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의 4강 신화를 이끈 히딩크 감독(현 러시아 대표팀 감독)과 2006 독일 월드컵에서 한국의 16강 진출을 이끌지 못한 아드보카트 감독(현 러시아 제니트 상트 페테르부르그 감독) 간에는 어떤 차이가 있었던 걸까?
두 감독 간에는 가장 중요한 시간의 차이가 있었다. 2001년에 부임한 히딩크 감독에게는 월드컵까지 1년 이상의 시간이 주어졌지만 아드보카트 감독은 9개월밖에 월드컵 준비시간이 없었다. 하지만 또 다른 차이도 있었다. 그 차이는 히딩크 감독은 '족집게 강사'였지만 아드보카트 감독은 '정교사'였다는 점이다.
히딩크 감독과 아드보카트 감독은 축구 전술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가지고 있는 명장이었지만 세밀함에서는 아드보카트 감독이 히딩크 감독에 미치지 못했다.
히딩크 감독은 2002 월드컵 전까지 수비수, 미드필더, 공격수를 막론한 조직적인 움직임에 많은 비중을 뒀다. 어떻게 협력수비로 상대를 코너로 몰고, 에워싸야 하는지 치밀한 밑그림을 그렸다. 파워 프로그램을 통해 선수들의 체력을 키우는 것도 중요했다. 하지만 개인기술이 떨어지는 한국이 세계적 강호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빈틈없는 작전판을 선수들의 머리 속에 심어줘야 했던 것. 이 밖에도 세트 피스 상황에서 누가 어느 위치에 서서 플레이를 해야 하는지까지 선수들이 숙지할 수 있도록 도왔다.
월드컵 개최국의 이점도 최대한 활용하도록 했다. 패스가 느린 한국 선수들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히딩크 감독은 경기 전 그라운드에 최대한 많은 물을 뿌리도록 주문했다. 사실 현대 축구의 기본인 빠른 역습과 경기 운영은 선수들의 빠른 움직임도 필요하지만 빠른 패스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기 때문.
그의 세밀한 작전 지시를 통해 선수들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움직일 수 있었고, 상대는 당황했다. 비록 선수들의 개인 기술까지 향상 시킬 수는 없었지만 확실한 과외를 통해 한국 선수들은 분명 달라져 있었다. 중원에서부터 수비를 단단히 하며 빠른 역습을 할 수 있는 방법을 한국 선수들은 터득한 셈이었다. 긴 기간은 아니었지만 히딩크 감독은 '족집게 강사'처럼 한국 축구가 실전에서 풀어야 할 과제를 미리 선수들에게 꼬치꼬치 제시했다.
2006 독일 월드컵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아드보카트 감독은 선수들의 경쟁심리를 효과적으로 자극했다.선수들에게 '2002 월드컵 신화를 재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는 데에도 비교적 성공을 거뒀다. 그는 늘 선수들이 긍정적 사고를 갖도록 유도했다. 본프레레 감독 시절 바닥으로 떨어진 대표팀의 분위기를 끌어 올리는 게 급선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밀한 경기 구상에서는 미흡했다. 한국 선수들의 개인기가 떨어진다는 점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약점을 극복할 수 있는 자신만의 해결책을 내놓지는 못했다. 무엇이 한국 선수들에게 절실하게 필요한지에 대해서 분명 '큰 그림'은 그리고 있었지만 세부 지시가 적절하게 뒤따르지 못했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충분한 시간동안 선수들과 교감하며 그들의 장점을 끌어 올리는 '정교사'의 성격은 강했지만 결코 히딩크와 같은 '족집게 강사'는 아니었다는 의미.
18일 오후 대한축구협회 기자실에서도 이 같은 맥락의 얘기가 오갔다. 이영무 기술위원장은 독일 월드컵을 결산하는 기자 간담회에서 아드보카트 감독의 장단점에 대해 언급했다.
이영무 위원장은 "아드보카트 감독은 좋은 지도자다. 선수들에게 긍정적 사고를 할 수 있게 했고, 자신감도 심어줬다. 훈련장에서도 늘 마지막 순간에는 직접 나서서 선수들의 움직임에 대해 평가를 했다"며 아드보카트 감독의 장점을 설명했다.
그러나 이 위원장은 "(아드보카트 감독에게) 아쉬움도 남는다. 물론 시간이 부족했다는 문제가 있었지만 공격은 어떻게 하고, 수비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세밀함이 떨어졌다. 사실 한국 선수들은 경기운영 능력이나 전술적 이해도 면에서 다소 떨어진다. 유럽의 축구 강호들과는 다르다"라고 아드보카트 감독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신현호 기술위원은 "가장 아쉬운 대목은 토고 전 막판에 수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더 상대를 몰아부치지 못했다는 점이다. 물론 그 당시는 원정으로 펼쳐지는 월드컵에서 한국의 첫 승리가 중요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때 한 골을 더 넣었더라면 한국은 마지막 스위스 전에서 비기기만 해도 올라갈 수 있었다는 점에서 너무 아쉽다"고 밝혔다.
독일 월드컵에서 히딩크 감독이 이끌었던 호주와 아드보카트 감독이 이끌었던 한국은 조별 예선 첫 경기에서 먼저 실점을 내주는 비슷한 상황을 맞이했다. 호주는 일본에 선취점을 내줬지만 후반 막판 기다렸다는 듯 대반격을 펼치며 3-1의 승리를 따냈다. 한 번 상승세를 탔던 호주는 주심이 휘슬을 불 때까지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후반 인저리 타임에 호주의 존 알로이지가 넣은 마지막 세 번째 골은 호주에 매우 중요했다. 히딩크 감독도 이 골에 아껴뒀던 어퍼컷 세리머니까지 연출하며 기뻐했다. 이 골로 인해 호주는 크로아티아와의 조별 예선 최종전에서 무승부만 거둬도 16강에 진출할 수 있게 됐다. 결국 호주는 한국과 같은 승점 4점으로도 16강에 오르는 경사를 누렸다.
결과론이기는 하지만 한국은 호주와 달랐다. 토고 전에서 마지막 프리킥까지 뒤로 돌리며 '첫 승'에 너무 안주했다. 토고가 '동네북'이 돼 다른 팀에 많은 실점을 내줄 것이라는 예측은 잠시 접어둔 듯 했다. 토고와의 경기에서 승점 3점은 따냈지만 한국은 이 경기에서 추가골을 뽑지 못해 무거운 짐을 져야 했다. 스위스 전에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국은 스위스의 벽을 넘지 못했다.
강한 모험정신을 보였던 히딩크 감독과 그렇지 못했던 아드보카트 감독의 성격이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비록 우등생은 아니었지만 짧은 기간 내에 자신이 맡고 있는 클래스의 평균 성적을 빨리 높여야 직성이 풀리는 '족집게 강사' 히딩크 감독과 시간을 두고 개개인의 적성을 파악한 뒤, 방향을 설정하는 '정교사' 아드보카트 감독이 보였던 스타일의 차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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