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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 당선자 '홍길동'이 되려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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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 당선자 '홍길동'이 되려하나?

<분석> 조흥은행 매각 직접 개입, 문제 많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지난 14일 이용득 금융노조위원장과 허흥진 조흥은행 노조위원장 등과 극비리 회동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이날 회동은 노 당선자의 요청으로 시내 한 음식점에서 두 시간 가량 진행된 것으로 알려진다.

이 같은 사실이 뒤늦게 밝혀진 것은 조선일보의 보도 때문이었다. 조선일보는 자체 입수한 조흥은행 노조 내부 문건을 근거로 '14일 3자회동'을 29일자 1면 머리기사로 보도했다.

그러자 이낙연 당선자 대변인은 "노 당선자는 이날 조흥은행 매각문제가 노조의 파업 없이 노·정간에 원만하게 타결되도록 대화하고 설득했다"며 회동 사실을 인정했다. 또한 "노조도 동의하는 기관에 실사를 맡겨 그 결과를 놓고 판단하자는 노 당선자의 제안을 노조도 공적자금관리위원회도 채택, 조흥은행 문제가 원만하게 풀려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노 당선자가 노조와 공자위의 중간에 서서 중재자 역할을 했음을 분명히 인정한 것이다.

***'매각협상 순조롭게 진행중'이므로 '잘된 일'인가?**

노 당선자의 이같은 역할이 과연 바람직한가? 우선 노 당선자가 노조 측에 회동을 제의한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조흥은행 매각문제는 금융권 최대 현안으로 시간을 끌기보다 조속히 매듭지을 필요가 절실했기에 당선자가 직접 나섰을 수 있다.

둘째 대선 과정에서 '조흥은행 매각 재검토'를 공언한 마당에 당선자가 이 문제에 전혀 개입하지 않는 것은 '약속 위반'이란 판단도 작용했을 것이다.

셋째 당선자 스스로 '토론공화국'을 만들자고 제안했고, 모든 사안을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합리적으로 해결해 갈 것이라는 방침에 따라 실제 당면 현안에 그러한 협상과 토론 방식을 적용시킨 한 사례일 수도 있다.

그밖에 또 다른 이유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따라서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며 넘어갈 일일는지 모른다. 더욱이 3자회동 결과 노 당선자의 제안이 노조 측과 공자위 측에 의해 받아들여져 현재 순조롭게 매각협상이 진행 중이므로 '잘된 일'이라고 칭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난 14일부터 오늘(29일)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은 너무도 중차대한 문제를 여럿 내포하고 있다.

***시스템 무시, 투명행정 해치고 대통령에게로의 집중현상 우려**

첫째 이 사실이 알려짐으로써 모든 문제가 대통령에게로 집중되는 현상을 초래할 위험이 크다.

이제 전국의 웬만한 노동조합, 뿐만 아니라 웬만한 이익집단들은 문제가 생길 경우 너도 나도 대통령을 만나겠다고 나서게 될 것이다. 정부 측과의 갈등, 혹은 이익집단 상호간 갈등이 빚어질 경우 협상을 진행하다 막히게 되면 대통령을 직접 만나 담판 짓겠다는 풍토가 조성될 우려가 크다.

이 요구에 모두 응하려면 노 당선자는 아마도 홍길동과 같은 분신술을 배워야 할 듯 싶다.

둘째 노 당선자는 스스로 누차 강조해 온 '시스템'을 2중 3중으로 무너뜨렸다.

우선 그는 현재 당선자 신분이다. 정책집행자의 위치에 있지 않다. 그럼에도 당선자가 직접 나서 문제 해결의 방안을 제시하고, 그 방안을 공자위가 받아들이도록 했다는 것은 분명한 월권이며 현 정부와 공자위의 자체 의사결정구조라는 시스템을 훼손한 것이다.

또한 노 당선자는 인수위의 역할, 인수위와 현 정부의 관계라는 시스템도 무너뜨렸다. 조흥은행 매각문제는 인수위 경제분과에서 마땅히 검토해야 할 과제 가운데 하나다. 검토 결과 취임 후 조치할 방침을 결정하든지, 당장 현 정부 측에 뭔가 조치토록 요구할 것이 있으면 요구해야 할 사안이다. 또 그러한 요구가 있을 경우 정부는 자체 판단과 절차에 따라 실행 여부를 결정했어야 옳다.

그런데 노 당선자는 이 모든 시스템을 스스로 무너뜨렸다. 자신이 직접 나섬으로써 인수위를 무력화시켰고, 현 정부를 무력화시켰고, 이런 문제에 있어 노 당선자의 뜻에 따라 자신이 일을 처리해야 한다고 믿는 여러 '대리인'들을 무력화시켰다.

셋째 노 당선자는 스스로 약속한 공개적이고 투명한 정책집행의 원칙을 훼손했다.

당선자측은 2월 중순까지 내각과 청와대 인선을 마치고 1기 멤버들과 함께 2박3일간 합숙워크숍을 갖겠다는 방침이다. 그리고 심지어 그 토론과정까지 중계해 장관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투명하게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이 정도로 투명성과 공개성을 중시하는 노 당선자가 비밀리에 노조위원장들을 만나 직접 중재안을 내놓았다는 것은 향후 밀실행정, 담합행정이 만연될 우려를 키우는 것이다.

***"조용히 정국 구상하라"는 말 되새겨야**

백보를 양보해 노 당선자가 노조위원장들을 만날 수는 있다. 취임 준비 차원에서 각계의 의견을 들어야 하고, 그 가운데 현재 금융권 최대 현안인 조흥은행 매각문제도 다양한 의견을 청취해야 할 대상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의견 청취에 그쳤어야 옳다. 그리고 노조 측의 의견을 듣고 뭔가 해법이 떠올랐다면 인수위든 현 정부든 절차를 밟고 시스템을 통해 해결방안을 추진했어야 옳다. 설령 그 해법이 당선자 자신의 뜻임을 노조 측에 알리고 싶었다 하더라도 대리인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했어야 옳다.

그러나 노 당선자는 직접 나섰다. 따라서 앞으로도 국정운영의 시스템이 깨지고, 밀실행정이 만연되면서 모든 문제가 대통령에게로만 집중될 위험성이 커졌다. 명백한 노 당선자의 책임이다.

또한 당장 조흥은행 매각문제도 심각하게 꼬일 우려가 크다.

벌써부터 소위 '실사 후 검토' 방침을 두고 조흥은행 노조 측은 '독자생존 가능성이 열린 것'이라는 입장이고, 반면 신한지주 측은 '인수가격 책정이 적절했는지에 대한 실사일 뿐'이라는 입장으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앞으로 실사가 끝나고 예금보험공사와 신한지주 측의 협상이 진행될 경우 그 한 단계 한 단계가 매우 험난해질 위험이 크다. 또 그 때마다 조흥은행 노조는 독자생존을 위해 개입하려 할 것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노 당선자에게 또 다른 중재안을 요구할 지도 모른다.

이미 한발이 깊숙이 빠져버린 이상 온몸이 빠져들어 결국 매각협상의 전 과정을 노 당선자가 모두 책임져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처럼 이번 '14일의 3자회동'은 너무도 중차대한 문제점을 여럿 내포하고 있다.

얼마 전 민주당의 조순형 의원은 "레이건 전 미 대통령은 당선 후 워싱턴에 세 차례 밖에 다녀가지 않았다"면서 "노 당선자도 매일 인수위에 출근, 인수위와 정부의 싸움을 말리는 데 매달릴 게 아니라 조용히 정국을 구상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한 바 있다.

노 당선자에게 조순형 의원의 이야기를 다시 한번 전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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