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고와의 경기를 앞둔 13일 저녁 서울 지하철 대학로 역에 들어선 이 모 씨는 이상한 구내 방송을 들었다. "대학로에서는 거리 응원이 진행되지 않습니다. 이 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왜 이런 방송을 한 것일까? 사연은 이렇다. 원래 서울 대학로에서는 대규모 거리응원이 예정돼 있었다. 지난 2004년 결성된 이후 대학로에서 퇴폐적인 문화를 몰아내기 위한 활동을 전개해 온 (사)대학로문화발전위원회가 준비한 거리응원이 그것이다. 그런데 막상 경기가 코앞에 다가왔을 때 응원을 취소한 것이다. 서울 지하철 대학로 역사 측은 거리응원이 취소된 사실을 모르고 하차한 승객들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안내방송을 한 것이다.
그렇다면 거리응원은 왜 갑자기 취소된 것일까? 중계료 때문이다. 이번 2006년 독일 월드컵부터 공공장소에서 월드컵 경기를 중계하려면 거액의 중계료를 방송사와 FIFA 측에 내야 한다. 거리 응원을 위해 내야 하는 중계료는 2000만 원에서 최고 3억 원에 이른다. (사)대학로문화발전위원회는 이 돈을 마련할 수 없어 거리응원을 포기한 것이다.
지난 2002년 월드컵 당시 대학의 총학생회, 지역 상가 번영회 등이 곳곳에 대형 텔레비전을 설치해 월드컵 경기를 중계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올해는 이런 풍경을 찾아보기 힘들다. 앞서 소개한 대학로 거리응원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모두 중계료 부담 때문에 포기한 것이다. 2002년 당시 대형 텔레비전을 통한 월드컵 중계가 이뤄졌던 서울 압구정동과 신촌 등지에서도 다시 월드컵 경기를 중계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모두 취소됐다.
13일 밤 서울 청계천 근처에서 만난 한 시민은 "날씨도 더운데 비좁은 서울광장에 빽빽하게 모여서 응원하지 말고, 여기저기 흩어져서 응원하면 훨씬 좋을 텐데…"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바람은 이뤄지기 힘든 것이다. 대학로와 신촌에서는 불가능했던 월드컵 경기의 거리 중계가 서울광장에서는 가능했던 데에는 이유가 있다. 바로 든든한 스폰서의 존재다. 지난 2월 서울시는 SK텔레콤, KBS, SBS, 조선일보, 동아일보, 서울신문이 참여한 SK텔레콤 컨소시엄에게 서울광장에서 거리응원을 독점적으로 주관할 수 있는 권리를 넘겼다. SK텔레콤 컨소시엄이 서울광장에서의 거리응원을 가능하게 한 스폰서였던 것이다.
독일 월드컵 본선에서 첫 승리를 거둔 13일 밤은 이제 든든한 스폰서 없이는 거리응원도 마음대로 하기 어려워졌음을 확인한 날이기도 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