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16강 진출이 좌절된 24일 아침 전국의 시민들은 허탈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이날 새벽 서울 시청 앞 광장(서울광장)에는 17만 명, 세종로 광화문 사거리에는 35만 명의 시민이 운집했다. 전국의 주요 거리응원 장소 99곳에는 164만여 명이 응원을 위해 모였다.
프랑스전이 열린 19일 새벽에 비하면 세 배 이상의 인파가 몰린 것이다. 24일이 토요일이라 출근, 등교의 부담이 적고, 이날 경기가 한국의 16강 진출 여부를 확정짓는 결정적 한판 승부인 까닭이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붉은 옷과 갖가지 응원도구로 치장한 시민들은 거리응원 장소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을 통해 전해지는 선수들의 몸놀림을 숨죽이며 지켜봤다.
전반 23분 스위스의 장신 수비수 필리페 센데로스가 헤딩슛을 성공시키자 시민들은 일제히 비명을 질렀다. 0-1로 끌려가는 경기 상황은 거리에 나선 시민들의 응원 분위기를 더욱 팽팽하게 조였다.
초등학교 5학년 김 모 군은 당찬 목소리로 "2002년에는 집에서 TV로 봤고요. 이번에 처음 거리에 나왔어요. 지성이 형이 꼭 동점골을 넣을 거예요"라고 말해 주변 시민들의 귀여움을 한 몸에 샀다.
하지만 팽팽한 긴장감으로 달아오르던 응원 열기는 후반 32분 알렉산더 프라이의 추가골이 터지면서 허탈하게 무너졌다. 일순 싸늘해진 시민들의 표정 위로 피곤함이 묻어났다. 같은 시각 쾰른에서 진행되는 경기에서 프랑스는 토고를 2-0으로 앞서고 있었다.
거리에 모인 시민들은 스위스와 비겨도 한국의 16강 진출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몇몇 시민들은 자리를 떴고, 또 다른 시민들은 초조한 마음으로 손에 땀을 쥐었다.
부심이 들어올린 오프사이드 깃발을 무시한 주심 호라치오 엘리손도의 판정에 대해 불평을 터뜨리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직장인 한 모 씨는 "심판의 판정에 분명히 문제가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한 씨는 "스위스 선수의 손에 공이 맞아도 심판이 무시하고 경기를 그대로 진행했다. 게다가 두 번째 골은 명백한 오프사이드였다"며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시민들이 초조하게 기다리던 동점골은 결국 터지지 않았다. 서울의 한 여자대학에 다니는 이 모 씨는 경기가 끝났음을 알리는 휘슬이 울리자 "벌써 끝이라고요? 믿어지지 않아요. 다음 경기에 또 시청 앞에 나와야 할 것 같은데…"라며 아쉬운 한숨을 지었다. 2002년에도 한국 팀의 경기가 있을 때마다 응원을 위해 서울광장에 나왔다는 이 씨는 "너무 아쉽다. 그러나 우리 선수들은 최선을 다했다. 자랑스럽다"며 다부진 어조로 이야기했다.
한편 이날 경기가 끝난 뒤 시민들은 어느 때보다도 차분한 태도를 취했다. 좌절감에 휩싸여 행패를 부리는 이들은 찾기 힘들었다. 자발적으로 쓰레기를 줍는 모습도 종종 눈에 띄었다. 식은 아스팔트 위로 24일 아침을 알리는 햇살이 드리워졌을 때, 지난 밤 뜨겁게 달아올랐던 열기의 흔적은 사라지고 없었다. 시민들의 열정으로 메워졌던 거리 위로 다시 차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