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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잉 정치화된 사회…민주주의의 위기"

[김진경의 토로] "전교조는 이미 사회적 약자 아니다"

전국교직원노조(전교조) 초대 정책실장을 지낸 김진경 전 청와대 교육문화비서관이 386세대와 전교조에 대해 비판한 발언의 파장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김 전 비서관은 최근 "현재의 전교조는 조합원인 교사들의 이익만 대변해 국민들로부터 괴리되고 고립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개혁세력을 자처하는 386세대에 대해 "사회를 변혁시켜 보자고 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학생들을 상대로 학원 장사를 해 떼돈을 벌고 있다"는 등 일침을 가했다.

〈민중교육〉지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으며, 전교조 창립을 주도했던 김 전 비서관의 이런 발언은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대부분의 매체가 김 전 비서관의 발언을 비중 있게 보도했다. 다른 전교조 초기 멤버의 동조 발언도 이어졌다. 사태가 이렇게 확대되자 전교조는 18일 김 전 비서관의 발언을 놓고 "할 말이 있으면 국민 앞에서 당당히 토론하자"며 공개 토론회를 제안하기도 했다.

이에 〈프레시안〉은 20일 김 전 비서관과 직접 만나 최근의 논란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어보았다. 김 전 비서관은 이날〈프레시안〉과의 인터뷰를 끝으로 시골에 내려가 본업인 글쓰기에 전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편집자>


"언론과 지식인, 모든 현상을 정치적 게임의 논리로 해석하도록 길들여져"

프레시안 : 전교조가 당신에게 공개토론을 제안했다.

김진경 : 토론에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나는 자연인이고 전교조는 공적인 조직이다. 자연인과 공적 조직이 대등하게 토론을 하는 것은 격에 맞지 않는다. 대기업과 평범한 시민이 다투는 격이다. 전교조는 비판의 성역이 아니다. 누구나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다. 어떤 조직이 자신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을 하나씩 다 붙잡고 공개토론을 하나? 더구나 나는 이제 더 이상 교육계 인사가 아니다. 전교조와 교육에 관한 이야기는 이미 할 만큼 했다.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

프레시안 : 얼마 전 당신의 발언이 큰 파장을 일으켰다. 최근의 사태를 보며 어떤 생각을 했나?

김진경 : 느낀 게 많다. 우선 우리 사회가 과잉 정치화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사안을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해석하고, 히스테리컬하게 반응한다. 진보세력이나 보수세력 모두 이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지식인들의 책임이 크다. 그들은 모든 것을 이 쪽과 저 쪽이 벌이는 게임의 논리로 바라본다. 이런 사회에서 합리적인 문제제기, 차분한 성찰이 설 자리는 없다.

외국의 경우를 보면 이런 게임의 논리가 통용되지 않는 어떤 영역이 사회적으로 보장돼 있는 경우가 많다. 왕정 혹은 입헌군주제 국가에서는 상징적인 왕의 존재가 이런 역할을 한다. 프랑스처럼 혁명과 반혁명이 이어진 역사를 가진 나라는 '관용(똘레랑스)'의 전통이 이런 역할을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런 역할을 해야 할 자리가 비어 있다. 언론이 이런 역할을 해야 하는 데 오히려 언론은 더욱 과잉 정치화돼 있다. 기자들의 머릿속은 모든 것을 정치적인 게임의 논리로만 해석하도록 틀이 짜여져 있다.

15일자 〈경향신문〉보도(김 전 비서관이 전교조와 386세대를 비판한 발언을 기사화한 보도)만 해도 그렇다. 앵코립티블 상 수상을 축하한다며 찾아온 기자와 한 시간 동안 저녁식사를 하면서 나눈 대화가 기사화된 것이다. 공식적인 인터뷰가 아니었고 기자가 메모나 녹음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사화되리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그런데 기사화된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 기사의 내용을 보고 다시 한번 놀랐다.

나는 386세대 정치인들을 직접 겨냥해서 비판한 게 아니었다. 우리 사회의 정치 과잉에 대해 이야기했고, 386세대도 거기서 자유롭지 않다고 말한 것이다. 그런데 기사의 흐름은 그게 아니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모든 현상을 정치적 게임으로만 해석하는 사고방식이 기자의 머릿속에 박혀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음모론이 난무하는 사회, 민주주의는 위기를 맞고 있다"

프레시안 : 우리 사회가 왜 그렇게 과잉 정치화됐다고 보는가?

김진경 : 세계화의 진전에 따라 중산층이 엷어진 게 근본적인 원인이다. 지식인은 기본적으로 중산층 혹은 그 아래 계층의 상층부와 같은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그런데 이런 사회계층이 존재위기를 겪고 있으니까 지식인 전체가 불안과 피해의식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다.

