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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 포인트] 사생결단

감독 최호 출연 류승범, 황정민, 추자현, 이도경, 김희라 제작,배급 MK픽처스 | 등급 18세 관람가 시간 117분 | 2006년 영화는 종종 제목이 크게 '먹고 가는 법'이다. 특히 성수기때 대박을 노리는 영화라면 제목을 잘지어야 한다. 그점에 있어 <사생결단>은 한수 앞서는 감각을 보여준다. 제목에서부터 이 영화는 세상의 아우성이 들린다. 그리고 그 아우성에는 선과 악의 경계가 무너진 지금의 현실과 그 비정함에 대한 작가의 비명이 묻혀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사생결단>이 정통 느와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 흔히들 느와르형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영화의 오프닝 신을 항구도시 부산을 부감 샷으로 잡고 거기에다 마치 80년대풍의 홍콩 느와르가 흔히 사용했을 법한 타이틀 자막을 붙인 것은 이 영화가 어떠한 분위기, 어떠한 결말을 향해 나아갈 것인가를 알려 준다. 이 세상엔 아마도 희망이 없음을, 어쩌면 서로 물고 물리는 지독한 생존의 법칙만이 작동하고 있음을 넌지시 일러주고 있는 셈이다.
사생결단 ⓒ프레시안무비
때문에 <사생결단>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상대방을 배신하고, 물어뜯고, 개패듯 두들겨 패는 어두운 뒷골목의 반(反)영웅들만이 즐비할 뿐이다. 영화속 마약 장사꾼 상도(류승범)와 그를 못살게 구는 도경장(황정민)이 바로 그런 인물들이다. 상도는 도경장이 자신과 한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것을 보고 "진작부터 니가 사람새끼가 아니란 걸 알고 있었다"며 흥분하지만 오히려 도경장은 그런 그를 흠씬 두들겨 팰 뿐이다. 신나게 주먹질을 하면서, 그것도 운율을 맞춰 도경장은 상도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도 좀 살자, 나도 좀 살아!" 생존이란 게 화두가 되면 영화는 이미 선악의 가치판단에 있어 물을 건너간지 오래가 되는 법이다. 좇는 자와 쫓기는 자의 관계도 늘 뒤집어지기 일쑤다. 결국 에브리바디 해피해질 것이라는 기대는 일찌감치 접는 게 좋다. 중간중간 피비린내 나는 눈요깃감 액션이 보여지긴 하지만 실제로 더 잔인한 건 갈가리 찢겨지는 내면의 상처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세상은 과연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IMF시대 때의 부산지역을 무대로 마약범들과 이들을 잡으려는 형사와의 한판 싸움을 그린 <사생결단>은 그런 면에서 1985년에 윌리엄 프리드킨 감독이 만든 <늑대의 거리>를 닮아 있다. 한창 전성기 때의 윌렘 대포가 악역인 위조지폐범으로 나오고 윌리엄 피터슨(요즘 엄청난 인기를 모으고 있는 'CSI 라스베거스'의 길 그리섬 반장!)이 그를 좇는 형사로 나오는 <늑대의 거리>에서처럼 <사생결단> 역시 각 인물의 '쎄기'보다는 그 관계의 폭파력에 더 치중하는 작품이다. 더군다나 알고 보면 센 인간도 없다. 상도에겐 쥐약 같은 인물이지만 도경장 역시 검찰 마약과 동기한테 늘상 꼬리내린 강아지 꼴이 되고 만다. 잔머리를 굴리며 거리에서 날고 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상도 역시 마찬가지다. 마약계 큰 손인 장철(이도경) 앞에서 그는 고양이 앞에 쥐일 뿐이다. 그러니 모두들 물고 물리는 관계다. 때론 악어와 악어새처럼 공생하려 하지만 그 관계란 그저 한낱 종이조각에 긁어댄 허울좋은 사인에 불과해 보인다. <사생결단>이 유독 요즘의 한국 영화들 가운데 돋보이는 건, 간만에 세상의 진실을 얘기하려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진실은 종종 극장밖 아우성을 스크린으로 그대로 옮기는 과정에서 구현되는 법이다. 요즘 들어 우리영화들은 유독, 세상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든 남녀간의 사랑얘기나 낙서처럼 해대며 희희낙낙하는 분위기였다. 영화가 자꾸 사람들에게 거짓된 환상을 불어 넣으려는 '작태'에 대해 <사생결단>은 마치 사생결단하듯 이를 악물고 한판 싸움을 건다. 한국영화로서 보기 드물게 이런 류의 장르에 있어 최고 수준의 시나리오가 나왔다는 것도 특기할 만한 일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걸 최호 감독의 끈기있는 현장 취재력때문이라고 얘기하지만 그것 역시 세상을 바라보는 '진정성'이 밑바탕이 됐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감독이 진심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영화를 만들 때 배우들도 자신의 에너지를 최고로 뽑아내기 마련이다. 황정민 류승범 두 배우가 마치 물 만난 고기마냥 펄떡거리는 연기를 선보일 수 있었던 건 바로 그때문이다. 두 사람도 두 사람이지만 TV에서와는 달리 몸을 아끼지 않은 연기력을 선보인 추자현 역시 이번 영화를 통해 새로운 발견의 기쁨을 선사했다. 잘 만든 상업영화, 세상에 대한 진심의 목소리를 담고 있는 영화는 생각할 거리를 준다. 보는 재미도 준다. <사생결단>은 그렇게,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잘 잡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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