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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V 음악같은 격렬한 액션으로 컬트 애니메이션의 대명사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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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V 음악같은 격렬한 액션으로 컬트 애니메이션의 대명사가 되다

[특집] 영화 개봉계기로 본 애니메이션 <이온 플럭스>의 세계

<이온 플럭스>는 재미 한국계 애니메이터 피터 정이 창조한 1990년대의 컬트 애니메이션이다. 당시 피터 정은 애니메이션 전문 채널 니켈로디언에서 아동용 애니메이션 <러그랫츠>를 작업하고 있었다. 하지만 피터 정은 아동용 애니메이션의 전형성과 제약에 갈증을 느꼈다.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의 한계를 돌파하고 싶었던 것이다. 당시 MTV의 애니메이션 쇼케이스 채널인 리퀴드 텔레비전은 피터 정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었다. 피터 정이 하고 싶은 방식으로 새로운 캐릭터와 이야기를 만들어내자는 것이었다. 그것이 바로 여전사를 주인공으로 한 애니메이션 <이온 플럭스>였다. .
애니메이션 <이온 플럭스> ⓒ프레시안무비
MTV적 애니메이션으로 폭발적인 인기모아 <이온 플럭스>가 처음 TV에 방영된 것은 1991년이었다. 그 시작은 2분짜리 애니메이션 여섯 편을 주단위로 상영하는 것이었다. 모두 합쳐 12분짜리 단편으로 완성된 <이온 플럭스>의 파일럿 프로그램은 이전의 다른 미국 애니메이션과 완전히 차별화되었다. 시작부터 격렬한 액션 장면이 나오는 데다, 다음 시퀀스에서는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는 잔혹한 피바다를 보여주는 식이었다. 어떤 남자를 암살하려는 테러리스트 이온 플럭스는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섹시하고 쿨한 캐릭터였다. 가늘고 긴 팔다리에 독특한 복장을 입고 기관총을 든 채 날렵하게 움직이는 그녀는 단숨에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성적이고 폭력적인 묘사의 수위에 별다른 제약을 두지 않는 비주얼은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이듬해 방영된 다섯 편의 짧은 단편들도 특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전쟁' '중력' '거울' 등 3~5분 분량의 이 애니메이션에서도 이온 플럭스는 격렬한 액션을 펼쳐보였다. 더구나 이 단편들에서 주인공 이온 플럭스는 늘 잔인하게 죽음을 당했다. 그녀가 왜 죽음을 당하는지, 정확히 어떤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시청자들은 <이온 플럭스>의 이 모호함 그 자체를 즐기며 받아들였다. 무엇보다 <이온 플럭스>는 '영화적인(cinematic)' 애니메이션이었다. 액션 장면의 앵글과 컷 분할에 있어서, 신과 시퀀스의 전개 방식에 있어서, 이전의 애니메이션에서 보지 못했던 영화적인 쾌감을 선사했던 것이다. 더구나 기존의 할리우드 액션 영화의 관습-주인공이 적에 맞서 싸우면서 통쾌하게 승리한다는 영웅주의 이야기-과는 정반대로 주인공이 끝부분에 죽음을 당한다는 설정도 신선했다. "영화적인 이야기를 영화적인 방식으로 해나가는 것"이야말로 피터 정을 비롯한 제작진의 목표였다. 무엇보다 <이온 플럭스>는 당시 1990년대 새로운 정체성을 모색하고 있던 MTV의 입맛에 꼭 들어맞는 작품이었다. 1980년대 뮤직비디오를 유행시킨 MTV는 단지 음악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콘텐츠를 통해 시청자들의 바뀐 취향에 부합하고자 했다. 그 전략 중 하나는 심야 시간에 '영 어덜트(young adult)'를 타깃으로 하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방영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온 플럭스>는 바로 그런 MTV의 이해관계에 정확하게 부응하는 작품이었다. 피터 정을 비롯한 제작진들은 이온 플럭스가 거대한 시체 무덤 앞에서 총을 겨누고 있는 한 컷의 이미지로 MTV 운영진들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1995년 8월 MTV는 마침내 편당 30분 분량의 애니메이션 시리즈 <이온 플럭스>를 방영하기 시작했다. 두 달 동안 방영된 10편의 에피소드는 그야말로 탄탄한 마니아를 확보했다. 단지 뮤직비디오에 국한되지 않고 새로운 시대의 감수성에 조응하는 영상 콘텐츠를 방영하겠다는 MTV의 전략이 적중한 것이다. . 무정부주의적이고 허무주의적인 주제의식 애니메이션 <이온 플럭스>는 '모니카'와 '브레냐'라는 두 개의 인접한 국가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브레냐는 이전의 통치자인 클라비우스를 제거하고 권력을 장악한 '트레버 굿차일드'라는 인물이 지배하고 있는 전체주의 국가다. 반면 '모니카'는 브레냐보다 좀더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국가로 설정되어 있다. 모니카의 비밀 요원인 이온 플럭스는 브레냐로 잠입해 들어가 트레버 굿차일드를 암살하려 한다. 그 와중에 이온은 복제되기도 하고, 브레냐를 탈출하려는 사람들과 얽히며, 자신의 적인 트레버와 사랑을 나누기도 한다.
