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1 지방선거 판세가 굳어지면서 정치권의 관심은 일찌감치 '선거 이후'로 이동했다. 특히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이 정계개편론에 불씨를 당기면서 여권발(發) 정치권 빅뱅 시기가 생각보다 빨라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관건은 선거 패배 시 극심한 내홍에 휘말릴 여권이 이를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갈 동력을 형성해낼 수 있느냐는 것. 또한 여권 내부의 각 세력이 구상하는 정계개편의 그림이 '동상이몽' 수준이라는 점은 명확한 방향성을 흐리는 요인이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건 정치지형의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점에서만큼은 별다른 이견이 없다.
'정동영식 통합' 가능할까?
열린우리당의 다수는 우리당을 중심으로 민주당과 고건 전 총리가 결합하는 형태의 정계개편을 원한다. 정동영 의장이 '선(先)자강론'을 버리고 최근 "민주개혁평화 세력 연대론"을 연일 강조하는 것이 당심을 읽은 '선수 치기'라는 해석은 그래서 나온다.
수도권의 한 초선 의원은 "선거가 끝난 뒤 '책임론'의 강도와 방향에 따라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을 수 있지만, 이번 선거가 남긴 교훈이 우리당만으로는 재집권이 어렵다는 것임은 부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선거를 코앞에 두고 제기된 정계개편론은 선거 패배를 자인한 꼴이라는 비판이 당내에도 적지 않다. 게다가 자강론이 폐기된 과정에 대한 설명, 반(反)한나라당 전선이 명분을 얻을 수 있는 조건인 당의 체질강화가 빠진 정치공학적 정계개편론은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김근태 최고위원은 재집권을 위한 '반(反)한나라당 연대'라는 원론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당장의 정계개편에 거부감을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김 최고위원 측은 "선거를 닷새 앞두고 제기된 정계개편론이 과연 적절하냐"고 반문했다.
참정연, 의정연 등 친노계도 정동영식 정계개편에 손을 들어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게다가 통합의 당사자인 민주당과 고건 전 총리 측도 정 의장의 정계개편론에 부정적 반응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악의 선거 참패 이후 열린우리당이 민주당과 고 전 총리를 견인해 낼만한 주도력을 행사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부정적 전망이 다수다. 오히려 책임론을 둘러싼 논란이 증폭되면서 여권의 분열이 먼저 찾아올 것이라는 전망이 앞선다.
주도력 상실한 범여권, 결국 핵분열?
이에 따라 선거 직후부터 정치권 지각변동이 시작된다면 여권 분열이 전제되는 '헤쳐모여' 식 정계개편이 될 가능성이 높다. 호남권의 일부 세력이 고 전 총리를 중심으로 떨어져나가는 시나리오가 이미 공공연히 거론된다.
민주당 역시 당대당 통합방식 보다는 노 대통령의 탈당과 친노 세력과의 결별을 전제로 한 '헤쳐모여' 방식을 희망한다. 고 전 총리는 이런 논란이 정리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대권후보로 추대되기를 기다리는 쪽이다.
청와대와 친노계도 표면적인 언급을 삼가고 있긴 하지만, 내심 당대당 통합방식에 부정적인 태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선에 따른 분화과정을 거쳐 다당제 구조를 형성한 뒤 선거연합을 도모하는 쪽에 무게중심이 있다는 것이다.
최근 문재인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합당에 대해 대통령은 반대"라고 밝히는 한편 노무현 대통령은 DJ 재평가를 지시하는 등 이중적 메시지가 나오는 것도 '대연정식' 차기권력 창출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될 법하다.
또한 정당을 중심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는 정계개편에 노 대통령이 직접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크지 않다는 측면에서 청와대는 한명숙 총리,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 등 유효한 대권주자 카드를 키우는 쪽에도 비중을 할애할 것으로 보인다.
자연히 여권발 정계개편은 지방선거 후 대선주자들의 거취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전개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된다.
여기에는 정동영 의장과 김근태 최고위원이 당면하게 될 선거 패배 책임론을 어떤 식으로 돌파해낼지, 고건 전 총리가 어느 시기에 어떤 선택을 할지, 천정배 법무부 장관이나 최근 주목받고 있는 강금실 서울시장 후보 등이 대선주자군에 합류하게 될 것인지 등의 변수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개개의 요소들을 조각그림 맞추듯 모아보면, 범여권의 대권주자들이 각자 구상 중인 집권 플랜들의 교집합이 그리 크지 않아 분열 가능성이 훨씬 크다는 전망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어 보인다. 선거가 진행중이어서 아직 이들 구상의 전모가 드러나지 않은 현상황에서는 그렇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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