과잉 정치화, 히스테리컬한 반응은 모두 이런 불안과 피해의식의 산물이다. 불안하니까 성급하게 내 편, 네 편을 나누게 된다. 여유가 있다면 기득권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 그러나 불안하니까 이제까지 누려 온 기득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사정이 지식인 집단을 과잉 정치화하게 했다. 그리고 지식인 집단의 과잉 정치화는 사회 전체를 과잉 정치화로 이끌었다.

프레시안 : 우리 사회의 과잉 정치화에 대해 계속 이야기하는데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달라.

김진경 : 모든 현상이 다 해당된다. 가까운 예로는 황우석 사태가 있다. 그리고 교육계의 사안으로는 교원평가 문제가 있다.

전교조는 현 정부를 신자유주의 정권으로 규정한다. 따라서 현 정부의 모든 정책은 신자유주의적인 의도를 담은 것이라고 해석한다. 이런 단순한 도식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한 합리적인 논의가 설 자리는 사라진다.

교원평가 문제가 쟁점이 되던 당시로 돌아가 보자. 전교조는 교원평가를 신자유주의적인 교원 구조조정을 위한 것으로 규정했다. 이게 말이 되는가. 교원평가는 학생, 학부모, 동료교사를 상대로 수업에 대한 설문조사를 하겠다는 것이다. 교원 구조조정과는 아예 다른 개념이다. 그런데 이것을 교원 구조조정으로 가는 첫 단추라고 미리 규정해버리면 합리적인 논의가 불가능해진다. 그것은 단지 음모론일 뿐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안을 음모로 해석하면 토론의 여지가 없지 않는가.

이렇게 이야기하면 내가 교원평가를 무조건 찬성하는 것처럼 비친다. 그렇지 않다. 교원평가는 그 취지부터 시행과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부작용의 요소를 안고 있다. 이것을 모르는 게 아니다.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하나씩 따져보자는 것이다.

그런데 당시 교육계는 교원평가에 대해 일방적인 찬성과 무조건 반대의 입장만 존재했다. 이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양 극단의 주장만 있을 뿐인 사회에서 나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느낀다.

대중의 불안정한 휩쓸림, 무엇 때문인가?

프레시안 :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고 있다는 것인가?

김진경 : 그렇다. 치열한 민주화 운동을 통해 쟁취한 한국의 민주주의가 지금 위기를 맞고 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하면 이번 지방선거 결과에 대한 이야기로 오해하는 이들이 종종 있다. 그게 아니다. 한 차례의 선거에서 특정 정파가 승리했다는 이유로 민주주의의 위기를 이야기한다면 오히려 그것이 오만한 태도일 것이다. 2004년 총선 당시를 떠올려 보자. 당시는 현 여당이 압승을 거뒀다. 그런데 불과 2년 만에 대중은 정반대의 선택을 했다. 그 사이에 경천동지할 만한 일이 터진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생겼다.

대중의 불안정한 휩쓸림. 극단에서 극단으로 움직이는 성향. 중요한 사회적 사안에 대해 일방적인 찬성과 무조건 반대만이 존재하는 상황. 나는 여기서 민주주의의 위기를 읽어낸다. 그런데 이런 위기가 누구의 책임인가? 결국 앞서의 이야기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지식인의 책임이다. 특히 언론의 책임이 크다.

중산층이 엷어짐에 따라 기득권이 흔들리고 미래가 불안해진 지식인 집단이 어느 순간 모든 것을 정치적 게임의 논리로 해석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민주주의의 위기가 시작됐다. 민주주의가 안정적으로 구현되려면 정파적인 게임의 논리에서 벗어나 사회현상을 차분하게 바라보면서 합리적으로 토론을 이끌어갈 수 있는 집단이 필수적이다. 이런 집단이 없는 사회에서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

"누가 집권하는가의 문제에만 매달리지 말자"

프레시안 : 우리 사회에서 합리적인 논의의 중심을 잡을 수 있는 집단이 사라지게 된 계기를 보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달라

김진경 : 정확하게 짚어내기는 어렵다. 민주화 운동 진영의 상층부가 현실정치에 뛰어들면서 생긴 공백도 포함될 수 있을 것 같다. 민주화 세력이 계속 성장하면서 정파적 이해관계를 벗어난 합리적 지식인 집단을 형성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우리 사회에서는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의 문제에 과도하게 매달리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부차적인 문제다. 청와대 비서관을 하면서도 느낀 것이지만 지금은 정치권력을 통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이번 지방선거 결과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고 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합리적이고 성숙한 지식인 집단이 사회의 무게중심을 잡고 있다면 어떤 세력이 집권해도 큰 문제는 생기지 않는다.

