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9회 칸국제영화제가 종반을 향해가고 있는 가운데 황금종려상 수상작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이번 칸영화제는 개막작 <다빈치 코드>가 혹평을 받으면서 다소 맥이 빠진 상태로 출발했다. 총 20편의 경쟁작은 대부분 유럽과 미국의 영화들로 채워졌으나, '유럽 영화의 부흥'을 알리려는 영화제 측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본선 초청작들은 그다지 큰 감흥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일부 영화는 경쟁 부문에 초청됐다는 것이 의아할 정도로 실망스럽다는 평가를 듣기도 했다. 예컨대 영화제 초반에 상영된 유일한 아시아 경쟁작인 로우 예 감독의 <여름 궁전>은 상영 직후의 반응과 달리 시간이 지나면서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평가가 나왔다. 1989 년 천안문 사태를 배경으로, 성적으로나 감정적으로 격렬한 사랑에 빠졌던 연인의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에 대해 일부 유럽 평론가들은, 최근의 세계 영화계 지형도에서 아시아 영화의 약세를 반영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썼다.
. 역시 거장들의 작품에 갈채 모아져 경쟁부문 진출작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작품들은 역시 거장들의 신작이다. 켄 로치의 신작 <보리를 흔드는 바람> 은 1920년 아일랜드 노동자들의 독립 투쟁을 다룬다. <보리를 흔드는 바람>은 킬리언 머피의 호연과 더불어 영화제 초반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황혼의 빛 Lights in the Dusk>은 핀란드의 한 보안업체 직원이 조직의 음모에 휘말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파멸의 길을 걷게 된다는 이야기. 아키 카우리스마키 특유의 사회비판적 주제의식이 필름 누아르의 스타일과 만나면서 독특한 화학 작용을 일으킨 이 영화는 절제된 비주얼과 배우들의 호연으로도 큰 호응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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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를 흔드는 바람 ⓒ프레시안무비 |
난니 모레티의 신작 <일 카이마노>는 보수 정객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비리와 부패 , 보수적인 성향에 직격탄을 날린 매우 도발적인 영화라는 평가를 얻었다. 베를루스코니를 고발하는 정치 영화를 만들려는 프로듀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 작품은, 영화에 관한 영화라는 익숙한 형식을 취하면서도 거침없는 화법이 인상적이다. 황금종려상을 비롯한 본상 수상작으로 유력하게 대두되고 있는 영화는 세 편이다. 먼저 누리 빌게 세일란의 <기후 Climates>. 2003 년 <우작>으로 칸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은 이 터키 감독은 이번에도 단순한 구성 아래 인간 심리의 가변성을 치밀하게 파고드는 연출력으로 갈채를 받았다. 한 대학 강사와 TV 업계에 종사하는 그의 아내 , 그리고 그의 옛 연인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 영화는 주인공의 변덕스럽고 이해할 수 없는 독특한 캐릭터가 특징이다. 일상성을 포착하는 신중한 카메라와 관습화된 내러티브를 파괴하는 형식, 그리고 상식과 비상식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특이한 인물들은 홍상수 영화의 어떤 측면을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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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레스 페로스><21그램>을 만든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신작 <바벨>도 영화제 최대의 화제작 가운데 하나다 . 브래드 피트, 케이트 블랜쳇,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야쿠쇼 코지 등 세계적인 스타들을 캐스팅한 이 영화는 모로코, 미국, 일본 등 여러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을 담고 있다. 마치 <크래쉬> 나 <시리아나>처럼 다중 인물과 다중 플롯의 거대한 네트워크를 그리고 있는 이 영화는 브래드 피트와 케이트 블랜쳇의 호연을 비롯해 촬영감독 로드리고 프리에토의 수려한 비주얼, 그리고 <브로크백 마운틴>으로 오스카상을 받은 음악감독 구스타보 산타올랄라의 감정을 쥐락펴락하는 음악이 근사하게 어우러진 작품이다. 경쟁 진출작 가운데 평단의 가장 큰 호응을 얻고 있는 영화는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시작 <볼버 Volver>. 영화제 내 각종 데일리지에서 최고의 평점을 받은 작품이다. '귀환'이라는 뜻을 가진 이 영화는 알모도바르 자신의 고향이기도 한 바람이 많이 부는 스페인의 한 작은 마을을 무대로 제3세대의 여성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화재로 죽은 어머니가 딸들 앞에 되살아나면서 벌어지는 이 이야기는 리얼리즘과 판타지를 오가면서 반전의 묘미를 선사하는 감동적인 드라마라는 평가를 얻었다.
. 미국영화들, 범작 수준에 그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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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앙트와네트 ⓒ프레시안무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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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경쟁 부문에 포함된 미국 영화들은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하고 있다.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신작 <패스트 푸드 네이션 >은 미국의 패스트 푸드 산업과 멕시코 불법 이주 노동자의 문제를 다루면서도 평이한 드라마와 잔혹한 묘사로 의아함을 자아냈다. 데뷔작 <도니 다코>로 화제를 모았던 리처드 켈리가 5년 동안 준비한 <사우스랜드 테일즈>는 2시간 40분에 달하는 파격적인 SF 드라마. 사라 미셸 겔러와 더 록 등이 주연을 맡았으며, 디스토피아적인 미래의 LA를 배경으로 반전 메시지를 강하게 담고 있으나 관객과 평단의 공감대를 얻는 데는 실패해 현재 가장 낮은 평점을 받았다. 영화제 개막 전 최고의 관심을 모은 소피아 코폴라의 <마리 앙트와네트> 역시 상반된 평가를 받았다. 마리 앙트와네트를 사치스럽고 순진하며 평범한 틴에이저로 그리고 있는 이 영화는 클래식과 팝 음악을 교차시키는 가운데 화려한 볼거리와 가벼운 유머를 선사하고는 있으나, 역사적 인물에 대한 구태의연한 접근 방식으로 빈축을 사기도 했다. 59회 칸영화제는 이제 3일 간의 공식 상영 일정을 남겨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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