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원신연 |
출연 한석규, 이문식, 오달수, 차혜련, 이병준
제작 코리아엔터테인먼트 |
배급 프라임엔터테인먼트
등급 18세 관람가 |
시간 112분 | 2006년
상영관 CGV, 메가박스, 대한극장, 서울극장 원신연 감독의 <구타유발자들>은 '폭력'이라 이름 붙일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영화는 제목 그대로 생 살이 튀는 '구타'부터 시작해 성(性)적 폭력, '사회 권력'으로서의 폭력을 세세하게 묘사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폭력이 발생하는 원인과 그렇게 태어난 폭력이 재생산 되어가는 순환 고리를 더듬는다. 제법 이름 있는 성악과 교수인 영선(이병준)은 심사위원 자격으로 간 뮤지컬 오디션장에서 만난 대학 제자 인정(차혜련)과 드라이브 중이다. 얼마 전 뽑은 새 벤츠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던 영선은 외딴 동네 강가에 차를 세우고 인정에 대한 뻔뻔스런 '속셈'을 드러낸다. 실랑이 끝에 인정은 도망가고, 영선은 심상찮은 동네 토박이 오근(오달수)과 홍배(정경호), 원룡(신현탁) 무리와 맞닥뜨린다. 괴이하게 생겨먹은 이들이 끌고 온 오토바이엔 꿈틀거리는 포대자루가 실려 있다. 그리고 그 안엔 이들이 악랄하게 왕따 시키는 고등학생 현재(김시후)가 피를 물고 누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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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타유발자들 ⓒ프레시안무비 |
잠시 후 사람 좋은 얼굴의 봉연(이문식)이 강가에서 구워먹을 삼겹살을 손에 들고 이들 무리에 동참한다. 그런데 봉연의 오토바이 끝에는 조금 전에 도망친 인정이 앉아 있다. 다시 만난 영선과 인정, 그리고 동네 토박이들은 소풍 나온 친구들 마냥 강가에 둥글게 앉아 삼겹살을 굽는다. 그리고 삼겹살이 먹기 좋게 구워지는 동안, 영선과 인정의 공포감은 극으로 치닫는다. 여기에 영화 초반, 영선에게 딱지를 끊은 경찰 문재(한석규)가 다시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다른 갈래로 깊어지고, 폭력의 강도는 더욱 짙어진다. 사실 <구타유발자들>의 줄거리를 정리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영화는 강변 어귀의 공간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않고, 이야기는 이들의 '아귀다툼'에 집중하고 있지만 <구타유발자들>에서 중요한 건 '사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구타유발자들>은 사람 좋아 보이는 봉연이 왜 구타와 폭력의 중심이 되었는지, 그리고 그 배후에는 또 누가 있는지를 그려냄으로써 '폭력'이 순환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고 다시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영화 속 폭력의 고리는 그 어떤 '폭력 장면'보다 섬뜩하다. <세탁기><자장가><빵과 우유> 등 단편 작업 때부터 폭력과 복수, 악(惡)의 세계에 관심을 기울여온 원신연 감독은 <구타유발자들>을 통해 폭력 자체로 폭력을 반성하고, 폭력의 순환에 대해 강력한 문제제기를 건다. 또한 여기서 한걸음 나아가 '사회 권력'이 폭력으로 작동하는 방식을 '영선'이란 인물을 통해 풍자한다. 폭력의 먹이 사슬을 섬뜩할 만큼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는 <구타유발자들>의 시나리오는 2004년 영화진흥위원회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대상을 거머쥐면서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석규, 이문식, 오달수 등 충무로의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이야기에 매료돼 '푼돈'에 가까운 적은 개런티로 동참하면서 또 한번 인정받았다. "새로운 영화를 해보고 싶다"는 의지는 이들이 평범한 얼굴 뒤에 감춰둔 인간의 악랄한 본성을 무서우리만치 잘 그려내는 데 동력으로 작용했다. 그리고 그 덕분에 폭력의 본성으로 꿈틀대는 인간의 내면은 실제 치고 받는 듯 생생하게 연출된 영화의 그 어떤 폭력 장면보다 잔인하게 관객의 마음에 새겨진다. 폭력의 역사를 질기고 거칠게 풀어내는 <구타유발자들>을 보고 있으면 '입에 쓴 약이 몸에 좋다'는 옛말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블랙유머를 뒤섞고 있지만 <구타유발자들>을 관람하는 것은 분명 그리 유쾌하지 않다. 하지만 <구타유발자들>은 오랜만에 영화가 달콤한 오락물로서의 기능만이 아니라 시대와 삶, 인간 본성에 대해 '사유'하는 기능도 갖고 있다는 걸 깨닫게 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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