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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VD 월드] 짐 자무시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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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VD 월드] 짐 자무시 컬렉션

짐 자무시 감독의 걸작 6편이 DVD로 출시됐다. 그간 불법 시네마테크를 통해 상영되면서 수많은 시네필들의 마음을 들뜨게 했던 명작들이 정식으로 선보인 것이다. 뉴욕의 영원한 독립영화인, 짐 자무시의 명성을 확인케 하는 이 영화들을 소개한다. – 편집자 주
지난해 <브로큰 플라워>로 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짐 자무시는 유명세에 비해 작품들이 제대로 보여지지 않은 감독이다. 그는 지금까지 총 9편의 장편영화와 1편의 다큐멘터리, 그리고 여러 편의 단편을 연출했지만, 그의 작품이 한글 자막을 달고 보여진 것은 일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브로큰 플라워> 이전에 정식으로 개봉한 짐 자무시 영화는 <천국보다 낯선><데드맨><고스트 독: 사무라이의 길>(1999)뿐이다.
짐 자무시 컬렉션 DVD박스세트 ⓒ프레시안무비
물론 1990년대 중반 국내 예술영화 붐을 타고 개봉했던 <천국보다 낯선>은 당시 젊은 영화광들에게는 타르코프스키의 <희생>만큼이나 남다른 작품이었다. 칸영화제 황금 카메라상 수상작이라는 후광은 물론, '일상성의 영화'라는 새로운 화두로 당시 시네필들을 매료시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데드맨>과 <고스트 독>은 국내 흥행에 참패하고 말았으며, 짐 자무시의 다른 영화들은 비디오로조차 소개되지 않았다. 미국 뉴욕을 기반으로 한 독립 영화인인 자무시의 방랑기 어린 영화들을 펼쳐 보이기에는 이곳의 영화 문화가 충분히 무르익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방랑자와 떠돌이를 위한 송가 그런 짐 자무시의 영화가 그것도 6편이나 한꺼번에 DVD로 출시된다는 것은 무척 뜻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알토 DVD' 레이블의 하나로 출시되는 이번 박스세트에는 짐 자무시의 실질적인 장편 데뷔작 <영원한 휴가 Permanent Vacation>(1980)와 35mm 장편데뷔작 <천국보다 낯선> 외에도 <다운 바이 로 Down by Law>(1986) <미스터리 트레인 Mystery Train>(1989) <지상의 밤 Night on Earth>(1991) <데드맨>(1995)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이 영화들에는 그간 우리가 짐 자무시를 이야기할 때 늘 거론하곤 했던 모든 단서와 화두들이 담겨 있다. <고스트 독>이나 <브로큰 플라워>, 혹은 지난해 한 영화제에서 상영되었던 옴니버스 장편영화 <커피와 담배> 등으로 면면히 이어져내려오는 '짐 자무시 월드'의 모든 것들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먼저 <영원한 휴가>는 짐 자무시가 뉴욕대 재학 시절 니콜라스 레이 감독의 조교를 하면서 받은 돈으로 만든 16mm 작품이다. 찰리 파커를 좋아하는 뉴욕 청년 앨리 파커가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는 이야기를 그린 이 컬러 영화는, 초반부 등장하는 파커의 내레이션만으로도 짐 자무시의 평생에 걸친 창작 화두를 파악하게 한다. 앨리 파커는 이렇게 말한다. "이야기란 점을 연결해 완전한 그림을 만드는 것이다. 이 장소에서 저 장소, 이 사람에서 저 사람에게로 떠돌아다니는 것이다. 사람들의 인생이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내가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은 다양한 방과 같다. (중략)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떠나야 한다." 이어 앨리 파커는 거리에서 베트남전 참전 용사, 정신병원의 어머니, 거리의 미친 여자 등과 마주한 뒤 마침내 파리로 떠나려 한다.
천국보다 낯선 ⓒ프레시안무비
이 같은 '방랑'과 '떠돎'은 짐 자무시 영화를 관통하는 가장 큰 테마다. 짐 자무시 영화의 주인공들은 많은 경우 한 곳에 정주하지 않고 세상을 떠돌아다니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더도 말고 <브로큰 플라워>를 떠올려보라!) 그것은 <천국보다 낯선>에서도 이어지는 고리다. 빔 벤더스가 쓰고 남긴 필름으로 찍기 시작했다는 전설적인 일화를 가진 이 흑백 영화에서는 주인공 윌리(존 루리)와 사촌 에바, 그리고 친구 에디의 이야기다. 무작정 찾아온 에바가 클리블랜드로 떠나자 윌리는 그녀의 뒤를 따르고, 셋이 플로리다로 떠난 뒤 펼쳐지는 엇갈림의 에피소드가 영화의 후반부를 채운다. 대단히 건조한 화법으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짐 자무시의 재능은 이 영화에서부터 본격적으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소외된 사람들과 황량한 공동체의 네트워크 흑백영화 <다운 바이 로> 역시 떠돌이들의 이야기다. DJ 잭(Zack, 톰 웨이츠)과 포주 잭(Jack, 존 루리)은 우연히 루이지애나의 올리언스 패리쉬 감옥에서 한 방을 쓰게 된다. 서로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던 이들은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하고, 이탈리아 출신의 로베르토(로베르토 베니니)가 이 방에 합류하면서 탈옥을 계획한다. 마침내 탈옥에 성공한 이들은 죄수복을 입은 채 정처없이 떠돌아다닌다. 그러던 와중에 로베르토가 이탈리아 여성 니콜레타(실제 로베르토 베니니의 연인이자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주연을 맡았던 니콜레타 브라시)와 사랑에 빠진 뒤 쿨하게 각자 갈 길을 간다. 감옥방이라는 공간과 황량한 숲이라는 한정된 공간을 무대로 한 이 영화는 대단히 짜임새 있는 촬영과 편집을 보여준다.
