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은 현재 가장 일상적인 권력을 자랑하는 대중 문화다. 일년에 영화나 연극 한편 보지 않는 사람은 있어도 옷 안 입고 다니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패션업계의 속도 전쟁은 또 얼마나 치열한가. 한 해를 앞서가는 명품 브랜드의 패션쇼가 끝나기 무섭게 패션 잡지마다 앞다투어 최신 핫 트렌드 아이템을 선정한다. 바로 그 다음 날이면 화려한 이름을 자랑하는 명품 브랜드의 모조품들을 인터넷 쇼핑몰이나 동대문에서 만나볼 수 있다. 로렌 와이스버거의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누구나 궁금해하는 화려한 패션 업계의 무대 뒤 이야기를 집중 조명한 소설이다. 실과 바늘이 뒹구는 대신 유명 인사들의 선물과 표지 촬영, 패션쇼 일정이 빽빽하게 들어 찬 패션 잡지사 '런웨이'가 바로 그 무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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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프레시안무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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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실제 이야기를 읽는 듯한 느낌 대학을 갓 졸업한 앤드리아는 '뉴요커'에서 일하는 게 꿈이다. 평소 패션에는 아무 관심도 없었던 그녀는 과연 천운으로 세계 최고의 패션 잡지 '런웨이'에 입사한다. 그녀의 직책은 '백만 명쯤 되는 여자들이 너무나 하고 싶어'한다는 '런웨이'의 편집장 미란다 프리스틀리의 개인 어시스턴트. 앤드리아는 곧 패션 잡지계의 화려한 겉모습에 적응해가는 한편, 이제부터 매일 '지옥에서 온 악마'와도 같은 미란다의 전화에 밤낮없이 달려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앤드리아는 미란다의 추천서를 얻어 원하는 잡지사에 들어가겠다는 희망 하나로 까다로운 미란다의 변덕을 견뎌낸다. 그러나 그녀가 미란다의 명령에 휘둘리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동안 친구 릴리, 남자친구 알렉스와의 사이는 조금씩 벌어지기 시작한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패션 잡지사의 실상에 관한 일종의 르포와도 같은 소설이다. 제목에서 보듯, 곳곳에서 프라다, 샤넬, 구찌, 베르사체와 같은 명품 브랜드 이름들이 수시로 쏟아져 나온다. 명품 브랜드로 몸을 휘감은 직원들의 화려한 옷차림과 편집장 미란다가 누리는 특별한 생활은 우리가 늘 동경하던 바다. 그러나 이 책이 미국에서 출간된 2003년, 무려 6개월 동안이나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그 해 가장 많이 회자된 소설 중 하나로 꼽혔던 데는 더 많은 이유가 숨어있다. 이 책의 저자 로렌 와이스버거는 실제로 1999년 말부터 일년 동안 미국 <보그> 편집장 안나 윈투어의 어시스턴트로 일한 경험이 있다. 소설에 등장하는 미란다의 모델이 <보그>의 안나 윈투어라는 것과 이 소설이 철저히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은 출간 때부터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이다. 소설 속에서 악마 같은 상사로 묘사되는 미란다는 독재적인 작업 방식으로 잘 알려진 안나 윈투어의 모습 그대로다. 소설 속 미란다의 일화는 현재 패션업계에서 막강한 권력을 자랑하는 실존 인물에 대한 흥미로운 가십 거리를 제공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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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악마 같은 상사의 무리한 명령 때문에 정신을 차리기 힘든 앤드리아의 일상이 소설의 첫 장부터 사실적으로 펼쳐진다. 앤드리아의 고군분투는 저마다의 업무에 시달리는 전 세계의 직장인들, 그 중에서도 특히 젊은 여성 직장인들의 공감을 사기에 충분하다. 거기다 한번쯤 실컷 흉을 보고 싶은 직장 상사가 있다면 책을 읽는 기쁨은 배가 된다. 소설의 인기를 바탕으로 메릴 스트립과 앤 헤더웨이가 각각 미란다와 앤드리아 역으로 분한 동명의 영화가 제작돼 지난 6월 미국에서 개봉했다. 국내에서도 개봉 대기 중이다. 일단 패션계에 관한 대중들의 환상을 자극하며 시선을 끄는 <악마가 프라다를 입는다>는 곧 전쟁터 같은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직장인들의 생생한 모습을 그려 보인다. 거기에는 일과 친구, 일과 사랑, 일과 삶의 여유에 대해 고민하는 사회 초년생들의 진지한 고민도 담겨 있다. 바로 그점이 이 책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매력이자 미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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