애니메이션 <이온 플럭스> ⓒ프레시안무비
<이온 플럭스>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이 모호함이었다. 피터 정은 단편을 제작할 당시 이 작품이 기존의 애니메이션이나 할리우드 액션 영화와 전혀 다르게 전복적인 방식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말한 바 있다. 매 단편마다 이온을 죽게 만듦으로써 도덕적인 제약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핵심은 "이온이 수행하는 임무가 얼마나 헛된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온 플럭스>가 상당히 무정부주의적이고 전위적으로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또한 피터 정의 이런 제작 의도는 30분짜리 애니메이션 시리즈에서도 반영되었다. 각 에피소드는분명한 원인과 결과를 가진 완결된 플롯을 가지고 있다기보다는, 정확한 해석을 거부하는 다채로운 상징으로 가득하다. 또한 피터 정은 "이온은 어떤 조직에도 속하지 않고, 어떤 법이나 이데올로기를 지지하거나 국가를 위해서 싸우는 게 아니라, 오직 그녀 자신을 위해서 싸운다"는 원칙을 고수하고자 했다. 표면적으로 이온 플럭스는 모니카 출신의 비밀요원이지만, 이 작품에서 선과 악의 대립은 그다지 큰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트레버 굿차일드는 단순한 악의 화신이 아니며, 이온 플럭스 역시 선을 대변하는 인물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냉전 시대가 끝난 뒤 세계 질서가 새롭게 재편되면서 이데올로기적으로 "네 편과 내 편을 가르는" 것이 상당히 무의미해진 1990년대의 사회적 분위기와 조응하는 것이기도 했다. 비주얼 면에서도 <이온 플럭스>는 새로운 세대의 취향에 부합했다. 극중 캐릭터의 외모와 스타일은 에곤 쉴레의 화풍을 연상시킨다는 평가를 받았다. 컬러 패턴이나 선의 형태, 인물의 성격화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애니메이터 뫼비우스의 작품과 교집합을 이루며, 디스토피아적인 배경과 격렬한 액션 장면은 <아키라>를 비롯한 아니메의 정신과 교차한다는 평가도 받았다. <이온 플럭스>는 당대 언더그라운드 애니메이션의 특징과 장점을 골고루 취합한 일종의 혼합물이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 컬트 애니메이션으로 남다 사실 <이온 플럭스>의 실사화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온 플럭스의 이미지에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배우도 없었거니와, 원작 만화에 등장하는 독특한 설정들은 컴퓨터 그래픽의 도움이 아니면 표현하기 힘든 것들이다. 하지만 실사 버전의 <이온 플럭스>는 원작과는 상당히 다른 부분이 많으며, 원작의 주요 모티브와 설정들만을 가져왔을 뿐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이온 플럭스 ⓒ프레시안무비
실사영화 <이온 플럭스>에서 세상은 모니카와 브레냐로 분리돼 있지 않고, 완벽하게 통제된 '브레냐'만 등장한다. 또한 이온 플럭스는 지배자 트레버 굿차일드에 반대하는 브레냐 내부의 반군이며, 원작의 모호함과는 달리 어떤 정확한 이유 때문에 트레버를 암살하려 한다. 트레버 역시 원작의 카리스마 넘치는 캐릭터가 아니라 온건한 중재자의 이미지에 가까우며, 이온과 트레버의 관계 역시 좀더 분명하게 설명된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실사 버전의 <이온 플럭스>는 원작의 팬들에게 많은 반감을 사기도 했다. 그것은 원작 <이온 플럭스>가 워낙 강렬한 인상을 남겼으며 다른 어떤 애니메이션보다 '컬트'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슈퍼 히어로가 등장하는 다른 시리즈 영화들처럼 <이온 플럭스> 역시 후속편이 나오게 될까? 아직 아무것도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그것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피터 정의 오리지널 컨셉이 더욱 충분히 반영된 작품이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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