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화려한 개인기와 창조적 플레이로 브라질 축구를 이끌었던 소크라테스의 말이다. 이 말은 역대 월드컵 사상 두 번째로 적은 골(경기당 평균 2.27골)이 터져 팬들에게 축구의 매력을 충분히 전달하지 못한 독일 월드컵의 아킬레스 건과 맥이 닿아 있다.
월드컵 성적? 수비형 MF에 물어봐
그렇다면 왜 골이 많이 터지지 않았던 걸까? 정답은 효율성에 기반을 둔 '지키는 축구' 때문이다. 독일 월드컵에 참가해 좋은 성적을 냈던 팀은 한결같이 수비력에 초점을 맞췄다. 엄청난 부담감을 갖고 전략을 구사해야 하는 감독으로서는 결국 '이기는 축구'가 '아름다운 축구'이기 때문이다. 포백 수비라인과 더블 볼란테(두 명의 수비형 미드필더)가 독일 월드컵에서 대유행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히 한 골의 귀중함이 매우 큰 16강 전부터 각 팀 간의 수비력 경쟁은 더욱 심화됐다. 하지만 수비력 경쟁의 핵심은 수비수들에 있지 않았다. 그 주인공은 수비형 미드필더들이었다. 수비수들의 방어적이고 소극적인 수비보다 중원에서 상대 공격의 맥을 끊으며 공격적 수비를 했던 이들의 활약은 독일 월드컵에서 뚜렷하게 나타났다. 각 팀의 공격수들은 공격과 수비의 폭이 줄어들대로 줄어든 좁은 공간에서 자신의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없었다. 한 마디로 화려한 기술을 펼칠 무대가 거의 없었다는 것.
10일 펼쳐진 결승전에서 프랑스 아트사커의 지휘자 지단은 이탈리아의 수비형 미드필더 가투소의 수비에 자주 막혔다. 이탈리아의 토티도 프랑스의 수비형 미드필더 마켈렐레의 폭 넓은 수비에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호나우지뉴, 호나우두, 아드리아누, 카카 등 '마법의 4중주단'을 보유한 강력한 우승후보 브라질도 중원에서부터 강력한 방어망을 형성했던 프랑스 수비형 미드필더들에게 무릎을 꿇었다. 이 같은 수비형 미드필더들의 득세는 각 팀간의 '중원전쟁'을 한 층 더 부추겼다.
그렇다면 한국은?…심판도 '골 가뭄'에 책임
물론 한국도 스타일이 비슷한 김남일과 이호라는 '두 대의 진공청소기'를 가동하며 중원 전쟁에 임했다. 하지만 한국에는 중원 압박을 풀 수 있는 미드필더가 없었다. 이탈리아 공-수의 연결고리 역할을 했던 수비형 미드필더피를로나 수비형 미드필더로 수비력도 좋지만 뛰어난 패싱 능력까지 겸비해 대(對)프랑스 역습의 시발점이 된 비에라 같은 선수가 없었다는 뜻. 원래 박지성이 공격형 미드필더로 이 역할을 해줘야 했지만 박지성은 윙 포워드로 많이 투입됐다. 기대를 모았던 이을용도 제 몫을 해주지 못했다.
또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은 퇴장이 많이 발생했다는 것. 수적 열세 상황에 놓인 팀은 극단적인 '수비축구'를 했고, 상대 팀은 이 수비 벽을 허무는 데에 애를 먹었다. 운영의 묘를 살리지 못한 심판에게도 독일 월드컵 '골 가뭄'의 책임이 있는 셈이다.
계속되는 오심 논란에다 공격 축구의 실종으로 FIFA(국제축구연맹)는 한 동안 고민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 월드컵이 공격 축구의 부재로 흥미를 잃어갈 경우 FIFA의 재정적 존립 기반이 약화될 수밖에 없어서다.
깨져가고 있는 월드컵의 아우라…국가주의 희석돼
일부 축구 전문가들은 월드컵의 아우라(Aura)가 깨져가고 있다는 말까지 한다. 과거에 비해 선수들에게는 월드컵 보다 매 시즌 진행되는 클럽 축구에 좀 더 많이 신경을 쓰게 됐다는 뜻이다. 월드컵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국가의 명예'도 중요하지만 클럽에서 뛰며 벌어들이는 '돈'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선수들에게 월드컵은 '좀 더 좋은 클럽으로 옮길 수 있는 무대일 뿐'이라는 인식이 매우 커진 것도 사실이다.
이미 축구 선진국에서는 축구 대표팀을 통한 '애국주의'가 많이 희석됐다. 그들에게는 매년 거행되는 클럽 팀 간의 월드컵 '챔피언스리그'가 있고, 자국의 프로리그도 있다. 유럽의 팬들은 월드컵에 열광하기는 하지만 '올인' 하지 않는다. 기자가 현지에서 만났던 많은 독일 축구 팬들의 목소리도 "월드컵은 내가 좋아하는 축구의 일부분"이라는 것이었다. 월드컵을 정점으로 한 A매치 편식증에 시달려 온 한국에게는 먼 나라 얘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세계 축구계의 대세는 클럽 축구 쪽으로 기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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