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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 고어, <불편한 진실>로 정치 활동 재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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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 고어, <불편한 진실>로 정치 활동 재개?

[이슈 인 시네마] 앨 고어의 환경다큐 세계 영화계를 흔들다 ②

앨 고어에게 2000년 대선은 기나긴 터널을 통과하는 과정이었는지 모른다. 11월 당시 대선 결과는 플로리다 주의 개표 결과에 따라 좌우되는 상황이었다. 애초 플로리다에서는 출구 조사 당시 고어가 우세했으나, 개표 결과 불과 1784표 차로 부시가 앞섰다. 플로리다 주는 주법에 따라 선거 용지 가운데 일부를 수작업으로 재검표할 것을 지시했고, 그 결과 둘의 득표 차이는 19표로 줄어들었다. 플로리다 주 선거 과정에 부정 의혹이 개입되었던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결국 플로리다 주 개표 결과를 둘러싼 공화당과 민주당의 공방은 미 연방대법원까지 이어졌고, 12월 판결에서 앨 고어는 결국 패하고 말았다. . 대선 패해 이후의 행보 미국의 디지털 전문지 '와이어드'는 5월호에 앨 고어를 표지로 내세우면서 그의 지난 행보와 변신을 자세히 소개했다. 이에 따르면 8년 동안 워싱턴 백악관에서 일했던 앨 고어에게는 선거 패배의 충격에서 벗어날 시간이 필요했다. 2001년 초 앨 고어는 대학을 돌며 강의를 하고 아내인 티퍼 고어와 함께 미국의 가족에 대한 책을 쓰면서 일부러 바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는 워싱턴을 떠나 그가 정치활동을 시작한 테네시 주의 내쉬빌로 돌아갔다. 당시만 해도 고어는 2004년 대선에 출마할 것인지 아닌지 결정하지 않은 상태였다. 티퍼 고어는 정치와 별 상관이 없는 고향 친구들을 만난 것이 "치유의 과정"이라고 회고한 바 있다. 그해 여름 유럽 여행을 한 고어는 수염을 기른 채로 미국으로 돌아와 눈길을 끌기도 했다. 그것은 고어가 정치적 활동으로 인한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는 것을 뜻하기도 했지만, 그는 여전히 정치인으로서 자신의 가능성을 타진했다.
불편한 진실 ⓒ프레시안무비
앨 고어의 행보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던 것은 2001년 9.11 테러였다. 사건 직후 고어는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부시 대통령의 대응책에 우호적인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그 자신은 정치 일선을 떠나 새로운 임무를 수행하기 시작했다. 환경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고어는 70년대 후반 의원 재직 시절부터 지구의 기후 변화에 대한 자료를 꾸준히 수집해왔다. 그것은 고어가 대선에서 패하고 '정보 생태학(information ecology)'을 평생의 과업으로 설정한 뒤에도 계속되었다. 그러니까 <불편한 진실>에 나오는 각종 이미지 슬라이드는 모두 고어가 환경 문제 관련 연설을 할 때 사용했던 파워 포인트용 자료였던 것이다. 한편 앨 고어는 사업가로서 변신하기 시작했다. 그는 2001년 초, 구글 사의 고문직을 받아들이면서 주식을 배당받았다. 3년 뒤 구글이 기업공개를 하고 상장사가 된 뒤 고어의 재산이 엄청나게 늘어났음은 물론이다. 또한 그는 2003년 애플 사의 이사회에 합류했으며, 이후 몇몇 투자자들과 함께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들었다. 하나는 새로운 형태의 케이블 TV인 '커런트 TV(Current TV)'를 창립한 것, 다른 하나는 '제너레이션 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Generation Investment Management)'라는 글로벌 펀드를 조성해서 '지속가능한 환경'을 조성하는 데 친화적인 회사들에 투자하는 것이었다.
