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스파이크 리
출연 덴젤 워싱턴, 클라이브 오웬, 조디 포스터, 크리스토퍼 플러머
수입,배급 UIP코리아 |
등급 15세 관람가
시간 128분 | 2005년 <인사이드 맨>은 일단 설정부터가 '기가 막힌' 작품이다. 뉴욕 맨해탄의 한 거대은행에 일단의 강도가 침입하는데, 이런 얘기라면 할리우드 영화 중에는 수천편이 넘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영화 속 강도들은 조금 남다른 데가 있다. 폭력적이기보다는 차분하고 지적인 은행강도 우두머리 달튼(클라이브 오웬)은 수하 몇 명을 매우 조직적이고 치밀하게 운영하되 더 특이한 것은 인질들을 잡자마자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싸그리 발가벗긴 후에 미리 준비해간 옷가지들을 대신 입히는데, 이 옷이 자신들 것과 똑같은 것이라는 점이다. 똑같은 후드 코트, 똑같은 마스크, 똑같은 색안경, 똑같은 신발이다. 자 이러니 애초부터 범인들을 전혀 알아볼 수 없는 것은 물론, 누가 범인이고 누가 인질인지 구분이 안간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 더욱더 환장할 노릇이 되는 사람들은 바로 경찰들인데, 나중에 기동타격대를 투입해 인질들을 구출해내는 데 성공하지만 자신들이 구한 사람들이 과연 인질인지, 아니면 범인들인지 끝내 알아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더욱더 흥미로운 것은 이 은행강도들은 은행 안의 엄청난 현금은 손하나 까딱하지 않았으며 단지 비밀금고 안의 보석 하나만을 슬쩍 했다는 것이다. 범행동기를 전혀 알 수 없는 은행강도. 사건은 모두가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정치적으로 슬쩍 묻어버리려는 시도가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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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맨 ⓒ프레시안무비 |
스파이크 리 하면 흑백 인종갈등을 주요 테마로 미국사회의 환부를 드러내는 작가로 알려져 있는 바람에 맨 영화마다 정치적인 이슈 파이팅이 강한 인물로 오해받고 있지만 이번 영화를 보고 나면 이 흑인감독이 영화를 꾸며 나가는 기술력,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재간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느낄 수 있다. 한마디로 먼 옛날 알프레드 히치콕이 한 얘기가 떠오르는데, "작가주의 영화, 예술영화를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다. 진짜로 어려운 것은 잘 만든 상업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스파이크 리의 이번 영화 <인사이드 맨>은 히치콕의 그 말에 바로 부합하는 작품이자, 그래서 그가 지금껏 만들어온 그 어떤 영화보다도 뛰어나다는 인상을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단순하게 '잘 만든 은행강도'에만 머무르고 있지 않다는 데에서 관객의 뒤통수를 치는 결정타가 느껴진다. 그래서 영화를 다 보고나면 스파이크 리의 뛰어난 정치의식에 얼얼해진다. 정치적인 화법을 거의 구사하지 않으면서도 지금의 미국 상황, 그 아노미를 이토록 정통하게 얘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것이다. 은행이라는 철통 방어의 공간 안에서 범인과 인질들이 뒤섞이고 누가 범인인지 누가 인질인지 도무지 헷갈리게 되는 이 대 혼란의 상황은 마치 지금 미국사회의 축소판 같은 느낌을 준다. 더 중요한 것은 이 혼란을 야기한 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은행강도들인 것 같지만 나중에 가다 보면 인질들 스스로, 경찰들 스스로가 만들어 내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미국사회가 안고 있는 공포, 또는 혼란 그 자체도 외부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미국인들 스스로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겠는가. 스파이크 리의 이 뛰어난 관찰력과 예지력은 이번 영화에서 가히 혀를 내두르게 한다. 캐릭터를 슬쩍슬쩍 뒤집은 것도 특기할 만하다. 지난 몇 편의 전작에서 차분하고 지적이며 선한 이미지로 나왔던 조디 포스터가 이번 영화에서는 뉴욕판 팜므 파탈 역을 맡았다. 무엇보다 늘 선한 쪽 편에 섰던 덴젤 워싱턴이, 이번 영화에서도 역시 악당은 아니지만, 적당히 썩고 그러면서도 적당히 의협심도 있으며 적당히 능력있고 적당히 문제있는 인질범 협상가로 나온다. 그가 내사과로부터 조사를 받고있는 공금횡령 사건이 영화 후반부에 가서도 명쾌하게 결론지어지지 않은 것도, 그의 복잡한 캐릭터를 보여주기 위한 스파이크 리 식 계산법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클라이브 오웬은 이번 영화로 최근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영국 출신 배우로 가장 이지적인 인물로 떠오를 가능성이 커보인다. <인사이드 맨>은 상업영화로서도, 정치영화로서도 수많은 함의와 메타포를 갖고 있는 작품이다. 한편의 영화로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동시에 할 수 있게 되는 건 보기 드문 기쁨일 수 있다. <인사이드 맨>은 바로 그런 기쁨을 주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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