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히 바쁜 일상에서 무려 13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읽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그건 고문에 가까운 일일 수 있다. 최근 국내에서 번역 발간된 패트릭 맥길리건의 히치콕 전기 「히치콕, 서스펜스의 거장」을 갖다놓고는 3주가 지나서야 간신이 다 읽었던 이유도 그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은 끈기를 갖고 독파할만한 가치가 너무나 큰 작품이다. 무엇보다 전기를 읽으면서 눈물을 흘리기는 아마도 이 책이 처음이었던 것 같다. 1300페이지가 다 되어 갈 때쯤, 그러니까 1980년에 히치콕이 스스로 죽음을 준비하는 대목을 읽을 때쯤엔 저절로 눈물이 난다. 그 대목을, 맥길리건은 이렇게 썼다. '히치콕은 통증과 약간의 고혈압, 심장질환, 신장질환 그리고 전반적인 기력저하에 시달렸지만, 그의 체질은 강건했고 죽어가고 있지 않았다. 보살핌과 조력만 있으면 몇 달도, 심지어는 몇해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플릭 박사는 말했다. 그런데 엄청난 정신력의 소유자인 감독은 이제는 스스로 죽겠다는 의지를 세웠다….' 한 인간이 스스로 죽겠다는 의지를 세운다는 것, 스스로의 삶의 가치를 극도로 평가절하시킨 채,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정리하려 한다는 것만큼 슬프고 비장한 이야기는 없다. 물경 56편의 작품을 만들면서 그 어느 작품 하나 빼놓을 게 없을 만큼 세상에 화제를 불러 모으는 영화를 만들었던 거장 히치콕은 그렇게 죽었다. 자신을 돌보러 온 주치의에게 욕설을 퍼붓고 돈을 주지 않고 패악을 부렸지만 그건 세상과의 인연을 끊으려는 한 노친네의 갸날픈 노력이었을 뿐이다. 주치의인 플릭도 그래서, 그런 그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히치. 그렇기 때문에 내가 돈을 받건 말건 나는 신경쓰지 않아요. 나는 계속 당신을 보러 올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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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치콕, 서스펜스의 거장 ⓒ프레시안무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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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치콕에 대한 모든 것을 담아내다 이 책을 처음 펴서 5,60페이지를 읽어 나가기 시작했을 때부터 이미 난, 어서 빨리 이 책에 대한 소개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려 왔다. 지금까지 본 전기 중에 이런 전기는 난생 처음이라는 생각 때문에, 그리고 한 인간에 대해 이렇게 방대한 자료가 동원된 건 처음 본다는 생각 때문에, 무엇보다 히치콕의 작품세계를 그것이 만들어진 앞뒤 배경을 철저하게 곁들여서 이처럼 낱낱이 해부해 놓은 건 처음 본다는 생각때문이었다. 가장 중요한 건 이 책이야말로 그 어떤 히치콕 전기 가운데 가장 뛰어난 전기이자 또 어떤 면에서는 전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전기이자 전기가 아니라는 것. 그건 일반적인 전기가 갖는 지루함이나 진부함을 전혀 찾아 볼 수가 없다는 의미를 말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이 무모하리만큼 긴 히치콕 전기는 무지하게 재미있는 책이다. 그래서 이 책을 보다 보면 마치 그냥 한꺼번에 히치콕 영화 모두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때문에 이 책을 읽는다는 건 곧 히치콕이 살아 생전에 만든 모든 영화를 다시 한번 (혹은 처음) 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엄청난 길이를 자랑하지만 이 책의 핵심적인 부분은 크게 네가지로 나뉜다. 영국에서 무성영화로 데뷔해 토키시대로 넘어오며 작품을 만들던 시기와 1937년 할리우드로 넘어와 데이비드 O. 셀즈닉 등 거물 프로듀서들과 함께 흥행과 평가 모두에서 성공을 거두는 히트작을 만들던 시기, 또 일약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후 <현기증>에서 <싸이코> 등 걸작들을 만들었던, 한마디로 정신적으로 최고의 고양됐던 시기 그리고 말년의 모습이다.