<미스터리 트레인>은 미국 테네시 주 멤피스를 배경으로 세 개의 큰 에피소드를 통해 '방랑과 떠돌이'라는 테마를 연장하고 있다. '요코하마에서 멀리(Far from Yokohama)'에는 엘비스 프레슬리를 찾아 멤피스로 온 일본인 커플의 이야기를, '유령(A Ghost)'은 비행기 운항 문제로 멤피스에 발이 묶인 한 이탈리아 여성(니콜레타 브라치)이 낯선 여성과 함께 모텔 방에 함께 묵다가 엘비스 프레슬리의 유령을 만난다는 이야기를, 그리고 '로스트 인 스페이스(Lost in Space)'는 범죄를 저지른 두 명의 백인남자와 한 흑인 남자가 벌이는 소동을 그린다. 짐 자무시는 이 세 개의 서로 다른 에피소드가 같은 모텔에서 일어나는 일임을 차례로 보여주는 한편, 영화 말미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이 인물들을 같은 기차 안에서 엮어냄으로써 삶과 인간, 세상에 대한 그의 시선을 단적으로 드러내 보이고 있다. <지상의 밤>에서 짐 자무시는 자신의 주제를 다시 한 번 변형시킨다. LA, 뉴욕, 파리, 로마, 헬싱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영화는 모두 택시 운전 기사를 소재로 하고 있다. <미스터리 트레인>이 같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서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였다면, <지상의 밤>은 택시라는 하나의 모티브를 변주해 서로 다른 공간에서 벌어지는 서로 다른 사람들의 유사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LA에서는 한물 간 배우 매니저(지나 롤랜즈)와 배우가 되는 것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소녀 택시기사(위노나 라이더)가, 뉴욕에서는 이민자인 택시 운전기사(아민 뮬러 스탈)와 흑인 손님의 이야기를, 파리에서는 역시 흑인 택시기사와 장님 여자 손님(베아트리스 달)의 사연을, 로마에서는 말 많은 택시 기사(로베르토 베니니)와 그 안에서 죽은 신부의 헛소동을, 그리고 헬싱키에서는 사연 많은 택시 기사와 직장에서 쫓겨난 친구 때문에 술을 마신 승객들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등장하지만, <지상의 밤>은 자무시의 다른 영화에 비해 훨씬 윤기가 흐르며 동시에 유쾌하게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짐 자무시의 친구들을 만나라
데드맨 ⓒ프레시안무비

<데드맨>은 1995년 칸영화제 본선 경쟁부문에 초청되었던 작품이다. 짐 자무시가 조니 뎁의 이미지를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썼다는 이 작품은, 웨스턴이라는 장르를 변형하면서 완전히 서로 다른 문명의 교차를 시적으로 그리는 흑백 영화다. 취직 통지서를 받고 서부의 '머신 타운'에 도착한 윌리엄 블레이크(조니 뎁)가 본의 아니게 살인사건을 저지른 뒤 지명 수배를 받으며 쫓긴다는 내용이다. 숲 속으로 도주한 블레이크는 인디언을 만나 함께 유랑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문명의 야만성을 느끼고 원주민과 동화되어 간다. <데드맨>은 <고스트 독>과 쌍을 이루며 짐 자무시가 문화와 역사를 가로지르며 고독한 인간의 초상을 그려낸 대표적인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이번 박스세트에 수록된 작품에서는 짐 자무시의 '친구들'을 만나는 재미도 쏠쏠하다. <천국보다 낯선>의 주인공인 존 루리는 <천국보다 낯선><다운 바이 로><미스터리 트레인>에서 음악도 맡았던 뮤지션 출신의 배우. 유명한 가수이기도 한 톰 웨이츠는 <다운 바이 로><미스터리 트레인><커피와 담배>에 배우로 출연했으며, <다운 바이 로>와 <지상의 밤>의 삽입곡을 작곡했다. <인생은 아름다워>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은 로베르토 베니니가 이미 <다운 바이 로><지상의 밤>에 출연한 짐 자무시의 영화적 벗이었다는 사실도 의외다. <다운 바이 로><미스터리 트레인>에서 로베르토 베니니의 뮤즈인 니콜레타 브라치의 모습을 확인하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다. 제작년도를 감안한다면, 그리고 짐 자무시의 영화들이 독립영화임을 감안한다면 화질은 그럭저럭 만족할 만한 수준이다. 학생 작품이었던 <영원한 휴가>와 열악한 환경에서 만들어진 <천국보다 낯선>을 제외한다면, <다운 바이 로><데드맨><지상의 밤> 등의 화질 상태는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 다만 오디오 포맷이 모두 5.1채널을 지원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쉬운 점. <천국보다 낯선>에 수록된 클리블랜드 편의 촬영 비하인드 신, 그리고 <데드맨>에 수록된 뮤직비디오와 삭제 장면 등의 간소한 서플먼트도 약간 허전함을 남긴다. 하지만 이 귀하고 멋진 영화들이 척박한 국내 DVD 시장에 나타났다는 사실만으로도 고맙고 반갑다. 총 6장의 디스크로 구성되어 있으며, 값은 66,000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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