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는 크리켓과 럭비의 나라다. 하지만 올해 호주에서는 축구가 크리켓과 럭비의 열기를 뛰어 넘었다. 32년 만에 월드컵에 나갔기 때문이다. 호주에 월드컵이라는 선물을 준 주인공은 히딩크 감독이다. 독일에서 만난 호주 사람들은 하나 같이 "히딩크가 없었다면 호주가 과연 월드컵에 나갈 수 있었겠느냐"고 입을 모을 정도로 히딩크에 대한 신뢰는 두텁다.
2006 독일 월드컵에서 돌풍을 일으키던 호주는 16강 전에서 이탈리아에 아쉬운 패배를 당했다. 경기 종료 직전 석연치 않은 심판 판정 때문에 이탈리아에 통한의 페널티 킥을 내줬기 때문이다. 이 경기 뒤 이번 독일 월드컵에서는 유달리 전통적인 축구 강국에 유리한 심판 판정이 내려지고 있다는 지적이 본격화 됐다.
28일 호주 언론들과 고별 기자회견을 가진 히딩크 감독도 이 부분을 지적했다. "호주와 같은 축구 전통이 약한 국가를 상대로 심판들은 마구 휘슬을 불어 댄다. 호주와 이탈리아의 경기가 아니라 잉글랜드와 이탈리아의 경기였다면 연장전으로 경기가 이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히딩크 감독은 "축구 약소국이 항상 이런 불리한 여건에 처해 있는 것에 대해서도 불평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유럽이나 남미의 축구 강호에 비해 국제대회에서 설움을 많이 당하는 축구 약소국들은 불만을 토로하기 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실력으로 이를 극복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잘 정비된 큰 규모의 자국 프로 리그를 갖고 있지 못하면 월드컵의 패권을 차지할 수 없다. 축구는 유럽이 주류다. 최고의 선수들이 이런 이유 때문에 유럽으로 몰린다. 아르헨티나, 브라질에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축구 선수들이 있다. 몇몇 유럽 국가에서도 계속적으로 뛰어난 축구 선수들이 나타난다. 호주나 다른 국가들도 강하고 경쟁력 있는 자국 리그를 갖고 있어야 이 같은 축구 발전을 이룰 수 있다. "
히딩크 감독은 "(내가 2002년 월드컵에 지휘봉을 잡았던) 한국이나 호주가 세계 축구계의 빅8으로 발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경제력을 바탕으로 하는 유럽 국가들의 축구와 인적자원이 풍부한 남미 축구가 지배하는 국제 축구의 질서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히딩크는 "호주 대표팀은 30세가 넘은 노장 선수들의 은퇴에 대비해 재구성 돼야 한다. (비록 내가 러시아로 떠나지만) 나는 호주 축구협회와 어떤 방식으로든 같이 일을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나는 몇 가지 아이디어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히딩크는 "호주 축구협회는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낸 것은 사실이지만 자국 프로리그의 구조는 정상급이 아니다"며 호주 프로리그가 더 발전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처럼 히딩크가 호주 축구에 남긴 고언은 남의 나라 일이 아니다. 한국도 지난 2002년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이뤄냈지만 K리그는 4년간 제자리 걸음을 했고,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탄탄한 자국 프로리그가 없다면 국제대회에서 꾸준히 일정 수준 이상의 성적을 내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27일 고별 기자회견을 했던 아드보카트 감독도 히딩크 감독과 비슷한 말을 했다. K리그를 유럽 수준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게 아드보카트 감독의 한국 축구에 대한 마지막 조언이었다.
지금까지 월드컵에서 실패할 때마다 프로축구 활성화는 늘 한국 축구의 당면과제였다. 이제 더 이상 이 숙제를 미뤄서는 안 된다. 먼 미래를 내다보고 K리그를 활성화 하는 것만이 한국 축구의 살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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