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가 끝난 뒤에 많은 외신 기자들은 스위스의 두 번째 골이 오프사이드인지 아닌지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내세웠다. 하지만 이들이 내린 결론은 어쨌든 경기는 끝났고 판정은 번복되지 않을 거라는 것이었다. 믹스트 존에 들어오는 한국 선수들의 얼굴표정에도 아쉬움이 묻어났다. 그들의 눈빛은 "그건 분명 오프사이드였는데"라는 것이었다.
다음날 기자는 독일 교민들을 만나 스위스 전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심판이 너무 스위스 편을 들었다"는 사람들도 있었고, "심판 판정이 아쉽기는 하지만 우리의 실력이 모자랐다"는 쪽도 있었다.
독일인들의 얘기도 듣을 겸 바람도 쏘일 겸 해서 레버쿠젠으로 가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우연찮게도 기자는 '축구전문가'를 만났다. 독일 축구의 하위리그(크라이스클라세 A, 10부리그) 팀이지만 75년 전통을 자랑하는 슈포르트프로인데 게르마니아 빈덴 클럽의 사장인 클라우스 버거(51) 씨는 "한국과 스위스의 경기를 생중계로 보지는 못했지만 TV 하이라이트를 통해 논란이 되고 있는 장면은 봤다. 한국으로서는 억울한 판정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독일에서는 유로 채널인 <프레미어>에서만 한국과 스위스 간의 경기를 생중계해 많은 독일인들이 이 경기를 보지 못했다.
하지만 버거 씨는 "결과를 받아들이는 게 중요하다. 역대 월드컵에서 그런 경우는 수없이 발생했다. 잘못된 판정도 결국 축구의 일부가 아닌가"라고 말했다.
버거 씨가 축구와 가까워지게 된 계기는 '웸블리 골'로 불리며 월드컵 역사상 가장 논란을 많이 불러일으켰던 심판판정 때문이었다. 잉글랜드와 서독 간의 1966년 월드컵 결승전. 2-2 동점 상황에서 기이한 일이 발생했다. 잉글랜드 제프 허스트가 찬 공은 크로스바를 맞고 곧바로 아래로 떨어졌다. 이 경기의 주심이었던 스위스인 고트프리트 딘스트는 이를 골로 인정했다. 잉글랜드 팬들은 딘스트의 결정에 환호를 보냈지만 서독 사람들은 야유를 보냈다. 그 가운데 한 명이 버거 씨였다. 당시 11세의 소년이었던 버거 씨는 "분명 그건 골이 아니었다. 나는 펄쩍펄쩍 뛰었고, 잉글랜드 선수들과 주심 모두 사기꾼처럼 보였다"고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전해줬다.
직원 20명 남짓한 기계제조 회사의 사장이기도 한 버거 씨는 "명예를 중시하는 신사의 나라 영국이 이런 식으로 첫 월드컵 우승을 차지하는 것 자체가 짜증날 정도였다. 그때부터 축구와 관련된 책이나 잡지를 틈나는 대로 읽었고, 경기장도 부지런히 찾아다녔다. 나는 자칭 축구박사였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작은 축구클럽의 사장을 맡고 있는 것도 그때 생긴 축구에 대한 관심이 밑바탕이 됐다. 그래서 그렇게 미워했던 딘스트 심판을 지금은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고 웃었다.
버거 씨는 "비록 우리 팀에서 독일 대표선수가 배출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전국적인 관심을 끌기에도 힘들다. 하지만 우리는 정말 축구를 좋아한다. 주중에 쌓였던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는 것에는 축구만큼 좋은 게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2006 독일 월드컵에 출전했던 한국 대표팀의 버스에는 '끝나지 않은 신화, 하나되는 한국'이라는 슬로건이 선명하게 씌어져 있다. 한국 팀에게 아쉬움과 억울함이 동시에 드리워졌던 독일 월드컵은 그저 한 번의 월드컵이었을 뿐이다. 2010년을 위해 새롭게 뛰는 한국 축구에 팬들이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주기를 바란다. 독일 월드컵에서 목청 높여 응원했던 그 마음으로. 월드컵은 짧지만 축구는 영원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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