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한일 월드컵은 이변의 연속이었다. 개최국 한국과 터키가 4강까지 약진했던 반면 라틴 축구는 몰락했었다. 하지만 2006 독일 월드컵에서는 정반대의 상황이 연출됐다. 유럽, 남미를 제외한 제3세계 축구는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다. 아프리카의 브라질로 불리는 가나와 히딩크 마법을 앞세운 호주만이 16강에 올랐을 뿐이다.
라틴 축구의 대표 주자인 이탈리아, 프랑스와 포르투갈은 4년 전의 아픔을 깨끗이 씻고 4강까지 진출했다. 이 세 팀은 4년 전 한국과 남다른 인연을 맺은 팀이다.
프랑스는 한일 월드컵 개막 직전 한국과 평가전을 가졌다. 이 경기에서 프랑스 '아트사커'의 야전 사령관인 지네딘 지단은 부상을 당해 정작 월드컵 조별 예선 첫 두 경기에서는 모습을 드러내지도 못했다. 이 사이 프랑스는 단 한 골도 넣지 못하는 '골 가뭄'에 시달렸다. 프랑스는 16강 진출을 위해서 덴마크와의 마지막 경기에 지단을 투입했지만 패했다. 전 대회 우승국 프랑스가 16강에 탈락하는 순간이었다. 프랑스 선수들은 경기장에서 들려오는 "오늘 프랑스는 집으로 간다네"라는 함성 소리를 들으며 쓸쓸히 퇴장했다.
포르투갈도 한일 월드컵에서 16강 진출에 실패한 팀. 한국, 미국, 폴란드와 같은 조에 속했던 포르투갈은 16강 진출에 사활이 걸린 한국과의 조별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0-1로 패했다. 피구, 후이 코스타 등의 포르투갈 주축 선수는 체력적인 문제를 노출하며 제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에 반해 히딩크 사단이 실시한 엄청난 체력 훈련을 통해 '전사'로 탈바꿈한 한국 선수들은 펄펄 날았다. 특히 오른쪽 날개로 뛴 송종국은 피구의 행동반경을 최소화하며 한국 승리의 밑거름이 됐다.
이탈리아는 한일 월드컵 16강 전에서 한국에 덜미를 잡혔다. 이탈리아는 비에리의 헤딩골로 기선을 제압했지만 후반 막판 한국 설기현에 동점골을 내준 데에 이어 연장전에는 안정환에게 골든골을 허용해 패했다. 당시 이탈리아 언론들은 이탈리아가 토티의 퇴장으로 한국에 불리한 경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며 '한국에 승리를 도둑 맞았다'는 제하의 기사를 쏟아냈다. 이탈리아 페루지아의 괴짜 구단주 가우치도 이탈리아에 슬픔을 안긴 결승골의 주인공 안정환을 퇴출시켰다. 하지만 이탈리아를 제외한 유럽 언론들은 한 골을 넣은 뒤 수비적 경기운영을 한 이탈리아가 과감하게 공격수를 투입한 히딩크의 '모험'에 당했다는 표현을 썼다.
약속이나 한 듯 이 세 국가는 2006 독일 월드컵에서 확실하게 부활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이번 월드컵이 유럽에서 펼쳐진다는 점이 이들의 부활의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 됐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여기에다 월드컵까지의 휴식시간이 지난 2002 월드컵보다 길어졌다는 것도 이 세 국가에게는 큰 도움이 된 게 사실이다. 지난 2002 월드컵은 한국과 일본의 장마철을 피하기 위해 평소 월드컵보다 1주일 정도 빠른 시점에 개막됐다. 자연스레 유럽 프로축구 리그에 몸 담고 있는 선수들의 휴식시간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당시 유럽 팀들로부터 큰 불평을 들어야 했던 FIFA(국제축구연맹)가 2006 월드컵에 앞서 최소한 월드컵 개막 3주 전에 자국 리그를 마치도록 규정한 까닭도 여기에 있었다.
'공은 결코 둥글지 않았다'는 독일 월드컵에 대한 중간결산이 나온 것도 이 조치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