앨 고어 ⓒ프레시안무비
앨 고어가 미디어 사업에 뛰어들었다는 사실은 월스트리트 안팎에서 주목을 끌었다. 고어는 예전부터 TV 방송국을 가지고 싶어했다. 2004년 그는 몇몇 사업 파트너와 함께 비벤디 유니버설 엔터테인먼트 소유였던 '뉴스월드 인터내셔널(NWI)'을 인수했다. 인수 가격은 무려 7천만 달러. 미국 케이블 방송계에서는 고어의 방송사 인수가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폭스 TV'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하지만 고어는 자신의 미디어 사업에서 정치색을 부인했으며, 오히려 테크놀러지와 정보의 독립적인 원천을 만들겠다는 말로 대응했다. 그리고 1년여 뒤인 2005년 8월, 앨 고어는 이를 전혀 새로운 형태의 방송국으로 런칭했다. 방송과 인터넷을 결합시키고 시청자를 프로듀서로 참여시키는 제작 시스템을 갖춘 '커런트 TV'가 바로 그것이었다. 인터넷을 일종의 사이버 스튜디오로 간주하고 시청자들이 직접 만든 프로그램을 방송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개국 6개월이 지난 뒤 미국의 언론에서는 커런트 TV에 대한 반응이 그리 신통치 않다는 진단이 나왔다. 커런트 TV가 기대만큼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 <불편한 진실> 이후 정치적 행보는? 영화 <불편한 진실>이 제작에 들어간 것도 그 즈음의 일이다. TV 쇼 <사인펠드>의 제작자인 미국 방송계 거물 래리 데이비드의 아내 로리 데이비드가 앨 고어의 '환경 슬라이드 쇼'를 영화로 제작할 것을 권유한 것. 애초 앨 고어는 자신의 강연을 영화화하는 것을 다소 꺼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고어는 결국 데이비드 구겐하임 감독을 신뢰하게 되었으며, 그의 작업 과정에 철저히 협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앨 고어는 다큐멘터리의 창작자로서 데이비스 구겐하임의 자율성을 침해하지는 않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고어는 한 인터뷰에서 작품의 편집권에 대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그것은 협력적인 과정이었다. 나는 영화 창작자들의 창의적인 역할을 방해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에 신중히 답하고 싶다. 이건 그들의 영화이며, 특히 데이비스 구겐하임의 영화다. 하지만 어떤 장면을 넣고 빼는 데 있어서 구겐하임 감독은 모든 과정에서 나에게 상의를 했다. 우리는 모든 면에서 상호 동의 과정을 거쳐 영화를 만들었다."
불편한 진실 ⓒ프레시안무비
이러한 앨 고어의 행보를 두고 서구 언론과 대중은 지금 그가 과연 2008년 대선에 출마할 것인지 촉각을 세우고 있다. 방송과 영화 같은 미디어를 장악하는 것은 정치인들에게는 필수 조건이 아닌가? 고어가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정책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해왔다는 사실도 대선 출마 가능성에 힘을 보태고 있다. 하지만 고어는 대다수 언론들의 대선 관련 질문에 단호하게 "아니다"라는 대답으로 일관해왔다. 영국의 '가디언'은 환경 문제가 그토록 전지구적으로 긴급한 이슈라면, 이를 백악관에서 해결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물은 바 있다. 고어는 이에 대해 "나는 내가 가장 유용하게 할 수 있는 역할은 (대선에 출마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 문제에 대한) 미국인들의 마음을 바꾸는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는다"고 답했다. 하지만 함부로 속단하기는 이르다. 많은 이들이 대선 출마에 대해 고어가 지금 부인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고 진단한다. 앞으로 2년 뒤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워싱턴 포스트는 이렇게 썼다. "고어에게 대선에 출마하라는 압력은 점차 늘어날 것이다. 왜냐하면 환경 문제에 대해 고어가 너무나 유창하고 열정적이며 진심으로 연설하는 것을 목격한 것-다시 말해 진정한 리더십을 보여준 것-은 마치 패스트푸드 햄버거로 지속적인 식생활을 한 뒤 갑자기 스테이크를 대접받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한동안 대중의 시야에서 사라졌던 앨 고어의 이미지를 이처럼 강렬하게 뒤바꾼 것, 바로 영화 <불편한 진실>이 보여준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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