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뷰 포인트] 노스 컨츄리 North Contury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뷰 포인트] 노스 컨츄리 North Contury

감독 니키 카로 출연 샤를리즈 테론, 프랜시스 맥도먼드, 우디 해럴슨 수입,배급 워너브라더스코리아 | 등급 15세 관람가 시간 126분 | 2005년 남성이 어떤 여성과 인간적으로 친해진다는 것은 남자들끼리의 외설적 농담이나 격한 스킨 십까지 공유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니면 오히려 그 같은 남성들의 커뮤니티로부터 적극 보호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남자들은 흔히들 여자들에게 스스럼없이 성적 농담이나 행동을 하면서 '인간적으로 가까워지려 했다고 얘기하지만' 사실 그건 '부담없이 섹스를 하고 싶다는 의사표시일 뿐'이다. 그러면서도 정작 문제가 되면, 여자들이 남자들 세상을 몰라도 너무 몰라서라고 길길이 날뛰며 호통을 치기 일쑤다.
노스 컨츄리 North Contury ⓒ프레시안무비
<노스 컨츄리>는, 성추행에 시달리던 여성이 회사 전체를 상대로 집단소송을 벌여 승리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하지만 이렇게만 얘기하면 이 영화는 단순히 '성추행'이라는 좁은 카테고리로 묶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 영화 <노스 컨츄리>는 그보다는 더 깊은 함의를 담고 있고 또 그만큼 더 깊은 생각을 갖게 만드는 작품이다. 남성은 여성들과 소통하기 위해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남자와 여자가 진정으로 소통하는 길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인간과 인간이 서로 올바르게 교감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영화를 보고 있으면 이런 저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된다. 고등학교 때부터 교사에게 강간당해 아이를 낳은 데다 결혼한 남편은 폭력을 일삼는 바람에, 남자와의 관계에 있어 하루도 바람잘 날이 없었던 조시(샤를리즈 테론)는 '폭력남편'을 피해 두 아이를 데리고 미네소타 북부의 친정으로 돌아온다. 아이들을 위해 경제적으로 홀로서기에 성공해야 하는 조시는 아버지의 추천으로 이 지역 남자들이라면 거의 모두 일하고 있는 광산회사의 광원으로 취직한다. 하지만 대다수 남자 광원들은 조시와 그녀의 동료들을 하루가 멀다하고 성적으로 희롱하고 괴롭힌다. 조시는 변호사 빌 화이트(우디 해럴슨)를 찾아가 자신의 남자 동료들과 직장 전체를 상대로 법정소송을 벌일 것을 결심한다. 사태가 이 지경까지 가면, 생활은 온통 진흙밭으로 변해 버리기 마련이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조시의 편은 이 세상에 꽤나 많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자가 '말썽을 부리면' 그래서 '암탉이 울면' 세상이 편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의외로 많다. 조시 같은 여자를 세상에 파묻겠다고 날뛰는 '짐승형 남자'들은 차라리 겉으로 드러나기라도 한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적당히 타협하고 살자'고 얘기하는 사람들 천지라는 것이다. 영화속 변호사 빌 화이트도 처음엔 "당신과 같은 예쁜 여자는…다른 일자리를 찾으라"고 말한다. 조시의 무언의 지지자였던 글로리(프란시스 맥도먼드)조차 "차라리 마을을 떠나라"고 얘기한다. 하물며 그녀의 여자 동료들은 어떻겠는가. 모두들 하나같이 조시를 '미쳤다'고 얘기하며 그녀가 자신들의 생계를 위협한다고 날을 세운다. 성추행을 일삼는 남자들도 문제지만 그것의 부당성을 알면서도 침묵하는 사람들도 문제다. 따라서 <노스 컨츄리>는 우리의 사회가 성추행의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또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 가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과 개인의 문제, 사회적 편견과 그것을 바로잡기 위한 개인의 용기의 문제를 다룬다. 복잡한 것은 심각한 편견을 가진 집단이라 하더라도 개인은 그 집단 안에서 일단 섞여 살아가야 한다는 점에 있다. 그 집단 안에는 모두가 다 흉악한 적군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군도 있고,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해서 그렇지 잠재적인 아군도 있는 법이다. 남녀 성평등과 같은 문제를 다루는 사회운동일수록 그 옥석을 가리는 '디테일'이 얼마나 중요한 가는 우리 모두 어쩌면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는 대목일 수 있다. <노스 컨츄리>의 미덕은 선언을 위한 영화가 아니라는 점에 있다. 그보다는 오히려 우리끼리, 곧 같은 생각을 갖는 사람끼리의 미세한 차이에 대해서 자분자분 얘기하고 있는 영화라는 점에 있다. 이 영화의 그 같은 행보는 우리사회에서 성추행, 성폭력의 문제를 근절하고 실질적인 남녀평등을 이루며 궁극적으로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데 있어 꽤나 유효한 실천적 지평을 열어간다. 샤를리즈 테론 같은 스타급 여배우가 상업성을 고려하지 않고, 이 영화를 선뜻 선택한 이유는 바로 그때문일 것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