. 잉글릿드 버그만과 그레이스 켈리, 그리고 히치콕 한 인간의 일생을 낱낱이 해부한 만큼 이 책은 히치콕도 히치콕이지만 그를 둘러싼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새롭게 알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예컨대 어릴 적부터 흠모해 마지 않았던 여배우 잉글릿드 버그만이 사실은 남자 편력이 아주 심했다는 사실 같은 것이다. 그녀가 로버트 카파 같은 사진작가와도 염문을 뿌렸다는 것은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된 사실이다. 특히나 <오명>을 찍으면서 히치콕과 모종의 관계였음을 암시하는 대목에서는 그녀의 청순한 이미지가 와르르 무너지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그나마 다행스러울 수 있는 건 히치콕이 이미 오래 전부터 성불구자였다는 것 정도일까. 전설의 여배우 그레이스 켈리 역시 이 책을 보면 청순하고 단아한 이미지만을 가졌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심지어 그녀는 '음탕한' 수준의 여자였으며 그래서 평생 외설스런 농담을 입에 달고 살았던 히치콕과 죽이 잘 맞은 것으로 나타난다. 조앤 폰테인과 베라 마일즈, 쟈넷 리와 티피 헤드렌 등등 히치콕이 발굴하고 키워 낸 여배우들의 진면목을 이 책을 통해 발견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맥길리건의 이 책은 마치 피터 비스킨트가 70년대 할리우드의 이면사를 파헤친「헐리웃 문화혁명-어떻게 섹스-마약-로큰롤 세대가 헐리웃을 구했나」의 50년대판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 존 스타인벡에서 레이몬드 챈들러까지, 그리고 히치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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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치콕 감독 ⓒ프레시안무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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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이 여배우들 얘기부터 하고 말았지만 이 히치콕의 전기를 통해서는 그와 당대를 함께 살았던 불세출의 작가들을 같이 만날 수 있는 귀중한 기회가 마련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다프네 뒤모리에나 존 스타인벡, 손턴 와일더와 레이몬드 챈들러 그리고 패트리샤 하이스미스 같은 작가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 전기는 히치콕이 그들과 어떻게 교유하게 됐고 또 작품을 만들면서는 어떻게 갈등하고 충돌하게 됐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걸작이 만들어지게 됐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구명선>의 시나리오 작업을 함께 했던 존 스타인벡과는 끝내 작품의 원안, 혹은 그 장면장면의 세세한 소유권을 놓고 법정소송까지 이어지게 되는데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는 문학과 영화의 접점을 만들어 낸다는 게 사실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자존심이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은 예술가들이 만나 한편의 영화를 창조해 내기까지 그 예술가들 사이에서 어떤 신경전이 벌어지는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스트레인저>때문에 히치콕과 함께 시나리오 작업을 했던 레이몬드 챈들러는 그 영화 이후 평생을 두고 그를 '뚱보 망나니'라고 불렀다. 그건 히치콕이, 챈들러뿐만 아니라 모든 작가가 해 온 시나리오를 한번도 그냥 그대로 온전히 써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작가들은 한결같이 그럴려면 왜 자기에게 시나리오를 쓰라고 했는지 모두들 목청을 높이고 심지어 영화가 다 완성된 후에는 크레딧에서 자신의 이름을 빼라고 했지만, 궁극적으로 이들 작가에게서 얻고 싶은 것이 '영감'이었지 완성된 '시나리오'가 아니었던 히치콕은 그런 불만들은 이해할 수 없는 항의에 불과한 것이었다. 영화는 영감을 서로 주고받는 공동작업이라고 그는 생각했던 것이다. 히치콕 전기가 산업적으로도 꽤나 의미가 있는 것은, 만약 약간의 영화사적 지식이 겸비돼 있으면 무성영화에서부터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대, 그리고 아메리카 뉴 시네마로 명명되는 새로운 시대에 이르기까지 영국과 미국의 영화역사를 새로운 느낌으로 정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 역사야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건 정말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일 수 있다. 영화역사는 흔히들 세상의 역사와 축을 같이 해서 달리는 법이다. 히치콕이 데이빗 O. 셀즈닉과 <레베카>와 <스펠바운드>를 만들 때, 유니버셜과 함께 <사이코> 등의 영화를 만들 때, 혹은 <토파즈>같은 첩보영화를 만들 때 세상이 어떻게 격동하고 있었는지를 이 책은 함께 기술하고 있다. 워낙 방대한 책이다 보니 갖가지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상세하게 담고 있는 것이 이 책이 특징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39계단>을 찍을 때 히치콕은 이 영화로 처음 만나는 남녀배우 로버트 도나트와 매들린 캐럴이 악수를 하자마자 두 사람의 팔에 영화장면을 리허설한다며 수갑을 채워 놓고는 열쇠를 잃어버렸다며 자리를 슬쩍 피했다. 두 사람은 몇시간 동안 서로 묶여 있어야 했는데 그럼으로써 두 사람은 영화에서처럼 한 몸이 됐고 그건 바로 히치콕이 원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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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치콕이 한국의 영화계에 전하는 말은? 이 책이 갖고 있는 읽을 거리는 히치콕의 일생만큼 너무 많아서 일일히 열거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다만 장장 1300페이지짜리의 이 책과 히치콕의 일생이라는 것이 왜 지금 이 시기, 특히나 여기 한국에서 새삼 의미있게 보이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건 아마도 평생을 끓어 오르는 열정과 창조적 의지로 살았던 히치콕을 보면서 요즘의 우리 영화계에 대해 새삼 느껴지는 것이 많아서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영화적 장치로 즐겨 사용했던 '맥거핀'을 만들면서까지 끊임없이 작가인 자신을 옥죄어 오는 정치적, 상업적 억압의 현실들을 우회해서 돌파해 낸 그의 '예술적 지혜'같은 것을 본받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예컨대 그는 5,60년대 매카시즘의 억압이나 상업주의를 내세우는 스튜디오의 압력으로 횡행했던 갖가지 검열행위를 피해가기 위해 그들이 길길이 날뛸 장면을 일부러 찍어 놓고는, 그들의 요구대로 그것을 잘라내는 것처럼 보이게 하면서 사실은 자신이 원하는 장면들은 그대로 온존시키는 방법을 썼다. 어떻게 보면 히치콕은 타협하는 예술가였으며 '실용'을 내세우는 감독이었다. 그럼으로써 그는 오히려 더 큰 예술적 가치를 이루는데 성공했다. 히치콕만큼 '실용적'인 영화예술의 방법론을 확립한 작가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맥길리건은 기술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에도 나오지만 히치콕은, 프랑스 누벨바그의 창시자였던 평론가이자 감독인 프랑수와 트뤼포와 가진 그 유명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예술영화를 만들기는 쉽습니다. 어려운 것은 잘만든 상업영화를 만드는 일입니다." 흔히들 영화에 대해서는 두가지 생각으로 양분되는 경우가 많다. 한쪽은 영화를 예술로만 생각하고 또 한쪽은 영화를 상품으로만 생각한다. 어쩌면 지금 우리 영화계가 딱 그 모양이다. 이데올로기적 강박과 자본의 압력을 교묘히 피해 가며 히치콕처럼 잘 만든 상업영화를 만드는 길은 없을까. 그것이야말로 패트릭 맥길리건이 1300페이지짜리의 장대한 원고를 통해 우리에게 끊임없이 제기하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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