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월드컵에서 가장 많은 공격 포인트를 기록한 태극전사는 누구일까? 정답은 이을용이다. 이을용은 2어시스트, 1골을 기록했다. 그 가운데에서도 이을용의 플레이가 가장 빛났던 순간은 폴란드와의 조별 예선 첫 경기였다.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경기였지만 한국은 초반에 폴란드에 밀렸다. 하지만 수비의 핵 홍명보가 과감한 중거리 슛을 시도한 뒤 경기 흐름은 한국 쪽으로 넘어 왔다. 균형이 깨진 건 전반 26분. 왼쪽 측면으로 돌파하던 이을용은 황선홍에게 자로 잰 듯한 크로스를 연결했고, 황선홍은 힘들이지 않고 가볍게 발에 공을 맞춰 첫 골을 뽑아냈다.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한국 4강 신화의 포문은 이렇게 열렸다.
2002년 월드컵 이전까지 사실상 무명이나 다름없던 이을용의 성공시대도 덩달아 활짝 열렸다. 하지만 히딩크 감독이 떠난 뒤, 대표팀에서 이을용의 주가는 조금씩 떨어졌다. 히딩크의 후임이었던 코엘류 감독은 이을용에 대해 믿음을 갖지 못했다. 본프레레 감독은 한 술 더 떠 이을용을 대표팀에 부르지도 않았다. 본프레레가 능력부족으로 대표팀 사령탑에서 물러난 뒤 "이을용을 뽑지 않았던 이유는 그의 스피드가 너무 느리다는 것"이라는 말까지 했다.
하지만 아드보카트 감독 체제가 발족하면서 이을용은 다시 주목을 받았다. 2002년 월드컵에서 이을용의 능력을 지켜 봤던 핌 베어벡 코치의 등장은 묵묵히 터키리그에서 자신의 입지를 다졌던 이을용에게 기회였다. 아니나 다를까. 이을용은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와의 친선경기에서 선발 출장해 녹슬지 않은 기량을 과시했고, 아드보카트 감독에게 신뢰를 줬다.
지난 3월 1일 앙골라와의 경기는 이을용의 진가가 십분 발휘된 무대였다. '진공청소기' 김남일과 함께 수비형 미드필더로 호흡을 맞춘 이을용은 자신의 공격적인 성향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세밀한 패스, 경기를 읽는 눈, 부지런한 움직임 등 모든 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 때부터 김남일과 함께 대표팀의 공수를 조율할 선수로 이을용이 강력하게 대두됐다. 전지훈련과 평가전에서 강한 압박축구로 깊은 인상을 남긴 또 다른 수비형 미드필더 이호와의 피할 수 없는 경쟁이 시작된 셈이다.
축구 전문가들은 이을용이 독일 월드컵 조별 예선 첫 경기인 토고 전에 선발 출장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긴장감이 큰 첫 경기에서는 적어도 경험이 많은 선수가 뛰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반드시 이겨야 하는 토고 전에서 날카로운 이을용의 패싱 능력과 경기 조율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반대로 수비적인 전술로 맞붙어야 할 경우에는 체격조건이 뛰어난 이호를 출장시켜 김남일과 함께 이른바 '두 대의 진공청소기'를 돌리는 것이 효과적이다.
박성화 전 청소년대표팀 감독은 "이을용은 체격조건에서는 이호에게 뒤지는 게 사실이지만 지구력이 매우 뛰어난 선수다. 또한 윙백도 볼 수 있기 때문에 전술적으로도 매우 유용하다. 이을용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팀 전체를 위해서는 꼭 필요한 소금 같은 존재"라고 밝혔다.
박 전 감독은 "한국의 허리는 박지성을 정점으로 김남일, 이을용이 포진하는 게 첫번째 옵션이다. 서로 스타일이 다른 2명의 수비형 미드필더(김남일, 이을용)가 뛰는 게 이상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맞대결 상대에 따라 이호가 출전할 가능성도 있다. 이을용과 이호라는 두 명의 카드를 쓸 수 있다는 것은 아드보카트 감독에게 큰 이점이다.
수비형 미드필더가 튼튼해야 포백 수비라인도 힘을 받는다. 포백 수비뿐 아니라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게 될 박지성도 수비형 미드필더의 지원 하에 자유롭게 상대 진영을 헤집고 다닐 수 있다. 여기에다 수비형 미드필더 이을용의 송곳 같은 왼발 패스가 토고 전에 작렬한다면 아드보카트호는 순항할 가능성이 크다. 이을용의 발끝에서 다시 한번 한국 축구의 꿈이 되살아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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