골프 스타가 되는 게 현명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미국 골프계를 뒤흔들 재목으로 평가받는 미셸 위는 드라이브 샷 평균 비거리가 270야드를 상회하는 '괴력의 소녀'다. 그의 호쾌한 드라이브 샷은 PGA 무대에서도 충분히 통할 것이라는 분석도 많았다.
하지만 최근 미국 언론들은 일제히 미셸 위의 PGA 투어 도전에 대해 비판을 하고 나섰다. 미셸 위가 지금까지 PGA 투어에 5번 도전해 모두 '컷 오프' 통과에 실패했고, 더욱이 최근 열린 존디어 클래식에서는 경기 도중 일사병 증세로 탈진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비판을 받는 근본적 이유는 "먼저 LPGA(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 투어에서 좋은 성적을 내라"는 것. 일각에서는 "미셸 위가 거둔 성공은 오직 나이키와 체결한 거액의 계약뿐이다"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LPGA 무대에서 아직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미셸 위를 빗대어 한 말이다.
멕시코계 미국인인 여자 골프계의 거목 낸시 로페즈는 최근 "나도 어렸을 때는 PGA 투어에 나가서 우승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미셸 위가 PGA 투어에 나가 우승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골프 천재' 미셸 위를 애지중지한다. 그녀가 LPGA 무대에서 성공을 거두는 모습을 보고 싶어한다. 결코 그녀가 PGA 무대에서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보고 싶어하지는 않는다. 자칫 PGA 무대 도전에 너무 빠져들다가는 LPGA에서 성과를 내기까지의 기간이 길어질 수도 있다. 더욱이 이대로 가다가는 미셸 위의 PGA 도전 자체가 '신선함'보다는 '진부한 도전'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현존하는 여자 골프계의 지존인 소렌스탐이 왜 단 한 번만 PGA 무대에 나간 뒤 LPGA에 전념하는지 미셸 위가 곰곰히 생각해볼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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