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에 대한 두 번째 공판에서 검찰이 정 회장을 상대로 '비자금 조성 지시' 혐의에 대해 집중 추궁했으나, 정 회장은 "몰랐다"며 자신의 혐의를 부인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김동오 재판장)의 심리로 12일 열린 공판에서 정 회장은 비서실을 통해 자금을 받아 사용한 적은 있지만 그 자금이 비자금인지는 몰랐다고 주장했다.
정 회장은 특히 '본사와 계열사들의 비자금 조성이 누구의 주도로 이뤄졌느냐'는 검찰의 신문에 "모르겠다. 임원진이 서로 의논해 하지 않았겠나"라며 자신의 지시 혐의를 부인했다.
정 회장은 또한 '허위매출 전표 작성' 등의 방식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것과 관련해서도 "몰랐다"고 대답했고, 글로비스의 벽 뒤에 감춰진 '비밀금고'에 대해서도 자신은 전혀 몰랐다며 부인으로 일관했다.
다만 계열사들이 비자금을 조성한 사실을 알았었느냐는 신문에는 "그 점은 시인한다"면서도 "얼마인지, 비자금인지 정상자금인지는 몰랐고, 계열사들이 알아서 한 것이지 지시한 사실은 없다"고 말했다. 재판장의 "책임을 인정하느냐"는 질문에도 '법률적 책임'에 한정해 자신의 잘못을 시인했다.
하지만 검찰은 "김동진 부회장은 회장에게 보고한 후 허락을 맡아 자금을 조성했다고 검찰에서 진술하고 있고, 이주은 글로비스 사장도 회장의 지시에 의해서만 금고에서 비자금이 인출됐다고 진술하고 있다"며 정 회장을 상대로 비자금 조성 개입 여부를 집중 추궁했다.
이에 대해 정 회장은 "김 부회장이 자금을 조성하겠다고 해서 알아서 하라고 했고, 이 자금은 회사 운영자금 등의 용도로 썼다"며 비자금 조성 지시 혐의를 부인했다.
검찰 "매달 글로비스 자금 받아 술값, 손녀 영어교습비 등으로 사용"
또한 글로비스 비밀금고에서 인출된 돈의 일부가 정 회장 일가의 계좌로 흘러들어간 혐의에 대해 정 회장은 "이주은 사장에게서 직접 돈을 받은 사실은 없다"는 식으로 즉답을 회피하고 "해외에 나가거나 직원 격려금 등 돈이 필요할 때 김승년 구매총괄본부 부사장(전 비서실장)이나 김동진 부회장에게 돈을 받은 적은 있다"고 덧붙였다.
검찰에 따르면 글로비스 비밀금고에 보관되던 비자금의 일부가 매달 1000만 원, 1억 원 등의 형태로 봉투에 넣어져 정 회장 비서실에 전달됐으며, 자금추적 결과 이 자금의 일부는 다시 정 회장 부인 및 아들, 첫째 딸 등의 계좌에 수표 등으로 입금돼 정 회장의 생일잔치 비용, 술값, 팁값, 손녀 영어교습비, 가정부 월급 등 개인적 용도로 사용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정 회장의 변호인 측은 이날 반대신문에서 정 회장의 '보석'을 의식한 듯 정 회장의 건강 문제를 집중 부각시켰다. 정 회장은 이날 법정에 환자용 미결수복을 입고 휠체어를 탄 채 입정했다.
변호인 측은 "정 회장은 폐와 심장이 좋지 못해 호흡이 곤란하고, 뇌경색 발병 위험이 있다"고 주장했고, 정 회장도 건강상태를 묻는 재판장의 질문에 "혈압이 높고 오른쪽 무릎 관절염으로 고생하고 있다"며 "고혈압 약을 먹고 있고 지난주에는 심장 검사를 받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대차 비자금' 사용처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계속 진행되고 있고, 재판부는 지금까지 기소된 정 회장에 대한 수사기록을 모두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이어서 정 회장에 대한 보석 여부는 이른 시일 내에 결정되기 힘들 전망이다. 다음 공판은 오는 26일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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