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싹을 지키려는 자들과 싹을 짓밟으려는 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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싹을 지키려는 자들과 싹을 짓밟으려는 자들

[현장] 평택 미군기지 이전 지역 또 다시 충돌

완연한 봄 기운에 여기저기 나무들이 새 잎을 틔워내는 7일 아침. 농부들이 모내기를 앞두고 한창 못자리 만들기에 여념이 없을 때이지만 대추리 농부들에게 올해는 더 큰 '농사'가 있으니, 그것은 '땅을 지키는 것'이다.

반대로 정부는 대추리 주민들이 농사를 짓지 못하게 하기 위해 되는 대로 땅을 파헤쳐야 한다. 농기계가 못 들어가게 농로 주변에 깊은 수렁을 만들었다. 논농사에 필수적인 물길도 막을 예정이다. 물을 막는다니 주민들은 못자리 없이 마른 땅에 바로 볍씨를 뿌렸다. 이른바 '건답 직파법'이다. 그러니 이번에는 다시 불도저가 들어와 씨앗을 말릴 작정이다. 주민들은 또 다시 들에 나가 한바탕 전쟁을 벌인다.

대추리 입구인 원정리 3거리에는 대추리 땅에 구덩이를 파려는 포클레인과 이를 막으려는 대추리 주민들과 시민단체 활동가들, 주민들을 저지하는 경찰과 용역 직원들이 뒤엉켜 고함이 오가고 있었고, 차 2대가 간신히 지나갈 수 있는 대추리 입구 솔밭 오솔길에는 경찰들이 새까맣게 줄을 지어 행군하고 있었다.

경찰들을 앞질러 대추리 들판으로 들어가니 이미 한판 싸움이 붙어 있었다. 불도저와 포크레인이 들을 가로지르자 주민들도 따라붙었다. 그 사이는 경찰과 용역직원들이 가로막았다. 주민들은 깃대로 용역들을 내려치고 용역들은 방패로 주민들을 막았다.

〈사진1. 주민. 왼쪽〉

들로 들어오는 길 입구에 할머니 4~5분이 주저 앉았다. 트랙터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고 짚을 모아 불도 놨다. 깃대를 지팡이 삼아 절룩거리던 할머니 한 분이 주저 앉더니 연신 깃대로 땅을 내리치며 경찰들에게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이 시벌놈들아! 어떻게 다져온 땅인데, 이 좋은 땅에서 나가라 그러냐. 니들이 쳐먹은 쌀이 누가 지은 것인지 아냐. 난 죽어도 못 나간다. 날 갈고 지나가라." 고함이라기 보다는 울부짖음에 가까웠다.

또 한 분이 고함을 질렀다. "니들이 언제 나한테 이 땅이 필요하니깐 팔지 않겠냐고 묻기를 했냐. 니들이 다 정하고 무조건 나가라면 나갈줄 알았냐."

〈사진2. 농로 수렁. 오른쪽〉

연이어 한 섞인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해방된 지 60년이 넘었는데, 왜 우리는 맨날 쫓겨다녀야 하냐. 이제 농사 지어 먹을 만한께…." 짚에 불을 놓던 할아버지도 작대기를 하나 들고 경찰을 향해 소리쳤다. "우리나라 들어와 땅 갈라놓은 미국놈들에게 군사기지를 내줘? 이 빌어먹을 놈들. 남북이 평화롭게 살아야지 왜 군사기지를 줘!"

주민들의 울분 섞인 고함이 터지자 여기저기서 기자들이 몰려왔다. 그런 기자들에게 주민들은 또 한 마디 한다. "맨날 와서 사진 찍으면 뭐햐. 세상에 알려지지도 않는데. 신문에 방송에 난 적이 없는데."

연신 경찰을 향해 서서 바닥에 작대기를 후려치던 할머니는 주변에 사람들이 모이자 힘이 나는 듯, 소매에 눈을 한 번 비비더니 비장하게 외쳤다. "여와들 앉아. 어디 깔아 뭉개고 지나가나 보자고. 어디 죽여봐라! 갈고 지나가려면 가라."

이렇게 주민들이 울분을 토해내고 있을 때 경찰 뒤에는 포클레인과 불도저 몇 대가 땅을 파헤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사진3. 포크레인〉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곳에서 한참을 빠져나와 미군기지 철조망 아래에서 넓디 넓은 황새울 들녘을 바라봤다. 김제나 김포 평야 부럽지 않은 광활한 땅이다. 예전에 이곳은 갯벌이었고, 갯벌에서 먹이를 얻으려는 황새들이 많이 찾아와 '황새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사진4. 황새울〉

그런 곳을 주민들이 수십 년에 걸쳐 간척을 해 얻은 땅이다. "지하수에 시금치를 씻으면 따로 간을 할 필요가 없다"고 할 정도로 진했던 소금기가 빠지는 데도 오래 걸렸다. 그런 들을 국방부는 농사를 못 짓게 하려고 농기계가 못 들어가게 농로 옆으로 긴 수렁을 파뒀다.

사실 지금의 대추리는 원래 마을이 있던 자리가 아니다. 일제시대 일본군 비행장이 들어와 한번 밀려나고, 이후 미군기지가 들어와 기지가 조금씩 확장될 때마다 계속 밀려났다. 그러더니 이제 '아예 나가라'고 하니 그 동안의 한과 설움이 한꺼번에 폭발했다.

〈사진5. 마늘대〉

마을 입구에는 비교적 젊어보이는 '할머니'가 텃밭 둑에서 먹을만한 나물을 캐고 있었다. 텃밭에는 마늘대가 한 뼘만큼은 올라와 있었다. 따뜻한 봄 볕에 꾸물럭 꾸물럭 자라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생기가 넘쳤다.

그런데 나물 캐는 할머니 뒤로 '시골'에는 어울리지 않는 빌라 건물들이 눈에 띄었다. 신기한 마음에 할머니에게 '이 동네 분들 집은 아닌 것 같은데 저기는 누가 사나요?'라고 물었다. 내심 '미군 가족들이 사는 집입니다'라는 대답을 들을 걸로 예상하고 있었다.

〈사진6. 빌라〉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뜻밖이었다. "저게 서울 사람들이 와서 지은 집이지요. 여기 미군기지 들어온다고 하니께 수년 전에 들어와서 집 짓고 농지구입 허가서 받아 땅 샀다가 지금은 보상금 받아 먹고 다 나갔지요."

타들어가는 주인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따뜻한 봄볕 아래 들녘에는 개 한 마리가 신이 나서 이러저리 뛰어다니고 하늘에는 백로 한 마리가 바람을 타고 있었다.

〈사진7. 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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