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월드컵 조별 예선까지만 하더라도 고집스러운 용인술 때문에 국내외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았던 도메네크 감독에게는 스페인과의 16강 전부터 햇살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도메네크 감독을 집요하게 공격했던 프랑스 언론들도 그에 대한 태도를 바꿨다. 프랑스가 브라질에 이어 포르투갈마저 제압하자 그는 '영웅'으로 재탄생했다.
도메네크 감독은 '외인부대' 프랑스의 사령탑 답게(?) 스페인 혈통의 소유자. 도메네크 감독의 아버지는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토박이였다. 하지만 도메네크 감독의 아버지는 스페인의 독재자 프랑코 장군의 '카탈루냐 탄압'이 이뤄지던 시기에 스페인을 떠나 프랑스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스페인과의 16강 전에서 짜릿한 역전승을 거둔 뒤 도메네크 감독은 자신감에 찬 표정으로 환하게 미소지었다. 그는 조국과의 대결에서 승리한 셈이었다.
도메네크 감독은 열렬한 아마추어 연극배우이며 점성술가로도 알려져 있다. 한 마디로 '낭만파'다. 자신이 갖고 있는 순간적 느낌을 너무 믿는다는 단점도 있다. 이 때문에 프랑스 언론은 그의 전략을 "너무 순진하다"고 깎아 내린다. 대표 선수 선발 때도 그랬다. 생년월일이 전갈자리에 해당되는 로베르 피레를 대표 선수로 발탁하지 않은 것도 점성술 때문이라는 비판이 나올 정도.
하지만 그는 프랑스 축구의 주연배우인 지네딘 지단을 축으로 '아트사커'를 부활시키며 그 간 자신에게 쏟아졌던 비판을 일소해 나가고 있다. 희비가 교차되는 연극을 즐기는 그의 취미를 연상시킨다.
이탈리아의 마르셀로 리피 감독은 인상이 좋다. 그의 절친한 친구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도 "리피는 인상이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했다. 독일 주간지 <슈피겔>의 월드컵 특집판의 지적처럼 리피는 폴 뉴먼과 닮은 꼴이다. 그는 용모뿐 아니라 영화 <스팅>에 나오는 밉지않은 사기꾼 곤도르프(폴 뉴먼 분)처럼 임기응변에도 뛰어나다. 상대팀 사령탑의 심리를 꿰뚫고 이를 역이용하는 리피 감독은 축구 전술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하지만 그의 결정적 단점은 가끔 '제 꾀에 제가 넘어간다'는 것. 이를 극복하기 위해 그는 수 없이 경기 장면이 담긴 비디오 테이프를 보며 상대 팀을 연구한다. 그것이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고 혼자 축구에 대해 생각하기를 좋아하는 리피 감독을 '완벽을 추구하는 비정한 승부사'라고 단정짓는 이유이기도 하다.
리피 감독은 이탈리아의 대표적 자동차 회사 피아트의 비호를 받는 유벤투스를 이끌며 이탈리아 세리에 A리그의 최고 명장 대접을 받았다. 당시 주축 선수 중 한 명이 공교롭게도 프랑스의 지네딘 지단이다. 하지만 리피 감독은 98년 유벤투스를 떠났다. 2년 연속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에 머물자 이를 못마땅히 여긴 구단이 리피를 내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리피 감독에게는 이 사건이 보약이 됐다. 그는 "유벤투스를 떠난 뒤 거만했던 내 과거를 떨쳐내고 성숙한 감독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가 이탈리아 대표팀을 맡은 뒤 가장 심혈을 기울인 부분은 이탈리아 축구의 트레이드 마크인 '빗장수비(카테나치오)'에 매몰되지 말자는 것. 이탈리아의 전임 감독인 지오반니 트라파토니가 너무나 조심스러운 경기운영을 하다 2002 월드컵과 유럽 2004에서 실패했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의지다.
실제로 리피 감독은 독일과의 준결승 연장전에서 미드필더 두 명을 빼고 공격수를 두 명 연속 투입시키는 과감한 용인술과 함께 그가 비밀병기로 생각하고 중용했던 '골 넣는 수비수' 그로소의 덕을 봤다. 그로소는 연장 종료 1분 전 절묘한 감아차기로 네트를 갈랐다. 연장전 교체 선수로 그라운드를 밟은 공격수 델 피에로는 종료 직전 쐐기골을 뽑아냈다.
결론을 희극으로 끝맺으려는 '연극배우' 도메네크와 그의 약점을 집요하게 찌르고자 하는 '축구계의 폴 뉴먼' 리피 간의 지략 대결이 어떻게 끝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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