"현재 교육적 쟁점은 중산층 관심사일 뿐소외계층 교육 문제에 관심 쏟아야"

프레시안 : 이야기를 보다 구체적으로 풀어가려면 어쩔 수 없이 당신의 전공인 교육 이야기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

최근 공영형 혁신학교(기존의 공립학교와 달리 학교장에게 자율적인 운영권을 부여한 학교. 재정을 재단이나 학부모가 아니라 지자체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자립형 사립고와 다르다), 자립형 사립고 등이 쟁점이 되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김진경 : 예전에는 교육의 질에 대한 관심이 높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졌다. 우리 사회의 중산층은 질적으로도 상당히 높은 수준의 교육을 기대하고 있다. 교육의 다양성에 대한 요구도 높아졌다. 자립형 사립고 논쟁은 이런 요구가 반영된 것이다.

그런데 이런 문제들은 정말로 중요한 쟁점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제대로 의제화해야 될 교육 문제는 따로 있다. 소외계층 자녀들의 교육 문제다. 학력, 학습동기 등 모든 측면에서 이들은 위기를 겪고 있다. 그런데 관심을 갖는 이들이 없다.

흔히 교육 문제라고 하면 자립형 사립고, 대학입시 정책 등을 떠올린다. 이런 문제만 이슈화되기 때문이다. 왜 이런 일이 생겼다고 보는가? 바로 중산층 학부모들의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교육에 관한 의제가 중산층 학부모들의 관심사에 따라 형성돼서는 안 된다. 지식인들이 이런 문제를 지적하고, 더 중요한 과제를 의제화해야 한다. 하지만 그게 안 되고 있다. 지식인들 역시 철저하게 중산층 학부모의 시각으로 교육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에 대한 과도한 기대는 잘못, 지식인들이 나서야"

프레시안 : 지난 2002년 노 대통령이 대선 주자로 부상했을 때 교육운동 진영 일각에서는 큰 기대를 걸었다.

노 대통령이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활동하던 시절, 사립학교법 문제 등에 대해 개혁적 입장을 취했기 때문만이 아니다. 가난한 농촌에서 태어나 상고를 나온 노 대통령이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서울 법대를 나온 이회창 후보를 꺽는 게 큰 상징성을 가질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당시 교육운동 진영은 노 대통령의 집권이 한국 교육의 병폐로 지목돼 온 소외계층의 교육 문제, 학벌 지상주의 등을 해결하는 데 다소 도움이 되리라고 봤던 것 같다.

그런데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노 대통령이 집권한 지 3년이 넘었음에도 이런 문제들에 대해 별 진척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중산층 학부모들의 관심사만이 의제가 되고 있는 게 반드시 지식인만의 책임인가? 정부의 책임은 없나?

김진경 : 앞서 말한 것처럼 대통령 하나 바뀐다고 달라지는 것은 별로 없다. 노 대통령의 당선이 갖고 있는 상징성에 대해 지나치게 과도한 기대를 한 측면이 있다.

참여정부는 이전의 다른 정권에 비해 교육의 사회적 공공성에 대해 높은 관심을 가져 왔다. 그것은 사실이다.

단지 현재의 꽉 짜여진 사회적 역관계 속에서 운신의 폭이 좁았을 따름이다. 계속 지식인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정치권력을 탓하기 전에 주요한 문제를 의제화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교조는 사회적 약자가 아냐…스스로의 힘과 가능성에 걸맞게 움직여야"

프레시안 : 구체적으로 어떤 지식인들을 가리키는 것인지 궁금하다. 소외계층 자녀의 교육 문제를 의제화시킬 집단이라면 혹시 전교조를 가리키는 것인가? 정부는 교육의 공공성에 대해 관심을 기울였는데 전교조를 비롯한 진보적 교육운동 진영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인가?

김진경 : 전교조 이야기는 길게 하고 싶지 않다. 전교조 창립 과정에서 걸었던 기대는 엄청난 것이었다. 교사들은 하는 일의 성격상 지식인적 성격을 어느 정도 띠기 마련이다. 이들이 조직화된다면 매우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다고 봤다.

현재의 전교조에 대해 아쉬운 점은 자신들의 힘과 가능성을 잘 모른다는 것이다. 전교조는 정부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이다. 이런 집단이 자신을 약자로 규정해서는 안 된다.

만약 또 다른 교육주체인 학생이나 학부모가 전교조만큼 조직화돼 있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이 경우에는 전교조가 노동조합으로서 자신들의 이해에 충실해도 된다. 세 주체가 팽팽하게 맞서는 가운데 어떤 사회적 합의가 마련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학생과 학부모가 조직화돼 있지 않은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전교조가 약자도 아니고, 또 스스로를 약자로 규정해서도 안 된다. 전교조가 스스로의 힘과 가능성을 잘 인식하고, 그에 걸맞은 움직임을 취해야 한다.

프레시안 : 청와대 비서관 업무를 하면서 종종 답답함을 호소했다고 들었다. 이제 다시 자유인이 된 셈인데, 앞으로 어떻게 지낼 계획인가?

김진경 : 내일(21일) 시골에 내려간다. 거기서 창작에만 몰두할 것이다. 시는 더 이상 쓰지 않을 것 같다. 어린이 문학에 전념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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