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장집 고려대 교수가 "여당이 참패한 지방선거 이후 제기된 제도 및 헌정 개혁 논의는 민주파가 자신들의 정치적 실패를 정당화하거나 극복하기 위한 방법을 제도의 변화에서 찾으려는 시도"라며 여권의 최근 개혁 논의를 비판했다.
최 교수는 오는 29일 '6월 민주항쟁과 한국 민주주의의 현주소'라는 주제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주최하는 심포지엄에 앞서 배포한 "한국민주주의와 제도적 실천으로서의 민주주의"라는 제목의 발제문에서 "민주주의의 발전이 어떤 좋은 제도의 효과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면서 이같이 주장했다.
중요한 것은 "제도 자체가 아니라 제도가 잘 작동할 수 있는 정치의 하부기반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최 교수는 말했다. 그는 "제도 변화를 둘러싼 논쟁은 정치에서 발생한 문제를 정치 밖의 다른 수단을 통해 해결하려는 것이므로 민주정치 발전에 역효과를 내기 쉽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최 교수는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제도적 실천'에 대해선 "정치권에서 흔히 논의되는 정치제도 개혁 혹은 헌정 개혁과는 다른 의미"라며 "정치를 수단으로 새로운 사회경제적 요구를 정치 체제 내로 끌어들여 새로운 정치경쟁의 틀을 형성하고, 이런 과정을 통해 새로운 사회경제적 요구를 담은 주장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과거 민주화운동의 경험에 바탕을 둔 정치세력이 이같은 '제도적 실천'을 하는 데에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민주파들이 민주화 이후 사회 발전에 대한 이념과 비전 등을 갖고 새로운 정치경쟁의 틀을 형성하는데 실패했다"고 지적한 것.
최 교수는 또 "한국 민주주의 변화가 향한 방향은 인민ㆍ민중권력의 창출을 향한 운동의 단계에서 정당 간의 경쟁을 바탕으로 제도화된 정치가 중심이 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며 "이 과정에서 (발휘되었어야 할) 민주파들의 역량이 허약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최 교수는 과거 큰 힘을 발휘했던 대중의 정치적 운동에 대해 과도한 기대를 걸어서는 안 되는 시점이 됐다고 주장했다.
최 교수는 "운동의 힘, 운동의 정치에 대한 현실주의적이고 회의적인 평가"가 필요하다며 "현실정치의 중요성과 그것의 제도화 문제가 다시 조망되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고 부연했다.
최 교수는 과거 제대로 평가되지 않았던 정치적 자유주의와 다원주의의 의미를 재평가할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정치적 자유주의와 다원주의가 민주주의를 제도화하기 위해 필수적인 이념적 기반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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