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전은 끝났다. 선택만 남았다.
22일간의 숨막히는 접전, 아니 올초 민주당 경선부터 시작하자면 거의 1년에 걸친 대장정이 막을 내렸다. '정권교체'와 '새 정치'가 맞붙고, '개혁'과 '안정'이 격돌했다.
21세기 첫 대통령, 3김시대를 넘어선 새로운 리더십의 창출, 그 역사적 위상에 걸맞게 온 국민이 정치의 주인공이 되었다. 후보자들도 최선을 다했다.
***'돈 선거' '세 과시' 줄고, 유권자운동 활성화**
선거풍토 면에서 이번 선거는 분명한 진일보를 이뤘다.
'미디어 중심 선거운동'을 제안한 중앙선관위의 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은 채 선거운동이 시작되면서 많은 아쉬움과 걱정이 있었다. 그러나 각 당의 선거운동 행태는 분명 달라져 있었다. 20세기형 선거운동을 거부하는 국민의 힘 때문이었다.
첫째 대규모집회가 사라졌다. 거리의 플랭카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여의도광장, 보라매공원, 백만명 등으로 상징되던 군중동원의 세과시 정치가 끝났다. 대신 미디어정치가 시작됐다.
후보자들은 소규모 거리유세에 집중했다. TV토론과 방송연설에 몰두했다.
당연히 '돈선거'가 줄었다. 각 당이 지금까지 사용한 비용은 선관위의 법정 선거비용 제한액 341억8천만원에 미치지 못한다. 물론 정확한 액수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수천억, 아니 조 단위로 거론되던 선거비용이 대폭 줄어들었다는 점만은 정치권 안팎에서 모두 인정하는 바이다.
둘째 유권자운동이 정착됐고, 한층 다양해졌다. 2002 대선 유권자연대가 펼친 정책평가와 대선자금 모니터링 활동은 각 당이 정책선거, 돈 안드는 선거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위력을 발휘했다.
또한 아직 그 효과가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2030네트워크 중심의 투표 참여 운동 역시 대학내 부재자투표소 설치, 귀향버스, 투표팅 등 참신한 아이디어로 훌륭한 자극제가 되었다.
***인터넷 정치참여 정착, 네거티브 대신 정책대결로**
셋째 인터넷이 국민 정치참여의 새로운 공간으로 확고히 자리잡았다. 노사모를 시작으로 정치인 팬클럽이 활성화되기 시작했고, 그 주된 무기가 인터넷이었다. 종이신문과 방송에만 독점되어 있던 언론권력 또한 인터넷의 바다로 분산되었다.
옥의 티라 할까 사이버 공간에서의 특정 후보 비방으로 선거법에 위반된 사례가 크게 늘긴 했다. 그러나 인터넷을 통해 국민 한사람 한사람이 정치의 주인으로 자신의 논리와 주장을 펼치고, 서로 공방을 벌이는 새로운 풍토가 정착되었다.
넷째 네거티브 선거전이 크게 줄었다. 무차별 폭로와 인신비방은 효과보다는 역효과가 컸다. 물론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기 전 오랜기간 네거티브 선거전이 펼쳐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효과가 없다는 것이 여론조사를 통해 드러나면서 정작 선거전에 돌입하자 각 당 스스로 네거티브 공세를 거두어 들였다.
그 대신 정책경쟁이 자리잡았다. 접전을 펼친 이회창-노무현 두 후보의 살아온 길과 이념적 지향이 뚜렷이 대비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치개혁, 북핵문제, 대미정책, 기업정책, 행정수도 이전, 고교평준화, 건강보험 등 대부분의 정책쟁점에서 선명한 대비를 이루며 유권자의 선택 기준치를 내놓았다.
***국민의 선택, 새로운 출발**
또한 '정권교체'냐 '새 정치'냐, '안정'이냐 '개혁'이냐는 선거의 접점도 선명히 드러났다.
선거구도에 있어서도 뚜렷한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지역대결 일변도였던 역대 대선에 비해 세대 변수, 계층 변수가 중요 변수로 자리 잡을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러한 다양한 변화들이 선거 결과에 미칠 영향력이 어느 정도일지 뚜껑을 여는 일만 남았다.
이제 국민의 선택을 기반으로 새로운 출발을 준비할 때다.
선거전이 지나쳐 자칫 세대 대결, 계층 갈등, 지역 분열로 고착될 위험을 경계하면서, 21세기 국가목표를 향해 다시 하나가 될 마음의 준비를 시작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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